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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 리브로 Oct 30. 2022

엄마와 이별하기 3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병동에 도착했을 때 병실 주변은 너무나 조용했다. 동생들은 눈물이 그렁그렁했으나 통곡하지는 않았다.

"언니, 엄마 가셨어... 편히 가신 것 같아..."

다행이었다. 기계에 둘러싸인 채 아무도 옆에 없는 쓸쓸한 죽음을 맞이하지 않은 엄마, 자식들 고생 안 시키려고  사흘만 힘든 시간 보내고 가신 엄마, 아들 딸 옆에 두고 평온하게 떠나정말 다행이었다.

아니, 다행이라니? 그럴 리가 없었다. 난 엄마에게 작별 인사도 못 했는데! 미안했다고, 고마웠다고 말 한마디 못 했는데 엄마가 그렇게 떠나버렸다고?? 

난 온몸의 힘이 빠져나갔고 주저앉고만 싶은 것을 가까스로 버티며 "그래, 다행이다...엄마가 편안히 눈 감으셔서 다행이야."라고 말했다.


엄마의 얼굴에 손을 대보았다. 잠자듯 편한 얼굴로 눈 감고 있는 엄마의 피부는 아직 따뜻했고 마치 전기가 흐르듯 찌릿찌릿한 기운이 손바닥에 느껴졌다. 정전기일까? 정말 전기가 흐르는 것일까? 그 느낌이 너무 강렬해서 손을 계속 대고 있을 수가 없었다.

"엄마, 좋은 데 가셔서 아프지 말고 지내세요. 편안히 쉬세요..."라고 속삭이듯 말했지만 마음속으로는 다른 말을 하고 있었다.

'엄마, 조금만 기다리지 그랬어요. 내 목소리 한 번만 더 듣고 가시지... 내 손길 한 번만 더 느껴보고 가시지 뭐가 그리 급했나요...?'


동생들은 차분하게 장례식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아마 그들의 눈에 비친 내 모습도 평온하고 차분해 보였을 것이다.

장례식장에 연락을 하고 병실에서 엄마의 시신이 나가는 것까지 본 후에 남동생은 장례식장으로 여동생은 집으로, 나는 아버지에게로 향했다.




밤 12시.

온몸이 떨렸다. 다리까지 후들거려 운전을 어떻게 했는지도 모른다. 동생들 앞에서는 참고 있던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렀다. 차 안에서 엉엉 울면서 아버지에게로 갔다.

아버지에게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말하자 아버지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이셨다. 아버지의 쓸쓸한 표정에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다. 우리 집으로 가시겠냐고 물었지만 그냥 있겠다고 하셨다. 아버지를 혼자 두는 것이 마음 아팠으나 꼼짝하지 않으시니 어쩔 수가 없었다. 내일 아침 일찍 모시러 오겠다는 말에 "왜?"라고 물으셨다. "장례식장에 가셔야죠." "왜?"

"엄마가 돌아가셨으니까요..." "어... 그래, 알았다..."


주차장에서 나오면서 좁은 코너에서 조수석 뒤쪽 문이 벽에 부딪쳤다.

아파트 단지 밖의 어두운 골목길과 경계를 이룬 담벼락 쪽이 너무 캄캄했고 난 울고 있었고 온 몸을 떨고 있었다. '괜찮아, 괜찮아... 차 문짝이야 아무렴 어때, 엄마가... 엄마가 돌아가셨다고... 엄마...' 혼자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리며 운전에 집중하려고 했다. 집까지 무사히 가야 했다.

운전하는 내내 "엄마, 엄마, 엄마..." 멈추려고 해도 계속 내 입에선 엄마를 부르는 말이 울음과 섞여 나왔다.


엄마를 불러 본 지가 언제였지? 마음을 담아서, 그리움을 담아서, 반가움이나 기쁨을 담아서 엄마라는 호칭을 발음해 본 일이 있기는 했던가?

엄마를 불렀을 때 다정한 얼굴로 나를 보아준 엄마가 없었기에 엄마라는 말을 입에 잘 올리지도 않았던 나였다. 내가 엄마가 되고 나서야 그 단어가 자연스러워지고 엄마를 엄마라고 부르면서도 어색하지 않았는데...

이제는 좀 더 다정한 딸이 되어야겠다고 겨우 며칠 전에 다짐했는데...


불러도 대답을 들을 수 없는 말이 되고 말았다, 엄마...




시간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엄마와 많은 얘기를 나눠보지도 못했는데 엄마는 그렇게 허망하게 세상과 이별을 했다.

