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글을 쓰는 이유

나를 알아가고 나를 위한 삶

by 엘 리브로

학창 시절, 힘들 때는 늘 일기장을 펼쳤다. 기쁜 일이나 행복한 일상을 적어 본 것은 국민학교 때 매일 숙제로 써야 했던 일기 이후에는 거의 없었다.

사람들 때문에 삶이 너무나 힘들다고 느꼈을 때, 누군가를 향한 증오심이 활활 불타오를 때, 끝이 보이지 않는 긴 터널을 지나고 있는 듯 고통스러운 시절에도 노트를 펴고 몇 시간이고 앉아 내 마음을 적어 내려 갔었다.

차마 얼굴을 보고 하지 못하는 말들을 밤을 새워가며 편지지에 쓰고 지우고, 쓰고 버리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다가 결국엔 책상 서랍 속 깊숙이 숨겨버리게 되는 일도 많았다. 그래놓고도 시간이 지나면 또 쓰고 버리고를 반복하고 나서 그 시간이 아깝다며 후회하기도 했었다.


나에게 글쓰기는 창작의 과정이 아니라 소심한 내가 맘껏 혼자서 울분을 터뜨리고 듣지 못하는 상대에게 욕하고 비난하고 호소하는 원맨쇼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제풀에 지치고 더 이상 쏟아낼 화나 슬픔이 남아있지 않게 되고 나면 그러한 감정소모가 스스로에게 부끄러워졌다.

그러다 언제부터인가 나는 쓰는 것을 멈추었고 내면의 소리를 억누르기만 해오면서도 그러한 사실을 자각조차 못 하고 살고 있었다. 지금에 와서야 과거의 글쓰기가 나에게는 얼마나 고마운 치유의 행위였었는가 싶지만 좀 더 일찍 깨달았다면 쓰는 것을 멈추지 않았을 것이라는 아쉬움도 있다.


"브런치"라는 글쓰기 공간이 있다는 것을 안 지가 1년도 되지 않는다.

최근 몇 년 동안 내 삶에 유난히 어려운 고비들이 있었고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극도의 피로감에 쓰러질 것만 같았을 때 나는 본능적으로 글을 쓰고 싶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오래전에 했듯이 밤새워 쓰고 혼자서 읽다가 찢어버리거나 책장 속 어느 모퉁이로 들어가 버리는 나만의 일기를 쓰고 싶지는 않았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다. 지금의 삶이 너무 힘들다고 하소연하고 싶은 순간들이 많아졌고 내가 힘들 때 글을 읽고 위로받았듯이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는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삶이 유한하다는 것을 더 이상은 관념적으로 알던 내가 아니다. 나의 딸들에게, 남편에게 늦기 전에 하고 싶은 말들이 생겨났다. 때마침 브런치를 알게 되었고 작가 신청을 했지만 어떤 글을 어떻게 써야 통과하게 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무작정 한 편의 글을 써서 작가 신청을 하고 떨어지자 같은 글을 다시 다듬어서 다시 도전했다. 결과는 역시나 낙방이었다.


그러는 사이 요양병원에서 생활 중이시던 아버지의 코로나19 확진 소식을 듣게 되었고 그때까지 온통 내 안을 꽉 채우고 있었던 폭발할 것 같던 음울한 기운은 아버지를 향한 그리움과 슬픔과 회한 같은 것들로 바뀌고 말았다. 하루하루 매 순간을 버텨내기 힘들 것 같은 나를 붙잡기 위해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쓰기로 했다. "브런치에 쓰지 못하면 블로그에 쓰자!"라며 난생처음 블로그에 글을 올렸다.

아버지를 생각하며 블로그에 글을 올리는 동안 아버지는 갑자기 영영 볼 수 없는 곳으로 떠나셨다.

그리고 아버지의 이야기를 써서 작가 신청을 한 나는 브런치 작가가 되었다.


나는 왜 쓰려고 하는가?

밑도 끝도 없는 감정의 소용돌이에서 허우적거리지 않고 한 발 떨어져서 내 마음을 들여다보기 위해.

앞으로 얼마나 남았는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주어진 삶 동안 다른 누군가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서.

또한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글을 쓸 수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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