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절의 기술

거절하는 것도 받는 것도 다 어려워

by 엘 리브로

내가 상대에게 어떤 제안을 했을 때 "노우"라는 대답을 들으면 순간 무안해지고 자존감이 바닥으로 툭 떨어지는 기분이 든다. 표정관리에 신경을 쓰게 된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아주 쿨하게 "그래, 알았어~"라고 미소 지으며 말하지만 이미 속마음은 쥐구멍이라도 찾고 싶어 진다.

머리로는 안다, 세상 일 내 맘대로 될 리가 없다는 것을, 난 내 의견을 말할 뿐이고 저 사람은 자신의 의견을 말할 뿐이라는 것을.

내 마음이 그렇기에 누군가의 어떤 제안을 거절하고 싶을 때에도 어떻게 말해야 상대방이 상처를 받지 않을까 고민하게 되고 결국 빙빙 돌려 말하려다 거절의 타이밍을 놓치게 되는 경우도 많다. 물건을 사러 갈 때도 그렇고 보험이나 방문 판매원의 상품 권유도 쉽게 뿌리치지 못한다. 그러니 아예 말을 섞지 않는 것이 상책이다.

누군가로부터 뭔가를 받게 되는 경우에도 거절하는 것이 어렵다.




한 달 전의 일이다.

삼촌과 사촌 여동생과 나, 이렇게 셋이서 오랜만에 점심 모임을 가졌다. 나는 오전에 근무를 마치고 약속장소인 식당으로 바로 갔고 사촌은 삼촌의 차를 타고 갔다. 밥을 먹고 나서 동생 집 근처의 카페에서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다가 삼촌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고 내가 동생을 집으로 태워다 주었다.

동생 집 단지 내의 정원에서 산책을 하며 이야기를 더 나눈 후에 우린 헤어졌는데 순환도로에 막 접어들었을 때 휴대폰 벨이 울렸다. 힐끗 보니 지역번호로 시작하는 모르는 번호라서 무시했으나 끊겼던 전화가 계속 다시 울려댔다. 분양광고 전화겠지 생각하며 신경질적으로 통화버튼과 스피커폰을 눌렀다. 사촌 동생이었다.

"언니, 내 휴대폰 봤어?"

"응? 소파에 없어? 식탁에 올려놨나?"

"여기저기 다 봤는데 없어! 언니 차에 없어?"

얼른 조수석의 자리를 봤지만 아무것도 없었다.

"아니, 없어. 혹시 식당에 두고 온 거 아냐?"라는 나의 물음에, 동생이 말했다.

"아냐, 카페로 이동할 때 삼촌 차에서 전화받았는데..."

맞다, 내가 카페 주차장을 못 찾아서 전화 걸었었지.

"혹시 삼촌 차 안에 두고 왔을지도 몰라! 내가 물어보고 있으면 삼촌한테 가서 받아서 갖다 줄게."

건강상태가 부쩍 안 좋아진 동생이 운전을 하며 다니는 것은 무리였기에 내가 나서기로 했다.


삼촌에게 전화했더니 차에 있는지 확인하고 전화하겠다고 했다. 우리 집 쪽으로 계속 가야 할지 삼촌이 근무하는 곳으로 가기 위해 고속도로를 타야 할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다가오자 마음은 조급해졌다.

그러다 갑자기 산책 중에 동생이 숨이 차다고 해서 벤치에 앉았던 기억이 났다. 차를 우리 집 방향으로 틀었고 신호 대기 중에 얼른 통화목록을 확인해서 동생의 집전화를 눌렀다.

"아까 우리 벤치에 앉았었어. 거기에 놓고 잊어버린 것 같다."

"그래? 난 폰을 들고나간 기억이 안 나는데..."

"너 정서방 전화까지 받았어. 나랑 산책 중이라고 얘기했어."

"가서 찾아볼게. 그런데 진짜 전화받은 기억도 전혀 안 나네..."

삼촌에게서도 바로 전화가 걸려왔다, 차에 가서 찾아봤는데 폰이 없다고. 그래서 내가 말했다, 다시 생각이 났는데 산책 중에 벤치에 놓고 일어서버린 거라고.

사촌 동생에게서도 다시 전화가 왔다.

