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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엘 리브로 Nov 26. 2022

검둥이가 학교에 따라왔다.

제발 아는 척하지 말아 줘

검둥이는 천방지축이다. 아직 한 살도 안된 녀석이 덩치는 희진만큼이나 컸다. 앞발을 들고 일어서서 희진의 가슴에 발도장을 꽝 박아버리고는 후다닥 도망가버리곤  했다.

"야아, 거기 안 서? 너 잡히면 가만 안 둘 거야!"

학교에서 돌아온 희진은 검둥이를 잡겠다고  뛰어다니다가  마당에서 요리조리 피하며 약을 바짝 올리는 검둥이 때문에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 친구들과 밖에서 고무줄놀이를 하려고 나가는 희진이 대문을 열자마자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검둥이가 쏜살같이 밖으로 나가버렸다.

"아이 참! 저놈을 목줄 채워놓고 문 여는 건데... 야! 검둥아!"

불러도 들은 척도 않고 신나서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검둥이는 진돗개 흑구다. 골목길 구석구석 코를 킁킁대며 냄새를 맡다가 뭔가를 집어 먹다가 힐끗거리며 희진을  쳐다보기도 했다.

희진이 친구들과 노래를 부르며 고무줄 위에서 한참 뛰고 있을 때 검둥이가 쌩하니 달려와서는 발에 차여 "깨갱~~"하고는 멀찍이 달아났다. 그러다가 다시 근처로 슬금슬금 다가오더니 희진에게 갈까 말까 망설이는 듯 네 발을 동동거리며 꼬리를 흔들었다.

희진은  검둥이가 다시 발에 차일까 봐 조심하느라 박자가 꼬여 고무줄이 엉키고 말았다.

"야, 너 땜에 죽었잖아!"


목줄을 채워놓아도 검둥이는 어떻게 풀어버리는지 희진이  아침에 방문을 열고 마루로 나가면 그 육중한 몸을 날려 한달음에 마루로 뛰어오른다. 껑충거리며 깨방정을 떨면서 긴 혀로 희진의 얼굴을 핥는다. 검둥이가 이제는 너무 커버리고 제멋대로라서  힘들기는 했지만 그래도 희진은 자기를 가장 좋아하고 따르는 검둥이가 너무 좋다.

"밥 주니까 널 좋아하는 거야!"라는 아빠의 말에 희진은 뾰로통하니 입술을 내밀곤 했다.

"아냐! 밥은 할머니도 주는데? 검둥이는 그냥 내가 좋아서  제일 좋아하는 거라고!"




검둥이가 화단에  올라가 흙을 파헤쳐 놓거나 마루 위에 발자국을 여기저기 찍어놓고 다닐 때마다 엄마는 빗자루를 들고 소리를 질렀다.

"아이고, 저놈의 새끼를 그냥! 이놈 이리 안 와? 너, 좀 두들겨 맞아야 겄어!"

오늘도 아침부터 마당을 쓰는 기다란 빗자루에 엉덩이를  한 대 맞고서  "캥~"소리 지르는 검둥이가 불쌍해서 희진은 평소보다 더 오래 쓰다듬어주었다. 말썽부리다가 엄마한테 더 혼나기 전에 목줄을 채우려고 했지만 

오늘따라 유난히 더 기운 넘치게 도망 다니는 검둥이를 잡는 걸 포기하고 학교 갈 준비를 했다. 식구들 모두 아침에는 바빠서 검둥이랑 씨름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책가방을 멘 희진이 마루 끝에 걸터앉아 신발을 신고 있는데 커다란 양철 밥그릇을 핥아가며 열심히 밥을 먹고 있던 검둥이가 곁눈질로 힐끔거리며 희진을 봤다.

희진은 검둥이 몰래 나가려고 살금살금 대문 쪽으로 걸어가면서도 검둥이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

다행히 밥그릇에 얼굴을 파묻고 김치찌개에 비벼준 밥을 허겁지겁 먹고 있는 검둥이.

'이때다!' 희진이 잽싸게 대문의 손잡이를 잡고 동시에 문을 열며 문밖으로 몸을 빼려는 순간, 책가방이 문과 틀 사이에 끼고 말았다. 우당탕 대문이 흔들리는 소리에 후다닥 뛰어온 검둥이가 희진이 문밖으로 빠져나가기도 전에 먼저 튀어 나가 버렸다.

울상이 된 희진이 아무리 소리쳐 불러도 검둥이는 신나게 뛰어다니기만 할 뿐 집 쪽으로 오지 않았다.

희진은 대문 안쪽으로 고개를 들이밀고 크게 소리를 질렀다.

"할머니~~ 검둥이가 밖으로 나가버렸어!!"

"뭐라고?" 

"검둥이가 나갔다고! 나 학교 늦어, 그냥 간다고!" 뭐라고 대꾸하는 할머니의 목소리와 동시에 방문이 열리는 소리를 뒤로한 채 희진은 몸을 돌려 뛰기 시작했다.


검둥이는 신이 난 듯 사뿐사뿐 뛰며 희진을 쫓아왔다.  

"가! 집에 가라고!" 희진이 검둥이를 향해 발을 구르며 주먹 쥔 손을 흔들어 대자 검둥이는 주춤 멈춰 서더니 눈치를 슬슬 보며 주변을 킁킁거렸다. 학교에  늦을까 봐 서둘러 걷던 희진이 다시 뒤돌아보니 저만치 떨어져서 검둥이가 졸졸 따라오고 있었다. 희진이 돌아보면 휙 몸을 돌려 달아났다가 희진이 다시 걷기 시작하면 검둥이도 어슬렁거리며 거리를 두고 따라오면서 땅바닥에 코를 대고 냄새를 맡는다. 그러다 한 번씩 다리를 들고 벽이나 전봇대에 오줌을 눴다.

