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는 닥칠 일이었지만 그렇게 갑작스럽게 위중한 상태가 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숨이 차다는 엄마의 하소연을 가볍게 넘긴 것에 대한 죄책감이 몰려왔다. 배탈로 인한 설사 때문에 기력이 떨어져서 그러려니 생각했었다.
'맞다, 아버지! 아버지가 혼자 계시지...'
아버지에게 가서 요양보호사가 준비해 놓은 저녁 식사를 챙겨드리고 엄마가 입원했다는 걸 알려드렸다. 아버지는 치매가 상당히 진행된 상태라 복잡한 설명을 하기가 힘들었다.
"엄마가 심장이 안 좋아서 입원하셨어요."
"뭐? 언제 병원에 갔는데?"
두 시간 전에 구급차가 와서 엄마를 모시고 나간 것도 까맣게 잊어버린 아버지...
"요양보호사가 모시고 병원에 갔어요. 엄마, 가슴이 답답하다고 해서요. 입원하셨으니까 당분간은 병원에 계실 거예요."
"어디가 아프다고 그래? 아까 멀쩡했는데?"
몇 분 후에 또 퉁명스럽게 물으셨다.
"어디를 갔길래 아직도 안 들어온다냐?"
집을 나서기 전 아버지에게 몇 번이나 반복해서 엄마의 입원에 대해 설명해야 했다.
다음날 오전.
병원에 가보니 엄마는 인공호흡기를 떼고 산소만 연결한 상태로 있었다. 어찌 된 일인지 간호사에게 물었더니, 엄마의 의식이 돌아와서 담당의 회진 중에 인공호흡기를 떼어 달라는 의사 표현을 했다고 말했다.
전날 기도삽관 이후 눈도 못 뜨던 엄마가 나와 남편, 동생들의 부름에 눈을 뜨고 눈동자를 움직였다.
하룻밤 사이에 온몸이 퉁퉁 부어있고 기도삽관중에 다친 입술은 붓고 피멍이 들어 있었다. 입에 물린 채 고정시켜 놓은 삽관 장치 때문에 말을 하는 것도 불가능했다. 엄마가 말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기력이나 인지가 있는지는 놔두고라도 그 모습이 너무나 고통스러워 보였다. 입 안쪽에도 상처가 나지 않았을까 생각하며 엄마에게 고통을 준 것이 너무나 죄송했다. 그러나 응급실에서 기도삽관을 하지 않았다면 엄마는 동생들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을 것이다. 나와 동생들은 눈물을 참으려 해도 흐르는 것을 어찌할 수가 없었다. 최대한 감정을 억누르며 엄마를 불러 보았다. 남동생이 왔다는 말에 눈을 번쩍 떴으나 이내 졸린 듯 눈꺼풀이 스르르 감겼다. 손을 잡아도 마주 잡지 못했고 묻는 말에 대답을 하거나 고개를 끄덕이지도 않았다. 고모님 내외분이 다녀가셨고, 허락된 면회 시간이 끝나자 엄마에게 저녁에 아버지 모시고 다시 오겠다는 말을 하고는 모두 병원에서 나와야 했다.
아버지는 평소와 똑같은 일상을 보내는 중이었다.
남동생과 함께 집에 들어서자 아버지는 거실에서 TV를 보면서 간식거리를 입안에서 오물거리며 "니들이 어쩐 일이냐?"라고 물으셨다.
전화로 엄마의 상태를 듣고 요양보호사는 한숨지으며 안타까워했다.
인공호흡기를 뗀 것은 남은 삶의 질을 생각했을 때 잘한 일이었음이 분명한데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직감한 우리들 모두는 침울했다. 아버지만 다른 세상에 계신 듯 무심하게 말했다. "치료 다 끝났으면 빨리 집에 올 것이지 뭐 하고 있다냐, 거참..."
엄마의 입원 사흘째인 일요일.
전날 연락을 받은 막내 이모가 의정부에서 새벽에 고속버스를 타고 내려오셨다. 전후 사정을 전해 들은 이모는 인공호흡기를 뭐하러 달았었냐며, 환자를 고통스럽게 할 뿐이라고, 절대로 그러면 안 된다고 했다. 이모와 이모부는 진작에 '연명치료 거부 사전의향서'에 서명했다며 그 필요성에 대해서 진지하게 얘기했다.
"언니... 언니? 아프지 말고 편하게 가, 응?"하고 말하며 얼굴을 쓰다듬는 이모를 향해 엄마는 눈을 뜨는 것도 힘에 겨운 듯 어렵사리 들어 올린 눈꺼풀을 힘없이 닫아버렸다. 느리고 얕은 호흡, 미동도 없이 깊은 잠 속으로 빠져드는 것 같은 엄마의 모습을 바라보기만 했다. 터져버릴 듯이 부어오른 엄마의 몸은 살며시 쓰다듬기만 해도 아플 것 같았다.
이모는 맞벌이하는 딸의 아이들을 돌봐야 한다며 면회시간이 끝나자마자 서둘러 돌아가야 했다. 남동생은 아무래도 월요일에 가족을 데리고 다시 와야겠다며 이모를 터미널에 모셔다 드리고 울진으로 향했다. 엄마가 처음에 인공호흡기를 달고 있었기에 적어도 당분간은 중환자실에 계실 거라 생각하고 어린 아기를 데리고 내려오지 않은 것이었는데 뭔가 불안한 생각이 든 것이다.
