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나는 아버지의 차를 폐차했다는 것을 기억했고 지난여름에 이사 온 나의 집까지 버스 노선이 복잡하고 오래 걸린다는 생각을 했다.
"택시 타시려구요?"
아버지는 경쾌한 목소리로 대답하셨다.
"어떻게든 가면 되지~"
'맞아, 아빠가 어린애도 아니고. 잘 찾아오실 거야...'라고 생각하는 순간 휴대폰의 알람 소리에 잠이 깨고 말았다. 아버지를 볼 수도 있었는데... 너무나도 아쉬웠지만 변함없이 밝은 아버지의 목소리를 들으니 안심이 되었다.
'그래, 어디서든 잘 지내고 계실 거야.'
아버지가 떠나신 후 아버지의 모습은 꿈에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다. 아버지를 찾아 헤매며 서럽게 울던 꿈은 두어 번 꾸었지만 얼굴을 보거나 목소리를 들을 수는 없었다. 목소리나마 들을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가 하면서도 이번에도 얼굴을 못 본 것이 너무나 안타까워 울고 싶은 아침. 거실 창문의 커튼을 열었더니 붉은 해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그래, 오늘도 오늘의 태양이 뜨는구나!
아버지는 평생 힘들다는 표현을 하지 않으셨다. 누구를 원망하는 얘기도 하신 적이 없다. 자신을 "여자 복이 없는 사람"이라고 언젠가 내게 말하셨지만 돌아가신 엄마에 대해서는 "힘든 시절부터 나 하나 믿고 따라와서 끝까지 같이 있어 준 고마운 사람"이라고 하셨다. 그러나 엄마에게 다정한 남편은 아니었고 뭐든 엄마의 의견을 묻지 않고 독단적으로 결정했다.
아버지가 엄마에게 조금만 더 살갑게 대했더라면 엄마의 행복과 더불어 나의 유년기와 사춘기도 조금은 더 따뜻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엄마와 나에게 시간이 더 있었더라면 그런 이야기도 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아니, 어쩌면... 평생 그러했듯이, 가슴속에만 묻어두고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이야기가 되었을 가능성이 더 크다. 시간을 되돌리더라도 우린 그렇게 마음을 열지 못하고 말았을 것 같다.
누구나 그러하듯 나도 못 한 것이 자꾸만 생각나 가슴이 먹먹해질 때가 있다. 다시 아버지가 살아오셔서 똑같은 상황이 된다면 그때와 다르게 살 수 있을까? 엄마는? 엄마가 지금 살아계신다면 과연 나는 이전과 다른 노력을 하고 있을까? 더 자주 찾아뵙고 더 많은 얘기를 나누고 더 많은 곳을 함께 구경 다니고...?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자신할 수 없다.
아버지의 치매가 아니었다면, 엄마가 심한 골다공증으로 누워서 지내야 하는 상황이 아니었다면... 가능했을 모든 것들을 정말 내가 제대로 해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없다. 부모님을 향한 자식의 사랑이라는 게 그렇게 보잘것없는 것이다. 모든 것을 다 제쳐두고 아픈 아이를 돌보는 엄마의 마음(나는 경험해 보지 못했으나 나의 아이들을 향해 쏟아부었던)과는 다른 사랑이다.
과거로 되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어느 시절로 되돌아가고 싶은가, 과연 되돌아가고 싶은 시절이 있기는 한 것인가?
아버지가 요양병원에 입원하기 1년 전부터 일상의 모든 것들이 많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산책길에서, 레스토랑에서, 카페에서, 자동차의 조수석에서 아버지는 수시로 소변 실수를 하셨으나 그것을 인지하지 못했다. 나는 그것을 전립선의 문제로만 생각했고 아버지가 수치심 때문에 모르는 척하시는 거라고 믿고 있었다. 요양병원에 근무하면서 수많은 치매 환자들을 직접 보기 전까지는...
게다가 입원하시기 몇 달 전부터는 실변 증상까지 보였지만 그것도 기력이 없으셔서 화장실까지 빨리 이동하지 못해서 도중에 실수하시는 것이라 생각했다. 아버지가 최근의 기억부터 급속도로 잊어가고 있었으나 설마 대소변을 못 가릴 정도가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믿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아니 믿고 싶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다.