엄마에게 갔던 수많은 날들을 뻔한 날씨 얘기와 음식 이야기, 강아지 얘기로 보냈고 마음속에 오랫동안 담아두고 있었던 수많은 문장들은 꺼내 보지도 못했는데... 언제 어떻게 무슨 말로 시작해야 할지 몰랐다. 정말 많은 얘기를 하고 싶었지만 요양보호사가 옆에 있었고  정상적인 대화가 어려워진 아버지가 늘 옆에서 참견을 하셨다. 아니, 그건 다 핑계일 뿐, 나는 정말 엄마의 눈을 마주 보고 마음을 나누는 대화를 할 수가 없었다.

우린 살면서 단 한 번도 둘만의 대화를 해보지 않았으니까...


엄마...

엄마의 삶에서 나는 어떤 존재였을까? 세월이 흐르고 내 기억 속의 차갑고 무서운 엄마보다 더  나이를 먹고 나서야 엄마의 삶이 보였다. 한 여자의 일생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에 펼쳐졌고 증오의 감정은 연민으로 바뀌었다. 그런데도 상처받은 어린 나를 불쌍히 여기며 슬퍼하는 자신이 여전히 마음속에 자리하고 있어서 괴로웠다.


내가 한 번이라도 반항을 했더라면 어땠을까? 흔히 말하는 지지고 볶는 모녀 사이였더라면... 소리 지르고 욕을 하더라도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언제 그랬나는 듯이 같이 웃고 떠들고 죽이 잘 맞아 아빠 흉도 같이 보는 그런 모녀 사이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나는 또래 친구들은 금방 사귀었지만 어른들 앞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수줍음과 두려움이 많았다.

엄마는 사교적인 성격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는 엄마가 나를 미워한다고만 생각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나의 시각은 달라졌다. 엄마가 나를 잘 보살펴주지 않은 것은 맞지만 그녀도 자신의 성격 탓에 나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고 주위에 자신의 편을 들어주는 이 하나도 없이 막막한 세월을 살아왔다는 것이 느껴졌다.

자신의 행위가 다섯 살 여자 아이에게 어떤 공포심과 마음의 상처를 줄 수 있을지 짐작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저 자신의 삶을 살아가기에도 힘에 겨웠을 테니까...


유년기의 나에게 얼음처럼 차갑기만 했던 엄마보다 훨씬  나이가 많아진 지금은 그 시절의 엄마를 이해할 수 있다. 지금 내 딸 또래의 철없는 어린 여자가 감당하기에는 힘들었을 삶의 고단함이 그림처럼 떠오른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이런 이야기들을 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사실 오래전에, 엄마가 늙고 병들어 내가 미워하기에는 너무나 가여운 존재가 돼버렸을 때, 이미 나의 마음속에 단단히 응어리져 있던 증오의 감정은 서서히 풀어지고 있었다는 것을 엄마에게 말했어야 했다.

엄마의 죽음이 닥쳐왔을 때 내가 오열한 것은 엄마와 대화할 기회를 영원히 가질 수 없다는 것을 가장 먼저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랬다. 엄마를 잃는 슬픔이 아니라 엄마로부터 한 번만이라도 따뜻한 위로를 받아보고 싶은 나의 바람이 영원히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슬퍼했다. 나도 엄마를 이해해 주고 엄마의 입장에서 이야기를 들어주는 딸의 역할을 해보고 싶었는데 그럴 기회는 없다는 사실에 가슴을 짓누르는 후회가 몰려왔다.


엄마는 내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으나 나는 끝내 엄마에게 아무 말도 못 하고 말았다. 무엇이 미안한 것이었는지 물어보지도 못했다. 나도 미안하다고 말했어야 했다. 너무나 오랜 세월 나의  상처만 보았을 뿐 엄마의 아픔과 외로움을 외면해 온 나였다. 내가 먼저 손을 내밀 수도 있었건만 마음속으로만 그려 보았을 뿐이다. 언제 어떻게 다가서야 할지  망설이기만 하다가 영영 못 내민 손, 한 번도 안겨보지 못한 엄마의 품, 단 한 번도 안아드린 적 없는 엄마의 어깨...

나는 엄마를 보낼 준비가 안되었는데 엄마는 그렇게 떠나버리고 말았다.


미루지 말았어야 했다. 시간이 유한하다는 것을 관념적으로는 알았지만 내가 준비될 때까지 기다려 줄 것이라 착각하고 살았다.


그러나

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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