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총성

1980년 5월

by 엘 리브로

소문이 흉흉해졌다. 대학생들이 데모를 한다고, 북한에서 간첩들이 내려와 학생들을 선동하고 있다고 했다. 밥상머리에 앉아 뉴스를 보면서 어른들은 걱정스러운 대화를 이어갔다. 어른들의 대화를 들으면서 희진의 머릿속에선 도덕 교과서에서 나온 이승복 이야기가 떠올랐다. 무장공비에게 붙잡혀 "나는 공산당이 싫어요!"라고 외치다 살해당했다는 남자아이, 입이 찢겼다는 끔찍한 이야기가 생생한 장면이 되어 눈앞에 그려지고 쉽게 떨쳐버릴 수 없었다. 뉴스에서 나오는 함성과 군인들의 모습, 절규하듯 외치는 사람들의 무리와 대치하고 있는 경찰들. 할머니는 전쟁이 날 수도 있다며 걱정했고 북한에서 남파한 간첩단들이 저질렀다는 만행과 한국전쟁 때의 고생 담을 얘기했다.


생일파티 이후 5월은 하루하루 다르게 푸르름을 더해갔다. 하늘은 더욱 파래지고 등굣길 아이들의 재잘거림과 참새들의 짹짹거리는 소리가 힘 찬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아침들이 이어졌다. 하지만 언제부터인지 아이들의 대화 주제는 시위대와 그들을 진압하는 경찰들의 대치상황에 대한 이야기가 대부분이었고 뉴스에서 봤다거나 누구누구의 아는 사람이 직접 봤다는 끔찍한 이야기들이었다. 전쟁이 나면 우린 어디로 피난 가야 하지? 가족들을 잃어버리면 어떡하지? 북한 공산군은 정말 잔인하게 우릴 죽일까? 이승복을 죽인 무장공비들처럼? 등굣길에 친구들과 나눈 이야기 뒤에 따라오는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들과 두려움이 희진의 마음을 온통 점령하고 있어서 수업 시간에 집중할 수가 없었고 수업이 끝나도 예전처럼 즐겁지가 않았다. 아이들이 작은 돌멩이를 모아 공깃돌 놀이를 하거나 고무줄놀이를 하고 온 동네의 골목을 뛰어다니며 숨바꼭질하던 활기찬 풍경도 점차 볼 수가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휴교령이 내려졌다. 학교에 가지 말라는 말을 들었을 때 희진은 '정말 전쟁이 터진 건가?'하고 깜짝 놀랐다. 이제 텔레비전에서는 만화영화도 드라마도 볼 수가 없었다. 하루 종일 뉴스만 나왔다. 이마에 띠를 두르고 주먹을 불끈 쥔 젊은 여자들과 남자들이 목이 터질 듯 구호를 외치고 전투경찰들이 최루탄을 쏘며 앞으로 나아가면 그들은 혼비백산하여 이리저리 흩어졌고 여기저기서 무장한 두 세명의 경찰들에게 붙잡혀 질질 끌려가는 사람들이 보였다. 그야말로 아비규환 같은 광경이었다. 저 사람들이 대학생인지 간첩인지 둘 다인지 희진은 알 수 없었지만 뭔가 상황이 안 좋아지고 있는 것은 분명했다.

공수부대가 시위 진압을 위해 광주에 들어왔다. 계엄령이 선포됐다며 뉴스속보가 나왔고 탱크와 무장한 군인들의 모습이 화면에 크게 클로즈업되었다. 무서웠다. 아버지는 한밤중에 집에 들어왔는데 도청 근처에 있는 회사에 다니는 아버지가 군인들에게 잡혀 끌려갔을까 봐 식구들은 노심초사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군인들을 피해 광주천을 따라 먼길을 돌아서 왔다는 아버지는 핏기 없는 얼굴에 기진맥진해 있었다. 이젠 시위에 참가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길에서 눈에 띄는 젊은 사람들은 무조건 잡아들인다고 했다.

집 근처의 무기고가 털렸다고 한다. "무기고가 뭐야?" 희진의 물음에 예비군이나 민방위 훈련 때 쓰이는 총들이 쌓여있는 곳이라고 할머니가 대답하면서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전쟁인 갑다..."


