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매일 옥신각신 하면서 미루기만 하다가, 어쩌다 출근 안 하고 쉬는 날에도 미루고 미루다 마지못해 잠자기 직전에야 영어 회화 프로그램의 시작 버튼을 클릭해 봤다.
"세상 좋네~" 소리가 절로 나온다. 핵심 표현을 변형해 가면서 연습시켜주고 AI와 회화를 주고받은 것을 프로그램이 알아서 녹음해서 들려준다. 스피킹 점수도 알려주고 내 발음도 확인이 되니 맘에 드는 점수가 나올 때까지 반복해서 시도할 수 있다.
원어민을 직접 만나지 않아도 얼마든지 회화 연습을 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문제는 얼마나 열의를 갖고 지속적으로 학습하는가이다. 휴대폰에 깔아놓은 어플에서는 매일 새로운 주제의 알림이 뜨니, 휴대폰을 켤 때마다 밀려있는 학습주제의 목록을 눈으로 확인하면서 한숨이 나온다.
지금은 직장도 쉬고 있으면서 뭐가 그리 바쁜지... 해야겠다고, 해야 한다고 마음먹은 일들은 많은데 하루에 다 해내지 못하고 있다.
'루틴으로 해야 할 목록이 많아서인가? 내가 너무 욕심을 부리는 것인가?'라고 생각해 보지만 양심적으로 말하자면 그건 아닌 듯싶다. 지금 나에게 시간은 넘치고 넘친다.
문제는 "동기의 부재"이다.
"초등학생들에게 영어학습의 필요성을 어떻게 알려줄 수 있을까요? 동기 부여하는 특별한 방법이 있나요?"
영어강사를 지원하면 늘 마주하는 면접 질문 중 하나가 "동기부여 방법"이다.
"동기부여라고요? 말도 안 되는 소리. 무슨 동기부여야. 동기는 스스로 마음속에서 우러나는 거지..."
교육대학원에서 영어 교수법을 강의하면서 지도교수가 한 말이다.
하아... 영어를 가르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사람에게 중요한 그 일, 동기부여.
면접관 앞에서는 뭐라고 이런저런 횡설수설하는 말로, 임기응변으로 대처하고 나오지만 늘 내 마음속에 화두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 바로 동기부여의 방법이다.
우선, 나 스스로에게 먼저 동기부여를 해보자.
그러고 보니 "부여"라는 말부터 이상하지 않은가?
"부여"라는 말의 사전적 정의는 "가지거나 지니게 하여 주다"이다.
타인에게 가지라고 준다는 말이다.
"동기"라는 말의 사전적인 뜻은 "어떤 일이나 행동을 일으키게 하거나 마음을 먹게 하는 원인이나 계기"이다. 즉, 무언가를 하고 싶게 만드는 이유인 것이다.
그럼 다시, 학생들이 영어공부를 하고 싶어지는 이유를 선생님인 내가 갖다 주어야 한다고?
초등학생들 앞에서 영어를 잘하면 좋은 점을 수 십 가지 나열해 본다.
글로벌 어쩌고, 의사소통 어쩌고, 활동 범위 어쩌고...
씨알도 안 먹힌다.
"AI가 있잖아요?", "구글 검색하면 돼요~"
"그럼 뭐하러 여기 와서 영어 수업을 듣고 있니?"
"엄마가 안 가면 가만 안 둔대요.", "중학교 가면 영어 따라가기 힘들대요.", "방과후 안 하면 학원 보낸대요, 학원은 숙제도 많고 밤늦게 끝나서 싫어요."
한마디로 동기는 자기 안에서 생겨나는 것이지 누가 코앞에 갖다 주는 것이 아니다.
내가 처음 영어를 배웠던 시절로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 본다.
난 처음부터 영어가 재미있었다. 중학교 1학년 영어 첫 시간에 알파벳 26글자의 대문자와 소문자를 한꺼번에 칠판에 쓰신 선생님은 다음 시간까지 다 외워 오라고 하셨다. 그리고 다음 시간부터 시험을 보고 틀린 개수대로 매로 손바닥을 맞았다. 그렇게 무식한 방법으로 주입식 영어교육은 시작되었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흥미는커녕 공포감을 먼저 익혔다.
그런데 나는? 나는 처음 보는 꼬부랑글씨의 이름을 알고 쓸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이 그냥 신기하고 좋았다.
알파벳을 가르쳐 준 다음 바로 인사말부터 시작해서 이름을 묻고 대답하고, 처음 만나서 소개하고 인사하는 대화를 따라 말했다. 신기했다. 그냥 아무런 의미 없이 나열되어 있던 검은색의 활자들이 그룹을 이루고 의미 있는 단어가 되고 그것이 내 눈에 보인다는 것이, 내가 소리 내어 읽을 수 있고 그 의미까지 알게 되었다는 것이 마냥 재미가 있었다.
