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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 리브로 May 12. 2022

여동생의 결혼식

오늘만은 실수 없기를...

2019년 12월. 여동생이 결혼식을 올리게 되었다.

엄마가 돌아가시기 전에 예비사위의 얼굴을 보셔서 그나마 다행이긴 하나 동생은 심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것이다. 힘든 결혼 생활과 이혼 후에 찾아온 소중한 인연과의 결합이었다.

여동생은 결혼 준비를 하면서 여러 가지 도움이 필요했을 텐데 아무런 내색을 하지 않았고 나도 내가 무엇을 도와줄 수 있는지 묻지 않았다. 신혼여행을 다녀오고 나서야 따뜻하게 맞아 줄 친정이 없다는 것이 서러웠다고 한 번 속내를 내비친 여동생에게 2년도 훌쩍 넘은 지금에서야 미안한 마음이 든다. 내가 친정엄마의 역할을 해주었어야 했지만 그때 나에겐 마음의 여유가 너무나 없었다.


우린 자매라고 하기엔 너무나 서로를 모르고 살아왔다. 여동생과는 함께 산 시간도 많지 않았고 나이 차이도 다섯 살이나 나서, 나는 어린 시절을 함께 보냈고 한두 살 나이 차가 있는 사촌들과 더 가깝게 지내왔다. 여동생은 자신의 힘든 생활 때문에 친정 부모를 도울 여력이 없었다고 늘 항변해왔지만 난 이해하려고 하지 않았다. 나 혼자서 모든 책임을 지고 몇 년 동안 친정 일에 발 벗고 나선 대가로 정신적, 체력적으로 많이 힘들었을 뿐만 아니라 가족 내의 불협화음이 계속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빚을 갚느라 남동생과 함께 부담했던 돈 문제도 갈등의 요소였다. 

 



아버지는 그 해 여름부터 소변 실수가 더 심해져서 밖에 모시고 나갈 때마다 조수석의 시트가 소변으로 젖었다.

바짓가랑이를 타고 흘러내린 소변이 양말과 신발을 적셨다.

기저귀를 착용해야 했지만 어림없는 일이었다. 절대 실수한 적 없다고 물이 묻었을 뿐이라고 우기는 아버지를 계속 몰아붙일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연세 많은 어르신들은 대부분 요실금 증세가 있대요. 기저귀 말고 1회용 팬티를 입고 나가시면 좋겠어요. 혹시 실수하더라도 표가 안 나요."

팬티형 기저귀를 1회용 팬티라고 돌려서 말하고 외출할 땐 입고 나가시라고 아무리 얘기해도 소용없었다.

"난 요실금 같은 거 없다!"

확고부동한 아버지를 이길 수가 없었고, 산책길에서도 레스토랑에서도 나는 흠뻑 젖은 바지 차림의 아버지와 수도 없이 나란히 걸어야 했다. 

아버지는 정말로 본인이 소변을 봤다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차마 인정하기 싫어서 아닌 척 시치미 떼는 것일까? 소변을 보고 난 후 뒤처리를 못하는 것일까? 아니면 자신도 모르게 그냥 흘러나와버리는 것일까?

나의 머릿속은 의문들로 가득했지만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동생의 결혼식은 12월 중순이었다.

아버지는 결혼식날 입을 양복을 수선집에 맡겼는데 어딘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며 온 동네를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여동생에게 물어보니 아버지를 모시고 수선집에 가서 양복을 맡겼다고 했다.


며칠 지나자 하루에도 몇 번씩 아버지의 전화가 걸려왔다.

"너 내 양복 가져간 거 빨리 갖다 놔라."

"제가 왜 아버지 양복을 가져가겠어요?"

"김서방 빌려준다고 가져갔잖냐?"

"아이고 아버지 옷이 김서방한테 맞겠어요?"

"아.. 저... 네가 가져갔다니까! 그걸 보고 똑같이 만든다고, 양복점에 가져간다고!"

"아빠, 요즘 세상에 누가 양복점에서 옷을 맞춰요? 다 기성복 사 입어요."

"네가 가져갔다고!! 얼른 찾아오라니까!!"

아버지와 실랑이를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라고 난 꼬박꼬박 토를 달았는지...


"네~~ 오늘은 바쁘니까 내일 갖다 드릴게요~~"

진작에 그렇게 말할 것이지... 나도 참 못됐다.

아버지는 한두 번쯤 더 독촉 전화를 하고 나서는  양복바지에 대해서  더 언급하지 않았다.


여동생의 결혼식 전날, 멀리 울진에서 남동생의 가족이 내려왔다. 아버지가 혹시라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실수할까 봐 1주일 전부터 매일  팬티 기저귀를 착용하시라고  반복해서 얘길 했지만 누구도 아버지를 이기지 못했다.

남동생도 마찬가지. 대신에 갈아입을 여벌의 바지를 챙겼다.


신랑의 손을 잡고 입장한 딸을 포옹하며 등을 가볍게 두드리는 아버지의 모습은 너무나 자연스러웠다.

아버지의 어깨너머로  여동생의 울고 있는 얼굴이 슬쩍 보이자 나도  뜨거운 눈물이 차올랐다.

엄마의 빈자리는 고모가 대신해서 앉았고 고모는 직접 작성한 축사를 낭독하셨다.

둘째 딸의 결혼식에서 아버지는 무슨 생각을 골똘히 하고 계셨을까...


나의 시선은 온통 아버지만을 향해 있었다.

결혼식이 끝나고 피로연 식사가 끝나도록 아버지의 바지는 무사했다.

식장을 나서기 전에 화장실에 들렀다 나온 아버지의 바짓가랑이는 젖어 있었지만 뒤에서 보면 표가 나지 않았다.

'다행이다. 이 정도면 훌륭하지...' 나는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아이를 무대에 올려놓고 가슴 졸이는 엄마처럼  난 그렇게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아버지는 지금 어떤 기분일까... 아버지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 슬픔일까? 아니면 기쁨? 허전함? 옆자리에 앉아있어야 할 엄마에 대한 그리움?'

'어쩌면  엄마의 장례식장에서 그랬듯이 모든 게 정신없고 그저 집에 가서 쉬고 싶다는  생각이었을까?'

그렇게 난 아버지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날의 주인공인 여동생에게 했던 말, "축하한다, 행복하게 살아라."라는 말이 공허하게 들리지 않았기를...

아버지가 허망하게 가시고 나서야 그동안 껴안고 살았던 서로 미워하고 원망하는 감정들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이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늦은 것이 아니길 바라며 진심으로 하고 싶은 말,

동생아, 행복하게 살아야 돼~

그동안의 마음고생은 털어버리고 지금부터 다시 시작하는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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