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엘 리브로 Sep 18. 2022

비교하기를 멈추자

내 안의 열등감을 인정하기

내가 잘난 줄 알았다. 똑똑해서 뭐든 빨리 배우고 남들보다 잘할 수 있다고 믿었다. 내가 아는 것을 남이 모르면 '그것도 몰라? 왜 모르지? 아유 답답해., 전에 설명해 줬는데 벌써 잊었어?' 하는 생각이 들었고 때론 서슴없이 그대로 입 밖으로 내어 말하기도 했었다.

나보다 잘난 동급생을 보면 생각했다, '난 아직 그걸 안 배워봤어, 내가 너랑 같이 시작했다면 실력이 너를 훨씬 앞질렀을 거야. 공부를 안 해서 그렇지 너만큼 했다면 너보다 훨씬 점수를 더 잘 받을 수 있어...'라고.

그런 자만심은 어디서 생겨난 것일까?

게다가 끝없이 남을 탓하고 환경을 탓하면서 스스로 노력하지 않았다. 열심히 노력하는 친구들을 폄하하고 인간미가 없다고 평가했다. 물론 평가는 마음속으로만 했지만 어쩌면 그런 태도를 읽어낸 친구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정신적으로 방황했으며 공부에 집중하지 못했다. 밖으로 나도는 대신에 팝송에 빠져들었고 책을 읽었다. 교과서는 아니었다. 혼자 집중해야 하는 시간엔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헤어나지 못했으나 수업시간만큼은 초집중했고  그 덕분에 성적은  상위권에 아슬아슬하게 걸쳐 있었다.

고3 수험생이  되어서야 그동안 머릿속을 가득 채웠던 온갖 잡념들과 증오심을 누를 만큼 공부에 집중력이 생겼으나 몇 년간의 공백을 메꾸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대학시절 내내 우울감을 달고 다녔다.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도 나는 마음속으로 다양한 학과의 많은 선후배들과 동급생들을 그 사람 자체가 아닌 학과의 우열로 평가하려고  했다.

어떤 이들에 대해서는 우월감을 느꼈으며 , 몇몇 학과(예를 들어 법대나  의ㆍ치대)의 학생들에 대해서는 시기심이 앞섰다. 나와 수준이 비슷하다고 느끼거나 내가 더 잘나 보이는 사람들과 어울렸으며 나보다 잘나 보이는 사람들과는 거리를 두었다. 연애를 할 때 조차도...

그것이 열등의식이라는 것을 인정하는데 수십 년이 걸렸다. 내가 정한 틀 안에 갇혀서 한 발짝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편협한 시각으로 살았다.


우월감은 결국 열등감의 다른 표현이다.

세월의 흐름에 따라 수많은 사람들과 만나 인연이 되기도 하고 그냥 스치고 지나기도 하면서 어느 순간 내가 한없이 초라하게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잘난 줄 알았던 내가 물질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재능적인 면에서도 남들보다 나은 것이 하나도 없음을 인정하게 된 것이다.

문제는 그런 초라한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나보다 나은 이들을 따라잡아야 한다는 조급증에 일상의 평화가 깨져버리고 이리 뛰고 저리 뛰며 허둥대고 있는 스스로를 또 질책하고 있었다.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기 위해 노력해 온 자신을 칭찬해야 마땅한데 잘못된 선택이었다며 자책하던 시기도 있었다. 겉은 평온을 가장하고 있었으나 마음은 질풍노도를 겪고 있었다.

내 안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허우적대다가 깊은 마음의 병을 얻어 고생을 했다.  모든 것을 놓아버리고 싶었으나 아이들이 눈에 밟혀 있는 힘을 다해 도움을 요청했었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서 방황한 끝에 도달한 마음의 평화는 다시 살아갈 희망이 내 안에서 솟아나게 했다.

더 이상 타인이 부럽지 않았다. 그저 내 앞의  미래가 기대될 뿐이었다.


그러나 몇 년의 세월이 흐르는 동안 다시 열등감이 서서히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흔히 사람들은 재벌이나 천재 또는 스타들과 자신을 비교하지 않는다. 애초에 그들은 비교 대상으로 놓지 않는다. 다른 세상 사람들이니까...

가까운 친인척들이나 친한 친구들과 특정 모임의 회원들이 흔히 비교의 대상이 된다. 그들이 가진 것이라면 물질적인 것과 비물질적인 것들 모두 나의 것과 비교하게 된다.

타인의 행복을 시기하고 타인의 불행을 통해 그나마 내 처지가 더 나은 것에 위로받는다.


행복감을 느끼는 것도 불행감을 느끼는 것도 모두 타인과 나를 비교하면서 생기는 감정일 때가 많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상대적인 행복이 아니라 절대적인 행복을 누리고 싶다.

코로나19의 시기를 지나면서 깨달은 것이다.

그 어느 누구와도 비교할 필요가 없고 나만의 기준으로 느끼는 진정한 행복감을 요즈음 자주 내 안에서 발견하고 있다. 나는 그저 나로 존재하면 되는 것이다.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힘들게 일하며 불행해할 필요가 없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도에서 조금씩 일하고 적게 버는 대신에 늘어난 여유 시간만큼 내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며 살 수 있으면 다.  물론 남들보다 몇 배의 노력으로 부를 쌓아가면서 보람을 느끼고 행복하다면 그 또한 성공적인 삶일 것이다.


우리는 아무도 미래를 알 수가 없다. 자신의 건강이 언제까지 유지될지, 언제 갑자기 사고를 당하거나 중병에 걸릴지 알 수 없다. 당장 내일 아침에는 오늘과 같은 상태로 눈을 뜰 수 없을 수도 있다.  갑자기 몸의 어느 부분이 마비가 되거나 정상적으로 의사소통을 할 수가 없게 될 수도 있다.

그러니 오늘 지금 여기에서 삶을 마음껏 누려야 한다. 마지못해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감사하는 마음으로 해야 하고 욕심부리지 말고 나의 심신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 일해야 한다. 그렇다고 편한 길만 가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나의 발전을 위한 도전도 필요하고 자신의 한계를 넘어서 이루어야 할 과업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생의 마지막을 눈앞에 두었을 때 후회하지 않을 만큼만 "열심히"이어야 하고,  소중한 것들을 희생해 가며 오직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 앞만 보고 달리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자꾸 남의 인생을 엿보며 현재의 나와 비교하지 말고 현재 내가 가진 것감사해야 한다. 내 바로 옆을 둘러보며 가족에게 이웃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라도 더 건네고 작으나마 도움의 손길을 내밀어야 한다.


내가 못하거나 못났다는 열등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각자 자신이 선택한 것들에 대한 책임을 다하며 살고 있을 뿐이다.

그러니 나도 이미 내가 선택한 것들에 대해 후회하지 말고 지금 할 수 있는 새로운 도전을 통해 발전하고 성장하는 기쁨을 누리면 되는 것이다.



밤하늘의 무수히 빛나는 별들처럼 우리들 각자는 자신만의 독특한 빛을 발하며 살고 있으리라...




매거진의 이전글 "동기부여"라고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