다시 되돌아가더라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고 내가 아버지를 사랑하지 않는 것은 아니며 상실의 슬픔을 빨리 잊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지금도 나는 아버지를 볼 수 없었던 몇 개월의 시간을 생각하는 것이 힘들다. 어서 아버지에게로 달려가고 싶었으나 다른 환자들을 내버려 두고, 간호사가 부족해서 병동의 업무가 마비될 상황을 두고 떠날 수는 없었다. 지나 놓고 보면 내가 없어도 어떻게든 병원은 잘 돌아갈 것이었을 텐데도 책임감의 무게를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그것 또한 다시 같은 상황에 놓이더라도 같은 선택을 할 것을 안다. 그것이 바로 나이기 때문이다.
감염예방을 위해 보다 철저한 관리가 이루어지는 병원으로 아버지의 거처를 옮겼더라면 상황이 달랐을 거라는 자책도 가끔(지금 이 순간에도) 내 안에서 고개를 내밀곤 한다. 아버지의 마지막 숨이 멎기 직전에 병원에 한 번 더 갔었더라면 아버지의 손을 잡아드리고 편히 가시라고 귀에 대고 속삭일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중환자실로 내려가셨다는 말을 듣고도 설마 그날 돌아가실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는 것, 좀 더 집중적으로 보기 위해 내렸다는 수간호사의 말을 듣고 좋아지실 거라고 기대했다는 것이 나의 잘못이었다. 전날 나에게 물을 달라는 말도 했고 또 오겠다는 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셨던 아버지. 어디가 아프냐는 나의 물음에 숨이 차다고만 했던 아버지였는데 하루 만에 돌아가셨다. 그러나 그것도 내가 어쩔 수 없는 일이었음이 분명하다. 지금 해보는 모든 가정들은 가지 않은 길이므로 그 끝을 알 수가 없다.
알 수 없는 것으로 나를 책망하고 괴로워하는 것을 아버지가 원하시지는 않을 것이라고 애써 스스로를 달래며 부질없는 생각들을 밀어낸다.
미루다가 못 하고 만 모든 행위와 말들은 가슴을 짓눌렀고 때로는 찢어질 듯 아프기도 했다.
나는 그 소용돌이 속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글을 쓰기로 했고, 글을 통해 아버지를 떠올릴 때면 내가 못 한 것이 아닌 내가 아버지를 위해서 했던 일들에 집중할 수가 있었다. 아버지와 함께 한 시간들을 떠올리는 것이 아버지에게 닿을 수 없었던 시간들을 애통해하는 것보다 나았다. 후회와 자책의 늪에 빠져 허우적거리지 않고 온전히 숨 쉬고 살기 위해서 택한 길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나의 슬픔은 어느새 잔잔한 호수처럼 자리하고 있다.
호수에 바람이 불면 얕은 수면 위로 파동이 번져가지만 파도처럼 출렁이지는 않는다. 돌멩이 하나를 던져도 곧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파동이 멈추고 수면은 거울처럼 파란 하늘을 비춘다.
그러나 태풍이 불던 날은 호수의 물도 바닷물처럼 넘실거리며 거센 물결이 일었다. 나의 마음도 때로는 강풍에 출렁이는 물 같아서 심하게 요동칠 때가 있다. 그때는 호수의 깊숙한 바닥에 가라앉아 있던 흙과 더러운 이물질들이 뒤섞여 어둡고 탁한 빛깔의 물이 된다. 나의 마음에 온통 부정적이고 슬픈 생각들이 뒤엉키듯이...
다행히도 오늘은 오늘의 태양이 뜬다. 어제의 어두운 하늘과 요란한 바람과 흙탕물이 출렁이던 호수의 풍경은 오늘의 것이 아니다. 아마도 아버지가 그 태양 뒤에서 빙긋이 웃고 계실지도 모른다. 아버지 특유의 심각하지 않은 가벼운 말투로 "후회해 봐야 뭐가 달라지겠냐? 인생 별 것 없다." 하시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