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사

멋쟁이 할머니 김여사...

by 엘 리브로

김여사는 멋쟁이였다.


흔히 할머니들은 숱 없는 반백의 머리카락을 뒤통수에서 돌돌 말아 은이나 나무로 된 비녀로 쪽진 머리 모양을 하고 있었던 시절이었다. 김여사는 늘 까맣게 염색한 머리를 짧게 자르고 탱글탱글한 파마 상태를 유지했다.

희진의 친구들 중에는 할머니를 보고 신식이라며 깜짝 놀라는 친구도 더러 있었다.


헤어스타일뿐만이 아니었다. 옷차림도 주변의 할머니들과 달랐는데 가장 큰 차이는 중년 이상의 아주머니들이 입는 통 넓은 고무줄 바지를 입지 않는 것이다. 할머니는 집에서도 늘 원피스 차림이었고 외출이라도 할라치면 맞춤 원피스에 자켙과 구두, 토트백과 양산이 기본이었다. 겨울엔 모피로 만든 까만색 반코트와 여우 목도리도 둘렀다. 희진은 그 모피의 감촉이 좋아서 손바닥으로 쓸어보곤 했는데, 코트의 어깨 위에 걸쳐있는, 여우 머리가 그대로 박제된 채로 달려있는 목도리를 보면 기겁을 했다.

며느리는 없는 살림에 철마다 양장점에서 옷을 새로 만들어 입고 곗돈으로 코트를 사 입는 시어머니가 곱게 보이지 않았는지 김여사가 차려 입고 외출할 때마다 표정이 좋지 않았다. 그래도 희진은 "너네 할머니 신식이시다. 너무 멋쟁이시다!" 하는 친구들의 말을 듣는 것이 기분 좋은 일이었다.




김여사와 막내아들, 둘째 딸(희진의 삼촌과 작은 고모)의 얘기를 종합해 보면, 김여사는 한 때 잘 나가는 외식 사업가였다.

1921년생 김여사는 20대 중반의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서 세 아이들을 키워냈다. 그 시대 여자의 삶으로는 꽤 진취적이고 신식이어서 미용실을 운영하다가 도청 앞에서 식당을 차렸다. 음식 솜씨가 좋아서 금세 넓은 식당으로 옮기더니 건물을 사들여서 번화가에 큰 레스토랑을 운영했다고 했다.


"할머니, 사장님이었어?"

"맞다, 내가 사장이었지."

"왜 지금은 사장이 아니야?"

"그것이... 부도가 나브렀재. 광주 식당에서 돈을 많이 벌었고 화순에다가 큰 식당을 짓고 있었는디, 그놈이(정치범으로 오랫동안 감옥살이를 했고 김여사의 구명으로 풀려났다는, 김여사의 오빠를 말함) 허구헌날 전과자들 데리고 와서 자재 훔쳐가고, 나는 양쪽 왔다 갔다 함서 혼자 고생하고 있는디... 짓고 있던 식당에 불이 나서 또 홀딱 말아 묵고..."


희진은 심심하면 한 번씩 할머니의 전성기를 상상해 보았다. 하루아침에 사업이 부도가 나고 길에 나앉을 지경이 되기 전까지 얼마나 많은 것들을 누리고 살았는지 들었던 터였다.

'만약 할머니 사업이 망하지 않았다면 지금 난 어떤 집에서 살고 있었을까? 멋진 2층 양옥집에 정원도 있고 넓은 마당 한쪽에는 자동차를 넣어두는 차고도 있을 거야. 나도 고모들처럼 승마도 하고 기계체조도 배울 수 있었겠지?' 하는 생각을 했다.

'에이, 타임머신이 있다면 타고 과거로 가서 할머니 건물이 남의 손에 넘어가지 않도록 할 수 있을 텐데...'

할머니가 경제사범으로 조사받고 있는 동안 할머니의 장녀였던 큰고모가 채권자들에게 문서를 넘겨주고 말았다는 것이다. 큰고모는 결혼한 이후로 단 한 번도 할머니를 보러 오지 않았다. 희진은 명절 때마다 아버지의 손을 잡고 큰고모 집에 인사를 하러 갔는데 너무나 어색하고 쑥스러워서 목석처럼 가만히 있곤 했다.