전운이 감도는 무거운 시절에도 계절은 어김없이 여름을 향해 달려가는 늦봄의 뜨거운 기운과 나날이 짙어가는 초록빛으로 덮였다. 사람들은 집 밖으로 외출을 거의 하지 않았고, 대문이 꼭꼭 닫힌 골목길로 채소며 과일을 가득 실은 트럭들이 드나들었다. 그럴 땐 대문이 열리고 배추, 열무를 몇 다발씩 사들여 할머니는 김치를 담갔다. 딸기 장수가 골목에 들어온 날은 희진이 지금까지 그렇게 많은 딸기를 한꺼번에 본 일이 없을 만큼 많은 딸기를 할머니는 몇 박스나 샀다. "와아! 딸기가 왜 이렇게 많아?" "많이 먹어라. 언제 전쟁 터질지 모릉께." 전쟁이라는 말에 딸기가 목구멍에 걸렸다."먹고 죽은 놈은 때깔도 곱다고 했어야." 어른들은 딸기를 먹으면서도 공수부대가 학생과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죽이는 장면을 이야기했다. 트럭에 물건을 싣고 다니는 사람들이 봤다고 했다. 이웃집 누구누구의 아들이 시내에서 시위대와 군인들을 피해 상가 뒷골목으로 도망가다 붙잡혀 구타를 당하고 방망이에 머리를 맞아 죽었다고 했다. 공수부대원 몇 명이서 사내 한 명을 붙잡고 구타하다 쓰러진 사내의 머리 위로 커다란 돌을 털썩 떨어뜨리는 걸 누군가 봤다더라는 얘기도 들려왔다. 임산부의 배를 총검으로 찔렀다는 이야기에 귀를 틀어막고 끔찍한 장면을 상상하지 않으려고 도리질을 해보아도 자꾸만 선혈이 낭자한 채 비명을 지르는 여자의 모습이 떠올랐다. 부엌에선 할머니가 잼을 만드느라 커다란 찜솥 안에서 끓고 있는 딸기를 나무주걱으로 젓고 있었다. 보글보글 끓으며 부뚜막 벽으로 튀어 붙었다가 흘러내리는 검붉은 딸기잼이 피처럼 보였지만 온 집안엔 딸기잼의 달큼한 향이 가득했다. 희진에게 5월 광주는 딸기 향 가득한 슬픔의 계절이었다. 하루 종일 시위대와 군인들의 모습만 보여주는 뉴스와 라디오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는 날들이 며칠쯤 계속되고 있었다. 차량으로 이동하면서 스피커를 통해 시민들의 시위 참여를 호소하는 울부짖는 목소리가 멀리서 들리다가 때로는 바로 집 앞 골목 어귀까지 가까워지기도 했다. 골목길 어귀에 서있는 전봇대에 매달린 스피커에서 사이렌 소리가 들리기도 하고 뭔가 긴박한 상황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나오는 날도 있었다.


어느 날, 저녁밥상에 둘러앉은 어른들의 표정이 평소보다 더 무거웠다. 거의 매일 먹다시피 한 꽁치통조림을 넣은 김치찌개를 희진은 게걸스럽게 맛나게 먹고 있었다. 언제 먹어도 맛있는, 가장 좋아하는 반찬이었다. 할머니는 다시 6.25 전쟁 때 고생한 얘기를 했고 총격전이 있을 것이라고 했다. 절대 대문 밖으로 나가서는 안된다고 했다. 오늘 밤이 고비라고, 어쩌면 우리 집까지 총알이 날아들 수도 있다고 했다. 희진은 밥을 많이 먹었다. 마지막 밥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끊임없이 무서운 생각들이 떠올랐다. 총알이 몸에 박히면 그냥 죽는 걸까? 많이 아플까? 광주천변에서 사람들을 죽였다는 군인들이 우리 집에 쳐들어 오면 어떡하지? 간첩은? 이승복 어린이를 죽인 무장공비 같은 무서운 사람들이 들어오면 어쩌나?

밥상을 치우고 난 뒤 방문을 걸어 잠그고 커다란 상을 가로로 길게 눕혀서 방문에 기대어 놓았다. 할머니의 지휘로 장롱에서 두꺼운 목화솜 이불과 요를 모두 꺼내 밥상을 덮어 감쌌다. 밖에서 날아들지도 모를 총알을 막기 위해서라고 했다. 십장생 그림을 화려하게 자개로 꾸민 직사각형의 커다란 상은 제사나 차례를 지낼 때 펼쳐지곤 했던 것이다.

그날 저녁은 일찍 불을 끄고 온 가족이 안방에서 함께 누웠다. 어른들은 어서 이 밤이 지나가길 바라며 한 숨 지었고 희진은 할머니를 꼭 끌어안고 온 몸이 젖도록 땀을 흘리면서도 팔을 풀 수가 없었다. 그것이 공습경보였을까? 무서운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졌고 모두의 숨이 멎는 듯 일순간의 정적이 흘렀다. 그리고 갑자기 총격전의 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희진은 울음이 터지려는 걸 꾹 참았다. 무서웠지만 울음소리를 크게 내면 안될 것 같았다. 아이의 울음소리를 듣고 무장한 군인들이, 군인들에게 쫓기는 시민군들이 집안으로 들이닥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휩싸였다. 전남도청은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거리에 있었고 밤새 콩 볶는 듯한 총소리가 산발적으로 들렸다. 따다 다닥 따다 다닥... 몸을 잔뜩 웅크리고 땀을 뻘뻘 흘리며 온 식구가 좁은 방에서 몸을 맞대고 탄식과 두려움으로 밤을 보냈다.


시간은 무겁고 더디게 흘렀고 총성은 점차 뜸하게 들려왔다. 마침내 동이 트고 총소리가 더 이상 들리지 않자 어른들은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켰다. 모두가 살아있었지만 모든 것이 끝난 것인지 알 수 없었고 문밖에서 들리는 것은 참새들의 지저귐이 전부였다. 너무나 고요한 아침이었다.

담장 너머 이웃집에서 들려오던 수돗가에서의 소음들 (이를테면, 양은 세숫대야가 바닥에 부딪히는 소리라든가 물 트는 소리, 양치질하다가 "카악"하고 입안의 거품을 내뱉는 소리며 아줌마 아저씨들의 말소리 같은)이나 개 짖는 소리조차도 들리지 않았다. 해는 점점 높이 솟아올랐고 방 안의 공기가 참을 수 없을 만큼 답답하다고 느껴지기 시작할 무렵 어른들은 조심스럽게 두꺼운 솜이불로 덮인 커다란 상을 걷어내고 방문을 슬며시 열었다.

그렇게 광주의 5월은 여름의 열기 속으로 사라져 갔다.


다시 학교에 가고 텔레비전 뉴스를 보고 술래잡기와 고무줄놀이를 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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