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창 시절, 학교에 지각을 해 본 일이 한 번도 없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약속 시간이나 중요한 일정에 임박해서야 집을 나서는 것이 나의 고질병이 되어버렸다.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시간이 있다. 자가용 혹은 대중교통을 이용했을 때 걸리는 시간을 휴대폰에서 길 찾기를 통해 먼저 가늠해 본다. 도로 상황에 변수가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에 예상 이동시간 보다 10~20분쯤 더해서 미리 외출준비를 하려고 마음먹는다.
그러나 수시로 울리는 휴대폰의 알림음에 반응하다 보면 시간의 흐름을 잊고 만다. 문자나 카톡을 주고받다가 브런치의 새로 발행된 글을 읽기도 한다. 세탁이 다 된 빨래의 존재를 뒤늦게 기억해 내고는 세탁기에서 꺼내어 건조대에 후다닥 넌다. 또는 걸려온 전화로 누군가와 통화를 해야 할 때도 있다. 반려견들의 배변을 위해 딱 10분만 나갔다 오겠다며 호기롭게 집 밖으로 나갔다가 시간은 나의 계산과 다르게 가속도가 붙은 것 마냥 빠르게 지나가버렸다는 것을 깨닫고는 정신없이 집으로 뛰어들어온다.
적당한 선에서 문자나 통화를 멈추고 나중으로 미루지 못하는 것, 좀 더 일찍 세탁기를 작동시키거나 일정이 끝난 후에 작동시키려고 하지 않는 것, 강아지들의 산책을 가장 먼저 하지 않고 휴대폰을 들여다보면서 아침 시간을 허비하는 것이 나의 문제이다.
결국 그 모든 원인은 잠에서 깨어난 직후부터 다시 잠자리에 들 때까지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하는 스마트폰 중독에 있다. 매일 내가 계획했던 일상이 흔들리고 아무것도 제대로 한 것이 없다는 자괴감이 들게 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 어떤 일 보다도 내가 가장 많이 하고 가장 손쉽게 하는 일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는 일이다. 잠자리에서 눈을 뜨자마자 하는 행위가 휴대폰을 켜서 시간 확인을 하는 것인데, 알람소리에 잠이 깼더라도 바로 몇 초 뒤에 다시 화면을 켜서 재차 시간을 확인한다. 무의식 중에 하루에도 셀 수 없을 만큼 자주 휴대폰을 들었다 놨다 한다. 알림음이 문제라며 알림 기능을 꺼두고도 혹시 뭐가 왔나? 하며 수시로 화면을 켜고 확인을 한다.
가족 중 누구도 다르지 않다.
딸들은 아침에 눈을 떠서 밤에 (거의 그다음 날 새벽에...) 잠자리에 드는 순간까지 손에서 떨어지지 않는 스마트한 폰과 패드를 늘 한 몸처럼 곁에 두고 산다.
남편과의 대화가 사라진 지는 몇 년째다. 멀리 사는 딸들이 가족톡방에 올리는 글에도 남편은 "ㅎㅎ", "ㅋㅋ" 정도가 댓글의 90프로 이상을 차지한다. 퇴근 후나 쉬는 날이면 자기 방에 틀어박혀 이어폰이나 해드폰을 쓰고 누워서 유투브 영상에만 몰입하고 있다가 밥 먹을 때만 어기적거리며 나온다.
딸들과는 많은 수다를 떨긴 하지만 주로 카톡 대화방과 페이스톡을 이용한다.
모처럼 딸들이 집에 와서 네 식구가 한 자리에 앉은 식탁에서도 나를 제외한 그들은 각자의 휴대폰이나 아이패드를 들여다보며 밥을 먹는다. 급기야 내가 소리를 지르고야 만다.
"이놈의 김 씨들, 정말!!! 밥 먹을 때라도 서로 얼굴 보고 대화 좀 하면 안 되냐고? 응?"
남편의 궁색한 변명이 뒤따른다, "아니, 저기... 세상 돌아가는 것 좀 보느라고..."
"당신이 지금 신경 안 써도 세상 잘만 돌아간다고!"
