뽕뽕 다리 건너기

검둥이와 함께 다리를 건너다

by 엘 리브로

광주천 위로 놓인 다리들 중에는 사람들이 뽕뽕 다리라고 부르는 다리가 두 개 있었다. 시멘트로 포장된 다리가 아니라 철판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는데 빗물이 고이는 것을 방지하려고 그랬는지 철판 위에 수많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구멍의 크기는 아이들의 주먹만 해서 몇 미터 아래의 하천 물이 흐르는 것이 훤히 보였다.


학동시장 쪽으로 건너는 다리는 바닥을 이루고 있는 철판의 이음새 부분이 군데군데 뜯겨 있어서 종잇장처럼 위로 말려 있기도 했다. 희진은 다리를 건널 때마다 그 사이로 발을 잘 못 디뎌 다리 아래로 추락할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했다. 그 두려움이 때로는 스릴감으로 바뀌기도 해서, 할머니의 심부름으로 집에서 멀리 떨어진 가게에 갈 때면 한참 돌아서 갈 수 있는 튼튼한 시멘트 다리가 아닌 뽕뽕 다리를 고집하곤 했다.


광주천의 지류인 동네의 개천 위로 구름다리가 있었는데 마찬가지로 구멍이 뽕뽕 뚫린 철판으로 만들어졌으나 길이가 몇 미터 안 되는 작은 다리였다. 사람들은 작은 구름다리를 뽕뽕 다리라고 부르기도 했다. 학동시장 쪽으로 가는 높은 다리와 달리 개천에서 1 미터쯤 위로 놓인, 폭이 2미터도 안 되는 그 작은 다리는 활처럼 휜 모양이었다.

비나 눈이 오면 미끄러운 철판 위에서 중심을 잡고 걷기가 힘들어서 다리의 난간을 잡고 난간에 체중을 실어가며 조심히 한 발씩 떼면서 움직여야 했다. 높이가 낮아서 비가 많이 오는 날은 불어난 물이 다리 주변까지 넘치기도 했다.





어느 주말 오후, 심심해진 희진은 다리 건너에 있는 고모집에 놀러 가기로 했다. 그날따라 희진보다 덩치가 큰 검둥이 녀석이 쇠사슬 줄은 풀려있고 목걸이만 한 채로 대문 밖으로 따라나섰다. 줄을 채울까 했지만 쏜살같이 도망가는 바람에 붙잡을 수가 없었다.

집에서 어느 정도 멀어지자 검둥이는 희진의 옆에 찰싹 붙어서 걸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둘은 열심히 걸었다. 구름다리가 아닌 큰 도로변의 다리로 가면 너무 멀리 돌아가야 해서 희진은 구름다리로 냇물을 건너기 위해 천변 쪽으로 내려가는 시멘트 계단을 내려갔다. 검둥이가 처음에는 머뭇거리더니 희진이 뒤돌아서 올려다보며 손짓을 하자 천천히 계단을 내려왔다. 문제는 다리였다. 구멍이 뽕뽕 뚫린 다리 앞에서 검둥이는 한 발작도 떼지 않고 꼬리를 아래로 만 채로 낑낑거렸다.

"가자, 검둥아. 얼른 와."

희진은 검둥이의 앞발을 양손으로 잡고 걸음마시키는 자세로 잡아끌어보았는데 검둥이는 바들바들 떨며 몸을 뒤로 빼고 버텼다.

"무서워? 내가 도와줄게."

희진은 검둥이를 안아보려고 했지만 너무 무거워서 깍지 낀 손으로 검둥이의 가슴을 떠받치고는 옆걸음으로 한 발씩 천천히 내디뎠다. 검둥이의 앞발은 허공으로 뻗어 있었고 뒷발은 다리의 철판 위에서 질질 끌리고 있었다.

"아유, 무거워. 야, 니가 좀 걸어보라고!"

다리 위에 검둥이를 내려놓자 사시나무 떨듯 떨며 다리에 힘이 풀리는지 주저앉으려다가 발이 미끌리며 구멍에 빠질 뻔했다.

"깨갱!" 하는 날카로운 소리에 깜짝 놀라 살펴보았지만 다행히 다치지는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양손을 깍지 끼고 검둥이의 상체를 다시 들어 올려 끌면서 다리를 건넜다. 온몸이 땀에 흠뻑 젖었다. 5~6미터쯤 길이가 되는 작은 다리지만 무거운 개를 안고 건너는 건 힘들었다. 검둥이는 도리질을 하고 온 몸을 털고 나서는 씩씩하게 계단을 올라갔다.



희진은 이미 힘이 다 빠져서 가파른 계단을 오르는데 다리가 천근만근 무겁고 숨이 찼다.

계단을 다 오르고 천변 도로를 몇 미터쯤 걸어가다가 덥고 목이 마르자 희진은 구멍가게 앞에 멈췄다.

가게에 들어가 아이스크림을 한 개 사서 나올 때까지 검둥이는 가게 문 앞에 서서 얌전히 기다리고 있었다.

