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학기 가을 소풍까지 다녀온 후 전학을 가게 되었다. 거의 2년 동안 다녔던 익숙한 학교를 떠나 낯선 동네의 낯선 학교로 전학을 간 나는 얼떨떨하고 무섭고 긴장이 많이 되었다.
전에 다녔던 학교보다 훨씬 큰 학교였고 끝이 없을 것처럼 긴 복도와 쉬는 시간마다 각 교실에서 쏟아져 나오는 많은 아이들의 함성에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나무로 만들어진 기다란 매를 든 여선생님은 또 어찌나 무섭던지 묻는 말에 대답도 잘할 수가 없어서 모기만 한 소리를 간신히 낼 수 있을 뿐이었다.
다행히 또래 친구들과는 쉽게 친해지는 활발한 성격이어서 첫날부터 옆자리 짝꿍과도 앞뒤에 앉은 친구들과도 금방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교과서도 사이좋게 함께 보고 쉬는 시간에 화장실에도 함께 갔다.
며칠 등하교를 하면서 집이 같은 방향인 반 친구를 알게 되어 어느새 단짝이 되었고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해 가며 어느새 1주일이 훌쩍 지나갔다.
새로운 한 주가 시작되는 월요일 아침, 난 평소대로 씩씩하게 학교에 갔는데, '어? 뭔가 이상하네... 아는 얼굴들이 오늘은 아무도 안 보이네?'라고 생각하면서도 '뭐, 그런가 보다'하며 교실로 들어갔다. 그런데 싸악 얼어붙는 느낌... 이건 뭐지? 온통 모르는 아이들 뿐이었다. 얼른 내 자리를 보았더니 낯선 아이가 앉아 있었다. 고개를 휙휙 돌려 보아도 아는 얼굴은 단 한 명도 없다!
후다닥 몸을 돌려 교실밖으로 나와 학년 반 표시를 확인했다. 있다. "2-1"이라고 쓰여있는 표지판이...
어, 그런데 그 아래 "2-8"은 뭐지?? 원래부터 있었나?
멍한 표정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고 서있는 나에게 호기심 어린아이들의 시선이 날아들었다.
한 아이가 교실로 들어가려다 돌아보고 물었다?
"너 누구야?" "어... 저..." 이름을 말하려는데 다시 그 아이가 물었다.
"몇 반이야?" "2학년 1반"
"1반은 오후반인데? 8반이 오전반이야."
"오후반이 뭔데?"
"집에서 점심밥 먹고 학교에 와!"라고 말하고 아이는 교실로 들어가 버렸다.
시작종이 울리고 늦게 등교한 학생들이 바쁘게 뛰어들어오며 힐끗 쳐다보았다. 낯선 선생님이 옆반 교실에서 나오는 걸 보고는 얼른 도망치듯 출입문으로 나와버렸다.
'점심을 먹고 학교에 온다고...?' 도무지 이해가 안 갔다. 처음 들어본 소리였다. 학교는 아침에 가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던 나로서는 정말 오후에 학교에 간다는 것이 이상한 나라의 이야기처럼 들렸다.
터벅터벅 집까지 걸어가면서도 혹시나 아는 얼굴이 있으려나 싶어 두리번거렸지만 책가방을 메고 걸어가는 아이들은 없었다. 뭔가 개운치 않은 기분으로 집에 들어가니 할머니는 어딜 나가셨는지 보이지 않고 사촌 동생은 문간방에 세 들어 사는 새댁 아줌마와 놀다가 나를 보고 반갑게 달려들었다. "언니! 벌써 왔네!"
새댁이 물었다. "왜 벌써 왔어?"
"오후반이래요."라고 대답하자 "그래?"라고 무심히 말하며 새댁은 자기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사촌 여동생과 한참 놀다 보니 점심 무렵이 되었고 할머니가 들어오셨다. 점심을 먹고 나서 동생과 놀던 나는 학교에 가야 한다는 사실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 또 평소처럼 아침에 등교한 나는 교실 문 앞에서 전날과 똑같은 상황을 맞닥뜨렸다.
이번에도 어수선한 가운데 몇몇 아이들이 쳐다보는 것을 느끼며 얼른 교실밖으로 나와버렸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겁고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쳐다보는 것만 같았다. 아주머니 한 분이 "집에 가냐? 준비물 놓고 나왔어?"라고 물으시며 바삐 걸어갔다. 집 앞 골목에 들어서는 순간 할머니의 뒷모습이 막 대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발걸음이 딱 멈췄다. 나쁜 일을 하다 들킨 것처럼 심장이 두근거렸다. 왜 학교에 안 가느냐고 혼날 것만 같았다.
