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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 리브로 Apr 17. 2022

네가 살아 있구나...

난 슬픔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밝은 척 했다

강아지와 함께 한가롭게 집 앞 공원을 산책하고 있는데 아버지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네~ 여보세요?" "..."

"여보세요? 아빠? 말씀하세요~~"

"... 어..."

침묵의 몇 초동안 혹시 아버지에게 무슨 일이 생긴건가 싶어 긴장됐다.

"아빠?"

"어...네가...살아있네?"

"크크크... 살아있지 그럼, 죽었을라고요?" 난 슬픔을 감추기 위해 일부러 웃음소리를 내며 밝은 척 했다.  

"다행이다, 난 네가 죽은줄 알았다..."

"아부지도 참. 죽은줄 알았는데 전화를 해요? "

 "그냥...번호가 떴길래. 한번 눌러봤지, 받을지 몰랐다."

"아이고, 죽은 줄 알았던 큰 딸 살아 있어서 좋으시겄네~~ 잘 살고 있응께 걱정 마셔유,네?"

말은 그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듯 했지만 마음이 아팠다. 


엄마의 장례식 이후 아버지는 혼돈 그 자체인 듯했다.

고모가 돌아가셨냐고 물으셨다가 할머니가 돌아가셨다고도 했다가, 엄마가 고모랑 나갔는데 빨리 안들어온다고 뭐하고 있냐며 고모한테 전화해서 화를 내시기도 했다. 하루에도 몇 번씩 시도 때도 없이 죽은 대상이 달라졌다.

여동생에게 전화해서 "언니 납골당이 어디냐?"고 물으셨고, 나에게 전화해서는 "최근에 누가 죽었냐?"하고 물으셨다.


엄마가  척추뼈의 다발성 골절로 인해 거동을 잘 못 하시다가 결국엔 와상 환자가  되어 전동침대에 누워 지낸지 2년도 채 안되어 갑자기 돌아가셨다.

아버지는 병실에 얼 빠진 표정으로  앉아 있을 뿐 그 상황을 이해하지 못했다.

장례식장에서 조문객들을 보고 "뭔 사람들이 저렇게 몰려와 있다냐?" 라고 묻고, 빈소에 차려진 제사상을 보고는 "어서 치우고 집에 가서 잠이나 자자."며 피곤하고 귀찮은 표정을 감추지 않았다. 

장례절차가 다 끝난 후에는 엄마가 왜 집에 안오느냐고 물으셨다.


아버지는 슬픔을 표현하신 적이 없다. 아버지의 얼굴에서 슬픔이나 고통의 표정을 본 기억이 없다. 치매 이전에도 그랬고 이후에도, 평생동안 아버지는 감정 표현을 하지 않았다. 할머니의 빚으로 큰 어려움에 처했을때도  그저 묵묵히 당신이 할 수 있는것에 집중했을 뿐이었다.

늘 든든한 울타리였던 아버지가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나와 통화를 하고나서 10분도 안되어서 다시 전화를 하셨다. 

"전화 했었냐?" 

"조금 전에 통화 하셨잖아요, 뭐 잊으신거 있으세요?"

"아니, 전화 번호가 떴길래... 네가 전화 한 줄 알았다."

휴대폰을 수시로 열어보고는 최근 통화목록에 보여지는 번호로 전화를 거는 것이었다. 

하루에도 열 번이 넘게 전화벨이 울리곤 했다. 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겼으면 어쩌나 싶어서 안받을 수도 없었다. 또 어떤 날은 "엄마가 지금 어디에 누워있는지 아냐? "하고 물으셨다.


아버지를 모시고 납골당에 다녀오기도 했지만 눈물 한 번 보이신 적은 없었다. 모든걸 초월한 듯한  편안한 얼굴. 아버지 혼자 남아있는 것이 마음 아파서 집으로 같이 가시자고 하면 싫다고 하셨다.

사실은 집으로 모셔도 일하러 나가는 내가 24시간 아버지를 돌봐드릴 수도 없었고 아버지가 집밖으로 나가서 길을 잃을수 있어서 강하게 주장할 수가 없었다. 남동생은 멀리 살았고 1살과 4살 난 어린애들을 키우고 있는 동생댁에게 부담을 줄 수도 없었다. 

여동생 역시 종일 직장근무로 하루종일 집은 비어있고 이사를 해서 아버지에게는 정말 낯 선 동네였다.


집에서 간병인을 상주 시켜야 하나? 요양보호센터에 문의했더니 남자 혼자 그것도 와상도 아닌 치매환자를 돌보겠다는 간병인을 구하기는 힘들다고 했다. 우리의 처지가 보기에 딱했는지 몇 년 째 부모님을 돌봐주셨던 요양보호사가 아버지를 계속 돌봐드리겠다는 고마운 제안을 했고 우리 남매들은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그렇게 2020년은 봄을 향해 나아가고 있었다.

코로나19의 확산이 시작되고 방과후 수업이 중단되고 입학식이 미뤄지고 있었다. 모든 것이 이전의 삶과 다르게 흘러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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