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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 리브로 Apr 29. 2022

아버지네 위층에서 전화가 왔다

집에서 연기가 올라와요

아버지의 아파트 위층에는 부녀회장이 다.

가끔 요양보호사가 오갈때 마주치면  인사를 나누었고 아버지의 상황을 요양보호사로부터 전해 들었다고 한다.  

연락처를 알게 된 그가 어느 날 전화를 했다.

"OO 씨죠? 407호 부녀회장이에요. 한 번씩 음식 타는 냄새도 올라오고 해서 불안해서요. 혹시라도 무슨 일 있으면 내가 연락할 곳을 알아야겠더라고... 아버지 치매가 심하신가 봐? 내가 걱정이 돼서 말이야. 아버지네 앞집도 할아버지 혼자 사시는데 거기도 치매라더구만, 에휴."

"아, 네... 앞집도 그런 줄은 몰랐네요. 무슨 일 있으면 연락 부탁드릴게요."


부녀회장을 통해 아버지의 사정을 알게 된, 같은 통로에 사는  다른 아주머니는 가끔 음식을 1회 용기에 정갈하게 담아 비닐봉지에 넣어서 현관 문고리에 걸어두기도 했다. 주말에 집에 가보면 307호와 306호, 마주 보고 있는 두 집의 문고리에는 새로 담근 김치나 부침개, 나물, 떡 같은 음식들이 들어있곤 했다.

306호 할아버지는 얼마 후 요양병원에 들어가셨고 집주인이 바뀌었다.



갑자기 부녀회장의 다급한 목소리를 듣고 허둥거렸던 날이 있었다.

"아까부터 집에서 연기가 계속 올라와요. 벨을 누르고 문을 두드려도 대답이 없어!"

"네? 음식을 데우다 태우시는가 봐요. 전화 걸어볼게요. 한 번만 더 확인해 주시겠어요?"

아버지는 전화를 받지 않으셨다. 몇 번의 통화시도가 불발되고 부녀회장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아버지 집의 문을 두드리고 있었다. 초인종의 음악 소리도 함께 울리고 있었다.

마음이 다급해지고 119를 불러야겠다고 생각한 순간 문이 덜컹 열리는 소리가 났다. '휴우...'

그리고 무슨 일이냐며 퉁명스럽게 불청객에게 쏘아대는 아버지의 쉰 목소리와 시끌벅적 아주머니의 호들갑스러운 목소리가 뒤섞여 들려왔다. 아버지의 성격에 아주머니를 집 안에 들일 일은 없었고 내가 전화를 건네 달라고 말했다.

"아빠, 집에서 뭐가 타는 연기가 난다고 부녀회장님이 전화했어요. 불에 뭐 올려놨는지 얼른 확인해 보세요."

"뭔 연기가 난다고 난리다냐?" 그 순간에도 수화기 너머로 아주머니의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울렸다.

"아이고! 시커먼 연기가 가득하구먼. 뭘 태우신다요, 얼른 불 좀 끕시다!"

"내가 알아서 할 것인지 뭘 시끄럽게 그런다요!" 아버지의 고집은 아무도 못 말린다.

"아빠, 불 날 수도 있어요. 지금 가스불 끄세요."

몇 번 큰 소리가 오가고 나서야 아버지는 가스불을 확인하러 갔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말했다.

"냄비에 뭐가 좀 탔다."


내가 서둘러 집에 갔을 때 1층 통로에서부터 탄내가 진동했다. 현관문을 열었더니 거실에 뿌연 연기가 가득했다. 부엌으로 가서 보니 스테인리스 냄비가 연탄처럼 새까맣게 타있고 식탁은 냉동실에서 꺼낸 음식 담긴 통들로 어지럽혀져 있었다. 아버지는 무엇을 태웠다는 사실도, 나와 30분 전에 통화를 했었다는 것도 잊고 있었다.

"네가 어쩐 일이냐? 오늘은 안 바쁘냐?"라고 무심히 묻는 아버지에게 화를 냈다.

"온 집안에 매캐한 연기가 가득한데 환기도 안 시키고 문을 꼭꼭 닫아두고 계시면 어떡해요?"

"추우니까 문을 닫아뒀지. 뭔 연기가 가득 찼다고 난리냐?"

"타는 냄새가 진동하는데 아무렇지도 않으세요?"

"난 모르겠는데?"

"위층 부녀회장이 문 두드리고 초인종 눌러도 대답이 없으니까 저한테 전화하고 그랬는데 생각 안 나세요?"