김여사는 사업에 실패한 이후로 다시 일어서지 못했다. 사업을 하던 도중에 만난 의사에게 속아서 아들 하나를 낳았고(희진의 아버지와는 12살 나이 차이가 나는 막내) 사업 실패도 그 남자와 관련이 있다고 했으나 자세한 내용은 어른들이 말해주지 않아서 희진은 늘 궁금했다. 어른들은 하나같이 더 이상 깊은 얘기를 해주지 않았다.


김여사의 두 딸들은 다니던 대학을 중도에 그만두고 교사 양성소를 거쳐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고 각자 동료 교사를 만나 결혼을 했다.

"아빠는? 왜 아빠는 선생님이 안됐어?"라는 희진의 질문에 김여사는 늘 같은 대답을 했다.

"니 애비는 속이 없었지. 정신 못 차리고 맨날 연애나 하고..."

희진은 아버지에게도 물어봤다. "아빠는 왜 선생님이 안됐어?"

"나는 어머니 사업을 일으켜보려고 애썼지... 등록금이 없어서 대학도 다니다 그만두고..."

희진은 아리송하다, '누구 말이 맞는 거지?'


김여사는 멋지게 차려입고 외출을 자주 했다. 중매를 한다고 했다. 희진은 TV 드라마에서 봤기 때문에 중매쟁이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알았다. 할머니는 "이번 일 잘 되면 사례금 많이 받을 수 있어. OO네 딸이 의사만 소개해 달라고 안달이었는데 괜찮은 의사 하나 소개받았다."

희진은 늘 마음속으로 기원했다. 할머니가 만나게 해 준 사람들이 꼭 결혼하게 해 달라고...

김여사의 중매사업은 그리 잘 되지 않은 것 같았고 어느 날 뉴스에서 "마담뚜"라는 이름으로 부르는 중매쟁이들을 단속한다고 했다. 그게 뭔지는 몰랐지만 나쁜 일인가 보다. '그런데 왜 나쁘지? 결혼할 사람을 소개해 주는 것이 나쁜 일인가?' 하고 희진은 이해할 수 없었다.




희진은 할머니가 세상에서 제일 좋다. 가끔 TV에서 사람들이 죽는 것을 볼 때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어떡하나 생각하며 깊은 슬픔에 빠졌다. 할머니 없는 세상에서 어떻게 살아갈지 상상할 수가 없다.

푹푹 찌는 무더운 여름밤에도 할머니를 꼭 끌어안고 땀에 흠뻑 젖은 채로 잤다.

"아이고, 이놈의 가시나, 더워서 사람 죽겄다. 저리 좀 안 가냐?" 더위에 짜증이 난 할머니가 밀쳐내려 해도 희진은 절대 떨어지지 않고 더 찰싹 들러붙었다.

할머니가 좋아서 꼭 붙어 있기도 했지만 사실은 TV '전설의 고향'에서 본 귀신이 계속 눈앞에 떠올라 무서워서 어쩔 수가 없었다. 차라리 욕을 먹는 게 낫지 할머니의 옆구리에 붙지 않고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김여사는 일주일에 한 번 방영하는 '전설의 고향'을 한 번도 빼먹지 않고 시청했지만 사실은 초저녁부터 몰려오는 잠을 이기지 못하고 드라마가 시작하자마자 꾸벅꾸벅 졸다가 이내 코를 골기 시작한다.

"할머니, 할머니! 자? 안돼, 일어나. 나 무섭단 말이야."

"응? 나 안 잔당께, 안 잔다고... 컥, 드르렁..."

"할머니, 일어나~~" 희진이 몸을 잡고 흔들면 김여사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깨서 TV 화면을 주시하다가 다시 꾸벅꾸벅 졸았다. 그러다 화며 속에서 귀신의 모습이 갑자기 확 드러나면 희진은 소리를 질렀다.

"아아악!"

"아이고 깜짝이야, 뭔 일이여?"