더 잘하고 싶어서 참고서와 카세트 테이프를 사고 매일 교과서의 회화 부분을 듣고 따라 말했다. 발음이 좋다는 칭찬을 들으니 더 신이 나서 열심히 했다.
문법, 독해, 주초 고사, 주중 고사, 주말 고사, 월중 고사, 월말고사, 중가 고사와 기말고사, 거기에 쪽지시험까지...
그 당시 대부분의 사립학교에서는, 중고교 평준화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많은 지필평가를 했고 주입식 교육의 끝판을 보여주었다. 학교에 다니는 것이 시험을 보기 위한 것인 것 같았다. 내가 다녔던 중학교에서는 매월 전교생의 학년 석차를 중앙 복도의 계단 벽면에 써서 붙이는 만행까지 자행되었다. "학생의 인권"이라는 단어가 부재했던 시절 교육현장의 모습이다.
그렇게 야만스런 교육의 현장에서 우리 세대는 무엇을 배웠겠는가...
매를 맞지 않기 위해서, 친구보다 점수를 더 잘 맞기 위해서 공부를 했던 시절이었다. 그것이 바로 학습동기였던 것이다. 그보다 더 상위의 동기는 "좋은 대학에 가는 것"이었다.
학교의 분위기가 사뭇 달라진 지금은 학습동기가 달라졌을까? 무한경쟁의 사다리를 타고 한없이 올라가는 것만이 인생의 목표가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은 사람들이 많아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학생들은 공부하는 목적도 미래의 꿈도 우리 세대가 가졌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왜냐고? 부모 세대가 낳았고 부모 세대의 사고방식으로 키워진 아이들, 그리고 그 아이들이 또 비슷한 사고의 틀 안에서 자기의 아이들을 키우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현장의 모습은 창의적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목표 아래 많이 바뀌었으나 (그것도 초등교육에서나 볼 수 있는 변화일 뿐) 학부모들의 관심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높은 점수, 좋은 대학, 아이의 흥미와 적성과는 아무 상관없는 전문직에 대한 갈망을 주변에서 너무나도 자주 보게 된다.
영어학습을 위한 동기를 생각하다가 산으로 가고 있지만, 어쨌든 동기는 누가 억지로 부여해 줄 수도 없고, 받았다고 한들 오래 지속될 수도 없다.
내가 영어를 좋아해서 열심히 했던 것은 재미가 있어서, 칭찬을 받으니 더 기분이 좋아서, 영어 선생님이 예뻤고 그 선생님처럼 되고 싶어서였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에게 재미있는 수업시간이 될 수 있도록, 학생들의 롤 모델이 되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어린 학생들의 마음에 영어를 계속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가도 다시 시험을 위한정답 찾는 요령만을 알려주는 학교 교육(중등 교육)에 몇 년 동안 노출되다 보면 처음에 가졌던 학습 욕구는 사라져 버릴 것이다.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러한 과정을 거치다 보니 공교육으로는 영어로 말 한마디 못하는 이상한 현상이 일반화되고 말았다.
그래서...
지금의 나는...
영어를 가르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 수준 이상의 회화를 자신 있게 구사하고 있는가라고 누가 묻는다면 대답은 "아니오"이다.
나의 영어에 대한 호기심과 학습욕구는 학년이 올라가면서 점차 점수를 잘 맞는 것에 안주하면서 나태해졌고 대입학력고사를 끝으로 영어에 대한 관심도 사라져 버렸던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지 10년이 지나 방송통신대학에 편입해서 다시 영문학을 공부하고, 그로부터 또 10여 년이 지나서 교육대학원에서 영어교육 석사과정을 공부했으나 나의 영어 말하기 실력은 고등학교 시절 수준에서 크게 나아지지 않았다. 영어 원서를 눈으로 읽고 해석하고 요약하고 발표한다고 해서 말하기 실력이 늘지는 않는다. 교실에서만 듣고 교실 밖으로 나가면 한마디도 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누구도 말을 잘할 수 없다. 어느 나라의 언어라도 그럴 것이다.
"어떻게 하면 영어를 잘할 수 있나요?"
많은 사람들이 질문한다. 실상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부럽다고 말한다.
"어떻게"를 찾기 전에 "왜"를 먼저 찾아야 한다. 그것이 "학습동기"이고 동기가 확실하다면 방법은 스스로 찾으면 된다. 사실 방법은 누구나 알고 있다. 꾸준히 하지 않아서 발전이 없을 뿐...
지금 나는 영어에 흥미를 잃은 것일까? 뭔가 강렬한 동기가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우선은 "치매예방 차원"이라고 해두자. 그런 이유라도 붙들고 있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나의 AI선생님은 나에게 동기부여를 안 해 주시니 참으로 아쉽다.
하지만 몇 번을 반복해도 싫은 내색 않고 같은 말에 친절한 목소리로 응대해 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