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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 리브로 Apr 26. 2022

산장 가는 길

무등산장에 오르며 아버지와 대화를 나누었던 시간

엄마가 돌아가시고 나서 몇 달 동안 엄마의 부재를 이해하지 못하던 아버지는 시간이 지나자 차츰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어느 날은 친정집에 가보면 엄마의 옷들을 다 꺼내놓고 버릴 거라고 했다. 장례식 이후 틈만 나면 엄마의 물건들을 정리하려고 했으나 번번이 알아서 하겠다고 손도 못 대게 하는 아버지의 반발에 부딪혀 어쩔 수가 없었는데 정말 아버지 스스로 엄마의 옷들을 의류수거함에 넣었다.

또 어떤 날은 늘 있던 자리에서 사라진 사진 액자가 어디 갔냐고 물으니, "내가 치웠다, 죽은 사람 얼굴 맨날 들여다보면 뭐 한다냐."라고 대답했다.

아버지를 혼자 두고 집에서 나올 때마다 한 손으로 강아지를 안고 힘없이 다른 손을 흔들며 주름진 얼굴에 억지웃음을 지어 보이는 아버지가 쓸쓸해 보여서 마음이 아팠다.

주말이면 아버지를 모시고 가까운 무등산장으로 드라이브를 가곤 했다. 구불구불한 긴 비탈길의 양쪽에 늘어선 벚나무에 봄에는 숨 막힐 듯 아름다운 벚꽃이 만개했다. 여름엔 울창한 나뭇잎들이 양쪽에서 맞닿아 끝없는 터널을 만들어 주었다.

창밖 풍경에 평온한 미소를 지으며 아버지는 옛 추억에 잠기곤 했다.  "내가 이 길을 처음 와  봤던 게 중학교 다닐 때였거든. 그때는 저기 저수지 쪽에 식당도 없었고 버스도 들어오지 않았지... "

아버지의 옛 추억, 고생 담을 듣고 얘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영화 속 장면처럼 차창을 스치고 지나가는 풍경을 감상하는 그 시간이 너무나 좋았다.

집에서 산장까지 가는 20분 동안 아버지는 했던 얘기를 똑같이 몇 번씩 반복했고 난 처음 듣는 것처럼 들어주고 대꾸해주며 때로는 웃고 때로는 눈물을 흘렸다.

조수석에 앉아 꾸벅꾸벅 졸고 있는 아버지에게 말을 걸어보기도 했다.

"아빠, 주무세요?" "아니, 안 잔다."

"창밖 좀 보세요, 너무 예뻐요." "응, 좋구나. 여기 와 본 지가 몇 년 만인지..."

"에고, 일주일 전에 저랑 같이 왔는데 생각 안 나세요?" "아, 그랬냐? 난 한참 된 것 같다..."

가만히 차창밖을 응시하고 있는 아버지에게 "무슨 생각 하세요?"라고 물어보기도 했다.

"세월이 참 빠르다. 내가 중학교 고등학교 다닐 땐 참 고생 많이 했는데... 주말이면 친구들이랑 나무 숲 사이를 헤치고 산길을 힘들게 걸어서 산장까지 올라갔어. 지금 이 길은 비포장이었고 너무 멀리 돌아서 가게 되거든." 그렇게 아버지는 몇 분 전에 했던 얘기를 다시 시작했다.

아버지가 좋아했던, 그래서 어렸을 때부터 자주 들어서 나에게도 익숙해진 올드 팝송과 스위트 피플의 연주곡들을 들으며 아버지와 둘이서 했던 얘기를 또 하고 또 하면서 보냈던 그 시간들이 그립다.


산장 드라이브를 하고 내려오는 길, 산장과 유원지 방향으로 나뉘는 지점에 위치한 한식당인 '민속촌'에 들러서 돼지갈비나 왕갈비탕을 드시는걸 아버지는 좋아했다.

늘 앉던 창가 자리에서 바라보는 풍경에 마음은 느긋해지고 시간이 정지해 있는 듯했다. 옷소매를 걷어붙이고 갈비탕 속의 왕갈비를 꺼내어 손으로 잡고 맛있게 뜯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생각했다. 아버지의 매일 매 순간이 저렇게 만족감으로 가득 차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고...

아버지는 강아지에게 주겠다며 남은 고기나 살점이 붙은 커다란 뼈다귀를 한쪽에 모아 가져가기도 했다.


커피를 좋아하셨던 아버지는 "아빠, 커피 드실래요?" 하는 나의 제안에 "좋지~ 아메리카노 한 잔 마셔야겠다." 라며 씩 웃었다. 아버지와 할 얘기가 많지는 않았다. 아버지의 기억은 늘 과거에 머물러 있었다.

"오늘 날짜가 몇일인지 맞춰보세요."

"음... 11월? 2월?"

"계절은요?"

"겨울?아니, 봄?"

"지금 몇 년도인지 아세요?"

"가만있자... 1900...?"

"2000년대예요."

"2005년?"

"2020년이에요. 아빠, 제가 몇 년도에 태어났어요?"

 "1900... 몇 년이더라?

"그럼 제 나이는요?"

"서른?" (큰애가 대학을 졸업했는데...)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에 정답과는 거리가 너무나 먼 아버지의 대답들이었지만 대화를 주고받는 그 시간이 좋았다.


휴대폰에 저장해 둔  동생들과 그 가족들을 보여주면 가장 나중에 결혼 한 남동생의 아이들을 알아보지 못하고 당신의 조카들인 줄 알았다. 아니면 "네 딸이냐?" 하고 물었다. 며느리를 보고도 조카의 이름을 댔다. 기억력 테스트라며 1분 전에 알려준 사위의 이름이나 손주들의 이름을 다시 물어보면 기억을 못 했다.

그런 질문들이 아버지의 뇌 활동에 도움을 준다기보다는 자신의 기억력에 대한 실망감이나 당혹감을 안겨주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아버지와 가까이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그 시간이 좋았다.


올봄에는 아직 무등산장에 가지 못했다.

산장 가는 길을 가다 보면 앞으로는 가질 수 없는 그 소중한 시간에 대한 그리움과 야윈 몸으로 기력 없는 걸음을 걷던 아버지의 모습이 떠올라 울음이 터질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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