희진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할머니 옆에 찰싹 붙었다가 슬그머니 이불을 내리면서 다시 화면으로 시선을 준다. "꺄아아악~~~" 화면 속에서 누군가 비명을 지르고, 희진은 다시 이불속으로 숨으면서 양쪽 귀를 손바닥으로 꼭 덮고 호들갑스럽게 할머니를 부른다.

그렇게 몇 번의 소란을 떨며 '전설의 고향'을 끝까지 보고 나면 김여사는 잠에 취한 목소리로 말한다.

"벌써 끝나브렀냐? 오메, 이번에는 안 자고 끝까지 볼라고 벼렀는디..."

그날 밤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이불속으로 꽁꽁 숨긴 채 희진은 잠을 자고 귀신 꿈을 꾼다.

그리고 다음날 아침 밥상머리에서 할머니에게 지난밤에 본 '전설의 고향' 내용을 이야기해주고 학교에서도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줬다.




김여사는 일본말을 능숙하게 잘했다. 소학교(국민학교)도 나오지 않은 대부분의 할머니들과 달리 중학교까지 공부를 한 김여사는 일본어로 수업을 받았다고 했다. 친한 친구 몇 분과는 만날 때마다 일본어로 대화를 해서 희진은 무슨 말인지 하나도 알 수가 없었다. 또 김여사는 매일 신문을 읽었는데 희진이 보기에는 하나도 알아볼 수 없는 한자가 전체 기사 내용의 절반은 되는 것 같았다. 모르는 글자를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할머니에게 물어보면 다 알려줬다. 한자도 많았고, 한글인데도 무슨 말인지 모르는 어려운 낱말들을 할머니는 잘 설명해줬다. 집안일을 하면서 짬이 날 때마다 신문을 바닥에 펼쳐놓고 열중해서 읽는 김여사 옆에서 희진은 연재소설만 열심히 읽었다.


김여사는 손재주가 좋았다. 희진이 학교에서 내준 미술 숙제로 색종이 꽃을 만들 때 밑그림도 없이 대충 가위로 색종이를 자른 김여사는 젓가락을 사용해서 색종이 꽃잎을 돌돌 말았다가 펼쳐서 입체적인 꽃 모양을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운동회 때 무용시간에 사용할 소품이 망가져도 김여사의 손에서 뚝딱 고쳐졌다.


희진은 할머니들이 부르는 'OO타령'이나 '미아리 고개' 같은 구슬픈 노래를 김여사가 부르는 것을 들어보지 못했다. 김여사는 주현미나 조용필의 최신가요를 즐겨 불렀다. 대중가요 프로그램, 대학가요제 같은 노래 프로그램을 좋아했다. 노래를 좋아하는 김여사는 희진에게도 자주 동요를 불러보라고 해서 희진은 양손을 맞잡고 흔들면서 동요대회에 나오는 아이들처럼 목청을 높여 노래를 부르곤 했다.

"잘한다, 잘해. 아까 동요대회 나온 애들보다 잘하구만. 희진이도 방송에 한 번 나가도 쓰겄다."

희진은 할머니의 칭찬에 우쭐했지만 사실은 정말 방송국에 가자고 할까 봐 겁이 났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무대 위에서, 카메라 앞에서 노래를 한다는 건 너무나 떨리는 일이니까...


김여사는 가끔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내가 가수가 되고 싶었는디 어무니가 머리를 빡빡 밀어분다고 난리였재. 시집이나 갈 것이재 딴따라 짓거리할 거냐고... 그때 유랑극단이 공연하러 왔을 때 따라갈라고 했는디 들켜서 두들겨 맞았어야. 내가 백설희보다 노래를 더 잘했구만!"

"내가 눈이 나빠서 안경을 씅께 느그 증조할머니가 "가시내가 시집 못 갈라고 그러냐?"함서 안경을 뺏어서 마당에 던져 깨브렀어. 근디 안경을 안 쓰고 살다봉께 신기하게 눈이 좋아져브렀다."


가끔 희진은 생각했다.

'할머니가 가수가 되었다면 얼마나 좋을까? 텔레비전에 나오는 가수가 나의 할머니라면 얼마나 멋진 일일까... 친구들은 엄청 부러워하겠지... 우리 집은 부자가 되었을 텐데...'


생각할수록 못내 아쉬운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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