중환자실에서는 보호자가 옆에 앉아서 환자를 오래 볼 수가 없어서 일반병실로 옮겨달라고 병원 측에부탁을 했다. 일요일이라 퇴원 환자가 없었고 병동 사정이 되지 않아서 월요일에 전실 처리를 해준다고 했다.
엄마가 아버지 옆에 계셨을 때는 엄마의 지시에 따라 아버지가 음식을 잘 챙겨 드셨다. 움직이지는 못해도 집안 살림이 어디에 있는지, 어떤 음식이나 식재료가 어디에 있는지 엄마가 다 알고 계셨으니까 물건을 찾고 음식을 찾는데 큰 불편은 없었다.
엄마가 부재한 집에서 아버지는 당장에 냉장고 안에 들어있는 조리된 음식도 찾아드시지 못했다.
요양보호사가 만들어 놓은 반찬이나 죽, 내가 갖다 드린 음식과 과일이나 간식은 그대로 둔 채 과자, 컵라면, 커피 같은 것들을 계속 드시면서 쓰레기는 아무 데나 던져두었다.
집을 치우고 음식을 데워서 아버지에게 드리고 강아지 산책을 시킨 후에야 친정집에서 나왔다. 저녁 면회시간에는 병원에서 가까이에 살고 있는 여동생이 엄마에게 한 번 더 가기로 했다.
엄마의 입원 나흘째인 월요일.
나는 오전에 3시간 수업을 했고 오후에 엄마가 병실로 옮겨진다고 해서 퇴근 후 친정에 들러 아버지를 모시고 병원으로 갔다. 간호간병 통합시스템이 아니라서 보호자가 옆에 상주해야 하는데 치매 환자인 아버지가 혼자 계실 수는 없는 일이어서 여동생의 대학생인 딸을 불렀다.
엄마 옆에 아버지와 조카가 있게 하고는 서울에서 내려오는 나의 둘째 딸을 데리러 역으로 마중을 나갔다.
엄마의 상태가 아무래도 오래 버티기 힘드실 것 같다는 얘길 듣고는 마음이 더 바빠졌다.
남동생 부부와 어린 조카들도 함께 울진에서 내려오고 있었다.
슬픈 마음을 들여다볼 여유도 엄마의 얼굴을 차분히 들여다볼 시간도 없이 난 계속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역에서 만난 딸을 데리고 병원으로 갔다가 아버지를 다시 집으로 모셔다 드렸다. 혼자 계시는 것보다 병원이 나을 줄 알았는데 정신없다며 집에 가고 싶다고 아이처럼 계속 보채는 아버지를 집에서 편히 계시도록 하는 수밖에 없었다. 모두들 정신없는 와중에 아버지의 강아지를 돌보기가 쉽지 않으니 우리 집으로 데려다 놔야 했다. 강아지를 못 데려가게 하는 아버지를 설득하기가 힘들어 결국은 예방접종하고 데려오겠다는 말로 둘러댔다. 아버지의 식사를 챙겨드리고 나서 고속도로를 달려 집으로 왔다.
엄마 옆에는 조카가 남아 여동생이 퇴근해서 올 때까지 있기로 했다.
얼마 후 남동생이 병원에 도착했으나 아기가 주차장에서부터 자지러지듯 너무 심하게 울며 달래지지 않아 할머니를 보지 못하고 부부만 교대로 병실에 들어갔다고 했다.
동생네 가족이 우리 집에 와서 저녁식사를 한 뒤 남동생은 밤에 엄마 옆을 지키려고 병원으로 갔다. 동생은 엄마의 빈자리가 눈에 띄는, 거실에 엄마의 전동침대가 놓여있는 집에 차마 들어가기가 힘들다며 우리 집에 가족을 머물게 해달라고 했다.
길고도 고단했던 하루를 정신없이 보낸 내가 '이제야 씻고 쉴 수 있구나'라고 생각한 순간, 병원에 있던 여동생에게서 연락이 왔다. 엄마가 곧 돌아가실 것 같다고 울먹이며 빨리 오라고 했다. 뭘 어떻게 해야 할지 생각이 안 나고 허둥댔다. 오랜만에 보는 동생네 가족들이 집안에서 움직일 때마다 두 마리의 강아지들은 미친 듯이 짖어댔다. 두 조카들과 올케, 그리고 강아지들을 통제하기 위해서 딸이 집에 남기로 하고 나 혼자서 어둠이 내린 고속도로로 다시 차를 몰았다. 서울에서 직장에 다니는 큰 딸에게 내려오라고 전화했다. 야근 중인 남편에게도 알렸다.
참으로 길었다. 하루가 너무나 길었다. 그런데도 나의 하루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엄마의 삶은 끝나버렸는데... 나의 하루는 너무나 정신없고 바쁘고 길었다.
엄마 옆에는 있지도 못하고 임종도 못 보고 온종일 정신없이 차를 몰고 다니기만 했다.
엄마가 세상을 떠나는데 인사도 못하고 난 그렇게 발을 동동거리며 뛰어다니고 있었다. 늘 그래 왔듯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