억지춘향 격으로 휴대폰을 한쪽에 내려둔 남편은 식사를 먼저 끝낸 후 바로 다시 집어 들고 화면을 켜기 바쁘다.
"대화가 필요해~~"라고 딸이 멜로디까지 넣어 너스레를 떤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 매주 빠뜨리지 않고 봤던(내가 유일하게 고정적으로 봤던) 코미디 프로그램의 한 코너였다. 많은 웃음을 안겨 준 그 코너의 밥상머리 대화의 장면들이 떠오르며 피식 웃음이 나온다. 상황은 다르지만 대화의 부재, 소통불능은 그 장면 속 가족이나 우리 가족이나 차이가 없어 보인다.
사실 남편이 함께 자리하지 않을 때는 식탁에 아이패드를 올려두고 딸들과 미드나 유투브를 함께 보며 낄낄대면서 밥을 먹기도 한다. 좋아하는 장르가 같다 보니 자연스럽게 함께 보고 그것을 소재로 대화가 오가며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되는 것이다.
우선순위를 생각하다가 삼천포로 빠졌다.
새해가 된 지 3일째다. 나의 일상이 크게 달라질 거라 기대했지만 현실은... 아니다.
오전에 근무했던 일을 그만두고 나니 아침 시간이 여유로워 '매일 글쓰기 프로젝트'(라고 쓰고 '글루틴'이라고 읽는)에 도전했다.
아니다, 사실은 도전을 위해 일을 그만두었다. 이것저것 맡은 일을 처리해 내면서도 정말로 내가 하고 싶은 일, 좋아하는 일까지 할 수 있는 능력이 나에게는 없다. 그것을 인정하기가 쉽지는 않았지만 현실이 그런 것을 어쩌겠는가! 나는 역량은 안되면서 남들 하는 것은 다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도 되고 싶은 것도 많아서, 나이 타령으로 현실에 안주하려는 친구들을 보면 답답해서 죽을 지경이다.
지금도 몇 문장 쓰면서 두 시간째 노트북을 앞에 두고 고심하고 있는 나. 타자 속도는 느리고 생각은 제 멋대로고... 글이 산으로 가고 있는지 바다로 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지만 어쨌든 써내려 가고 있다.
휴대폰의 알림음이 간간이 울리고 있지만 쳐다보지 않는다. 멀리 떨어뜨려 놓길 잘했다(이건 칭찬).
1월 계획을 널리 알려야겠다(나중에 혼자서 딴소리 못하게).
오전에 가장 먼저 임무완수할 일은 브런치 글 발행이다.
오후에 출근하지 않는 날은 근무 시간과 똑같이 시간을 지켜서 독서와 독서평을 써야겠다.
병원에 가거나 모임을 갖는 것도 이 시간에 (그럼 그날은 독서는 건너뛰고...?!).
퇴근 후(또는 독서 후) 반려견들과 산책을 하고 나면 저녁준비와 저녁식사.
저녁 8시에는 운동과 요가를 하루씩 번갈아가며 거르지 않고 하기.
10시부터 영어와 스페인어 공부 30분 이상 꼭 하기.
12시 전에 잠자리에 들기(나의 건강을 위해 필수!).
주중에 못 한 일은 주말에 하기로.
적고 보니 휴대폰을 들여다볼 시간은? 언제든지 그 녀석이 파고들면 일과는 계획대로 지켜질 수가 없다.
이러니 밥 먹으면서 스마트한 녀석을 곁에 둘 수밖에... ㅠㅠ
그래서 살짝 끼워 넣어 본다, 영어와 스페인어 시간을 줄이고 브런치 톡방과 발행된 글 읽기.
아니지, 그럼 12시 안에 자는 건 물 건너간다. 낮 시간 동안 브런치 글들은 궁금해서 또 어쩌라고?
다시, 오전 중에 최대한 빨리 글 발행을 하고 브런치를 폭풍 스캔한다. 밥 먹으면서 보고 틈틈이 확인한다, 밤에 남는 시간 동안 들여다보되 정해둔 시간에 알람을 설정하고 무조건 11시 30분엔 자리에 눕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