검둥이가 혓바닥을 쑥 내밀고 헐떡이면서 희진의 손이 아이스크림의 포장지를 뜯고 있는 것을 뚫어지게 쳐다보자 희진은 아이스크림을 한 입 베어 물고는 작은 조각을 손바닥에 뱉어 검둥이에게 주었다. 날름 받아서 꿀꺽 삼킨 검둥이는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입꼬리를 올리더니 다시 혀를 내밀고 희진을 올려다봤다. 검둥이와 천천히 걸으면서 아이스크림을 먹고 있는데 앞에서 마주 걸어오던 낯선 아저씨가 말을 걸어왔다.

"아따 그놈 잘생겼다. 그 검둥이 몇 살 먹었다냐?"

희진은 순간 경계심이 들었다. 낯 선 사람과 이야기할 만큼 사교성이 좋은 것도 아니었고 사실 무서웠다.

"이름이 검둥이 맞지? 잉? 몇 살이여?"

희진은 검지 손가락 하나만 위로 향한 채 모아쥔 손을 앞으로 쑥 내밀었다.

"한 살? 한 살인디 그렇게 크다냐? 너는 몇 학년이냐? 이쁘게도 생겼네. 너보다 덩치도 큰 개를 데리고 어디 가는거여?"

희진은 계속 말을 거는 아저씨가 무서워서 얼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자꾸만 검둥이에게 관심을 갖는 아저씨가 돌아다니는 개를 잡아다가 보신탕집에 팔아버린다는 개장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고모집에 놀러 가는 게 문제가 아니었다. 얼른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진 희진은 오던 길 쪽으로 몸을 돌리며 검둥이의 목덜미와 목줄 사이로 한 손을 집어넣어 목줄을 잡고는 잡아끌었다. 갑자기 방향을 바꿔서 그런지 검둥이가 자리에서 꿈쩍 않고 버티자 속이 타들어갔다.

"가자, 검둥아. 가자고. 집에 갈 거야!"

한 손으로 힘에 부치자 아이스크림을 든 손까지 합세하려다 땅에 아이스크림을 떨어뜨리고 말았다.

땅에 떨어진 아이스크림을 날름 집어삼킨 검둥이가 얄밉고 몇 번 베어 먹지도 못한 것이 아까워 희진은 짜증이 났다. 씩씩거리며 검둥이를 향해 눈을 흘기는데 아저씨가 말했다.

"어이쿠, 아까워서 어쩐다냐? 아저씨가 아이스크림 하나 사줄게 기다려봐라 잉?"

희진이 검둥이의 목줄을 잡고 실랑이를 하고 있는 사이에 그 아저씨가 가게에 들어가 아이스크림 하나를 들고 나오더니 먹으라며 내밀었다. 동시에 검둥이의 등에 손을 얹으며 "털도 윤기가 좔좔 흐르네, 잘 키웠다. 아저씨 줄래? 고놈 데려다 키우고 싶구먼, 욕심나네!"라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안돼요! 싫어요!!" 앙칼지게 소리를 지르며 희진은 검둥이의 목을 끌어안고 엉거주춤한 자세로 끌어당겼다.

영문도 모르는 검둥이는 답답한지 벗어나려고 했고 검둥이를 놓칠까 봐 더 세게 끌어안으며 쭈그리고 앉아 희진은 목놓아 울었다. "엉~엉~ 안돼요! 내 강아지란 말이에요! 엉~엉~엉~ "

동네가 떠나갈 듯 소리를 지르며 우는 희진에게 아저씨는 허허 웃으며 말했다.

"아따, 아저씨가 장난 좀 쳤구먼 그렇게 울고 그러냐? 장난이여 장난! 너랑 검둥이가 이뻐서 그랬지, 울지 말아~~ 자, 아이스크림도 먹고."

희진은 아저씨가 내민 아이스크림을 받지 않았다. 검둥이가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아저씨 쪽으로 몸을 돌리려고 하자 더 세게 끌어안고 서럽게 울어댔다.

"허허, 고놈 참..."

멋쩍은 듯 아저씨가 자리에서 저만치 벗어날 때까지 울다가, 더 이상 아저씨가 보이지 않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희진은 다시 뽕뽕 다리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이번에는 검둥이가 순순히 따라왔다.

"가자, 집으로 갈 거야. 넌 모르는 아저씨한테 꼬리를 흔드냐, 이놈아?" 괜히 심술을 부리며 검둥이의 목줄을 잡아끌고 다리 근처로 오자 검둥이는 꼬리를 뒷다리 사이로 말아 넣고는 낑낑대며 뒷걸음질 쳤다.

희진은 검둥이의 등 뒤에서 양팔을 가슴 쪽으로 휘어 감아 끌어안고는 다시 다리 위를 걸었다.

바들바들 떠는 검둥이의 뒷발이 구멍 사이로 빠지지 않게 요리조리 신경 써서 걸어야 했다.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은 희진은 집에 들어가자마자 마루에 대자로 누웠다. 검둥이도 제 집 앞에 놓인 물그릇의 물을 홀짝거리며 다 먹더니 집 안으로 들어가 벌러덩 드러누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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