학교까지 거의 절반의 거리를 왔을 때부터 검둥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휴우, 이제 집으로 돌아갔나 보다...'

교문 앞에서 친구를 만난 희진은 재잘거리며 교실로 들어갔다.




아직 담임 선생님은 오시지 않았고 아이들은 왁자지껄 떠들고 있었다. 책과 필기도구를 꺼내기도 하고 이리저리 교실을 왔다 갔다 하는 아이들, 숙제를 그제야 펴놓고 하는 아이들. 희진은 어제 한 숙제를 챙겨 왔는지 확인하면서 책들을 꺼내 책상 서랍에 넣고 있었다. 

그때 복도에서부터 술렁거리는 아이들의 소리가 들리더니 희진의 반 아이가 교실로 들어서며 흥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얘들아, 커다란 개가 복도에 들어왔어!" "어디? 어딘데?" 몇몇 아이들은 우당탕 복도로 뛰어나갔고 어떤 아이들은 울상을 지었다. "난 개가 싫은데!" "난 무서워, 우리 교실에 들어오면 어떡해?"

희진의 가슴이 방망이질하기 시작했다. 벌떡 일어나 뒷문으로 고개를 내밀고 복도를 내다봤다. 검둥이다!


검둥이가 복도 바닥을 킁킁거리며 걷더니 옆반 교실의 앞문으로 들어갔다. 아이들이 깔깔거리며 앞뒷문으로 들락거렸고 희진의 반 아이들 몇 명도 옆반을 기웃거렸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새까만 큰 개가 무서운 듯 웅성거리면서도 자리에 앉아 있었다. 희진은 얼굴이 새빨갛게 달아올랐다. '검둥이가 교실에 들어와 아는 체하면 어쩌지? 선생님이 오시면 혼날 텐데...' 희진은 이 상황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난감했다. 선생님 앞에서는 얼어붙어 말도 잘 못하는 희진에게 모두의 시선이 꽂히는 일이 벌어질 것이라는 상상에 머리가 어지러울 지경이었다.

검둥이가 교실의 앞 문으로 들어서자 아이들이 술렁거렸고 희진의 짝꿍은 훌쩍거리기 시작했다. 아이들이 의자와 책상 위로 올라갔고 "검둥아~~"부르며(어느 집에서나 검은색 개는 거의 검둥이라고 불렀다) 다가가는 겁 없는 친구들도 있었다. 희진은 재빨리 뒷문으로 빠져나가 복도 끝 출입구 쪽에 있는 화장실로 뛰어들어갔다.


화장실 문을 꼭 닫고 문에 귀를 바짝 대고 서서 바깥의 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4학년 교실  여기저기에서 술렁거리는 소리와 아이들이 소리 지르며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검둥이한테 숨은 곳을 들킬까 봐 희진의 심장은 계속 쿵쾅거렸다. 화장실 냄새에 두 손으로 코를 감쌌다.

'제발, 여기까지 들어오지는 말아라...'그러다  어느 순간 주변이 조용해졌고 1교시 시작종이 울렸다. 심호흡을 한 번 크게 하고는 조용히 화장실 문을 열고 나온 희진이 살금살금 복도를 걸으며 두리번거렸다. 검둥이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담임 선생님의 시선을 피해 잽싸게 자리에 앉은 희진에게 짝꿍이 속삭이며 물었다.

"야, 어디 갔다 오는 거야?" "화장실. 배 아팠어."

아이들은 담임 선생님에게 커다랗고 새까만 개가 교실까지 들어왔었다고 얘기했고 희진은 아무도 그 개가 자기 집의 개라는 걸 모른다는 것이 다행스러웠다.

희진은 수업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은 온통 검둥이에 대한 걱정뿐이었다.

'집을 잘 찾아갔을까? 차 사고 난 것은 아니겠지? 개장수가 끌고 갔으면 어쩌지?..."

수업 중에 골똘히 생각에 잠겨있다가 대머리 선생님으로부터 몇 번 주의를 받기도 했다.




학교가 끝나자마자 희진은 뒤도 안 돌아보고 집으로 뛰어갔다. 문구점에 가서 뽑기를 하자는 친구들의 말에 "오늘은 안돼, 내일~"이라고 건성으로 대답하며 허둥댔다.


대문을 확 밀치며 "검둥아~~~"하고 소리쳐 부르니 검둥이가 제 집에서 튀어나와 컹컹 짖으며 폴짝폴짝 뛰었다. 목줄이 채워져 무거운 쇠사슬에 묶인 채로 촐싹거리며 엉덩이와 꼬리를 흔드는 검둥이를 보자 달려들어

껴안았다. 눈물이 나려는 걸 꾹 참고 있는 희진에게 엄마가 소리를 질렀다.

"집에 오자마자 개부터 부둥켜안고 있냐? 다녀왔다는 인사도 안 하고? 하여간 계집애가... 얼른 손이나 씻어!"

엄마가 뭐라고 하든 말든 희진은 검둥이를 껴안고 쓰다듬으며 한참 동안 놓을 줄 몰랐다.

"너 내가 얼마나 걱정했는 줄 알아? 다음부턴 학교에 따라오지 말라고!"


검둥이가 얼굴을 핥으며 침을 잔뜩 발라 놓아도 싫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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