발길을 돌려 집 근처의 냇가로 갔다. 큰길에서 몇 미터 아래로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풀밭이며 자갈이 깔려 있고 그 옆으로 냇물이 흘렀다. 사람들은 자동차가 지나다니는 큰 다리 대신에 냇물 바로 위로 낮게 놓여있는 뽕뽕다리를 건너 다니기도 했다. 학교 가는 길도 그렇게 가면 더 가까워서 나도 자주 그 다리를 건넜다.
집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나는 뽕뽕다리 위에서 왔다 갔다 하다가 싫증이 나자 물이 얕은 곳에 놓인 돌로 된 징검다리를 껑충껑충 뛰어다니기도 하고 바위의 숫자를 세어보기도 했다. 돌멩이를 집어 멀리 던져도 보고 작은 돌멩이로 공기놀이를 했다. 그러다가 또 싫증이 나자 책가방을 멘 채로 돌틈에 앉아 발장난을 하고 있는 나를 어슬렁거리며 지나가던 개 한 마리가 쳐다보고 꼬리를 흔들었다. 코를 킁킁대며 바로 옆까지 다가오던 개가 다시 멀리 가버리자 심심해진 나는 또 뭘 해야 하나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그때 아주머니 한 분이 커다란 바구니를 머리에 이고 오더니 멀찍이 자리 잡고 앉아 바구니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바구니 안에서 나온 것들은 빨랫감과 방망이, 비누 같은 것들이었다. 아주머니는 빨래를 냇물에 담그고 휘휘 저었다가 꺼내더니 비누칠을 했다. 넓고 평평한 돌 위에 빨래를 놓고 주무르고 흐르는 물에 헹구는 것을 바라보았다. 하얀 비누 거품이 물에 휩쓸려 내려가는 것을 보면서 우리 할머니도 냇가에서 빨래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나무 방망이로 빨래를 탁탁 두드리는 것도 재밌어 보여서 한참을 보다가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가끔 길을 가다가 냇가에서 빨래하는 사람들을 보기는 했지만 이렇게 가까이서 오랫동안 쳐다보는 건 처음이었다. '우리 할머니는 왜 냇가에서 빨래를 안 하는 거지?' 할머니는 마당에 있는 수돗가에서 수돗물을 틀고 빨래를 하셨다.
빨래하던 아주머니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또 다른 아주머니와 할머니가 빨래 바구니를 들고 냇가로 왔다.
빨래 구경도 재미없어진 나는 책가방에서 교과서를 꺼내 읽기 시작했고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하교하는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들렸다. 이제 집으로 돌아가도 되는 시간인 것이다.
그렇게 수업을 빼먹으며 일주일을 보냈다. 혼날까 봐 말도 못 하고 끙끙대고 있던 나는 주말에 밖에서 우연히 같은 반 친구를 만났고 친구는 왜 그동안 학교에 안 나왔냐고 물었다. 아팠다고 얘기하고 월요일에 함께 학교에 가자고 했더니 친구는 점심 먹고 우리 집으로 데리러 오겠다고 했다.
다행히 친구 덕분에 그다음 월요일부터는 오후반 시간에 맞추어 학교에 갔고 나는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오후반 수업이라는 것에 완벽히 적응했다. 아마 2주 간격으로 오전반과 오후반을 번갈아 갔던 것 같다.
소심한 나는 학교에 결석한 것 때문에 혼날까 봐 말도 못 하고 속앓이를 해야 했는데 그 이야기는 몇 년이 지나서야 할 수 있었다. 그 당시 전학을 간 국민학교는 전교생의 수가 4000명이 넘는 큰 규모의 학교였다.
한 반에 60명이 넘는 학생들이 있었고 나무로 만든 책걸상이 다닥다닥 붙어있었으며 요즘 학교의 교실에 있는 사물함도 없어서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다녀야 했다. 학생수는 많고 교실수는 부족하니 저학년들은 오전과 오후반으로 나뉘어서 수업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세월이 흐른 뒤에야 궁금한 것은 그때의 담임 선생님은 학생이 소식도 없이 일주일씩이나 결석을 했는데도 왜 아무런 말도 없었던 것일까? 집집마다 전화기가 있지 않았던 시절이긴 하나(언제부터 우리 집에 전화기가 있었는지는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마음만 먹으면 학적부의 주소를 찾아서라도 어떻게든 연락을 취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