"그래? 모르겠는데? 그 여자도 이상하다. 음식을 하다 보면 좀 탈 수도 있지..."

"아이고, 지금 좀 탄게 뭐예요, 까딱하면 집이 홀라당 타버리게 생겼구만!"  


냄비 안에 든 것이 뭔지 형체를 알아볼 수도 없게 까만 재가 되어있었다. 다음날이 되어서야 요양보호사를 통해서 내용물을 알게 되었는데 냉동실에 얼려둔 삶은 팥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죽을 좋아했고 갈수록 더 집에서는 밥보다 죽을 드시려고 했기에 요양보호사가 자주 닭죽이나 깨죽, 호박죽, 팥죽 등을 만들었다. 자주 죽을 만들다 보니 미리 팥을 삶아서 넣어두고 사용하고 있었는데 그 팥을 아버지가 냄비에 넣고 불에 올려둔 채 잊어버리고 TV만 보고 있었던 것이다.   




그 사건 이후 가스레인지를 전기 인덕션으로 바꾸었는데 그 과정도 쉽지 않았다.

멀쩡한 가스레인지를 놔두고 왜 돈을 들여서 새 물건을 사느냐고 노발대발. 화재의 위험성을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없었다. 절대 불 같은 건 안 난다고, 누굴 바보로 아느냐고, 어쩌다 음식 한 번 태운 걸 가지고 호들갑 떤다고 소리 지르며 화를 냈다.

사실 몇 달 전부터 화재의 위험은 감지하고 있었다. 자주 냄비를 태워서 그걸 닦느라 너무 힘들다는 요양보호사의 얘기를 들었고 주말마다 나 역시도 같은 광경을 목격하곤 했다. 도시가스 업체에 전화를 걸 때마다 아버지의 반대에 부딪혔고 매번 두 손 들고 말았던 것인데 그 사건을 계기로 난 단호하게 밀고 나갔다.  요양보호사가 일하는 시간에 아버지를 모시고 나가 외식을 하면서 인덕션을 들여놓고 가스관을 막고 가스레인지를 버리게 했다. 뒤늦게 알고 화를 내는 아버지에게 가스레인지는 내가  쓰던 것이 고장 나서 가져다 쓰는 것이고 대신에 더 안전한 것으로 바꿔드린 것이라고 둘러댔다.


그 후로도 아버지는 자주 아니 거의 매일 음식을 태웠다. 조리할 필요가 없고 그냥 냉장고에서 꺼내기만 하면 되는 음식도 데우려고 했고 전자레인지의 사용법은 오래전에 잊어버렸다. 그냥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된다고 가르쳐드려도 소용이 없었고 전기 코드는 항상 빼놓고 있었다. 멀티탭에 연결해놓고 스위치로 전기를 차단할 수 있도록 해놓았지만 늘 코드를 잡아 빼놓는 걸 막을 수 없었다.




언제부터인가 아버지는 전화를 전혀 받지 않았다. 벨 소리가 나게 해 놔도 진동 모드로 바꿔버리고 TV 소리를 귀청이 떨어져 나갈 정도로 크게 해 놓으셨다. 청력에 이상이 있는 것은 아니어서 주방에서 속삭이는 소리도 거실에서 다 알아듣고 말소리도 크게 내지 않으시면서 유독 TV 소리만 크게 해 놓는 습관이 있었다. 그것 때문에 난 집에 갈 때마다 머리가 너무 아파서 볼륨을 줄였고 아버지와 늘 실랑이를 해야 했었다.  본인은 수시로 전화를 하고 잊어버리고 또 하고 또 하면서 걸려온 전화는 받지 않는 아버지였다.


전화도 안 받고 밖에서 길을 잃을 위험이 있는 아버지를  위해 위치추적 어플을 구매해서 이용하면서 걱정을 많이 덜 수는 있었다. 그러나  혼자 계시는 아버지를  늘 마음에 두고 죄책감과 미안함, 안타까움에  마음이 아팠다.


주변에서  지인들의 부모님도 치매를 앓고 있다는 얘기가 들려왔다. 요양병원에 모시거나 형제자매들이 돌아가면서  모시는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집에서 모시는 경우에는 반드시 형제자매, 가족 구성원들과 많은 갈등이 생기고 서로 상처를 주고받다가 결국에는 부모님을 시설에 모시게 된다는  얘기였다.


동생들과 얘기를 해봐도 뚜렷한 해결책은 나오지 않았고 머지않아 요양시설에 모시게 될 것이라는 예측만 할 뿐 누가 먼저 그 얘길 꺼내지는 못하는 상황이 한동안 계속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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