"언니, 찾았어. 근데 정말 기억이 하나도 안 나네... 내 정신이 왜 이러지?"

"그럴 수도 있지 뭘. 찾아서 다행이고."


그날 저녁부터 삼촌의 문자와 전화가 이어졌다. 휴대폰 지갑을 사주시겠다는 것이었다.

난 바로 괜찮다고 말했다. 동생은 작은 크로스백이(그것도 명품으로...) 여러 개 있고 나 역시 작은 백이 있어서 따로 휴대폰 전용이 필요 없다고. 그러나 삼촌은 산책 갈 때 부담 없이 얼른 들고나갈 지갑이 좋다며 사주시겠다고 했다. "옷 주머니에 폰을 넣으면 돼요. OO도 그러는데 어쩌다 오늘은 주머니가 얇아서 빠질까 봐 들고 다니다가 벤치에 놓고 잊어버렸대요. 앞으로는 꼭 크로스백에 넣어서 나간다고 했어요."

그러나 삼촌은 검색한 휴대폰 케이스 지갑들의 사진을 줄줄이 캡처해서 보냈고 골라 보라고 했다. 동생은 나에게 절대 안 쓸 거라고 문자를 보냈다(그럼 직접 삼촌한테 말하든지...!) 나도 삼촌한테 그렇게 말하고 싶지만 딱 잘라 말할 수도 없었다.

--OO가 비슷한 거 있대요. 저는 손이 아파서 손목에 걸거나 들고 다니는 것도 불편하고 지금 쓰고 있는 작은 백이 딱 좋아요.

나의 문자에 '오케이'라는 답이 돌아왔고 그런 줄 알았다.


그런데 1주일 뒤에 삼촌은 똑같은 디자인의 까만색 가죽으로 된 휴대폰 지갑을 3개나 샀다며 사촌동생 자매와 내 것이라고 했다. 내 것은 손목이 아프다는 나를 배려해서 크로스로 멜 수 있는 가죽 어깨끈까지 추가로 구매해서... 그것이 삼촌의 마음이라고 했다. 마음만 받겠다는 나의 의견은 그냥 가볍게 패스~

쿠O에서 파는 1~2만 원대의 케이스라면 '그래, 조카들한테 꼭 선물을 하고 싶어 하는 삼촌의 마음을 감사히 받자'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20만 원대의 제품을 3개씩이나 사다니! 그것도 다들 필요 없다는 물건을 말이다.

어쩌겠는가, '예뻐요~ 감사히 잘 쓸게요^^'라고 문자를 보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차라리 세일하는 겨울 부츠나 장갑을 사달라고 할걸... 후회 막급이다. '기왕 선물 받은 것인데 잘 쓰면 되지...'가 아니다. 외출할 땐 차를 가지고 다니니 차 키도 담아야 하는데 들어가지 않는다. 강아지 산책할 땐 배변 봉투까지 넣어야 하는데 그것도 안 들어간다. 결국 실용성에서 꽝이니 그저 책꽂이 한쪽에 고이 모셔두고 한 번씩 쳐다볼 때마다 "아이고, 돈 아까워!" 소리가 절로 나온다. 중고 사이트에 내놓고 반값에 팔아버릴까 생각 중이다.

"엄마, 너무 해!"라는 딸에게 "그럼 네가 쓰던가!" 했더니, "내 스타일은 아니쥐~"라고 말한다.

그럼 어쩌라고? 사용하지도 않고 묵히느니 필요한 사람에게 팔고, 그 돈으로 정말 내가 필요한 것을 사서 감사히 쓰는 것이 더 낫지 않나?




지난 주말에는 전복세트를 명절 선물로 받았다. 구정이 2주나 남았는데 벌써 선물을 보내는 정성이라니...

남편의 지인으로부터 온 것인데 똑같은 것을 지난 추석 때도 받았고 다 먹지도 못해서 냉동실에 아직 남아 있는 상태라 이걸 또 어떻게 처리하나 싶었다. 내가 배달을 가야 하는 귀찮음도 있었으나 앞으로 냉동실이 미어터질 일을 생각하면 어서 어딘가로 보내야 했다. 형님(남편의 누나)에게 톡문자를 보냈다.

--형님, 전복 선물 들어온 게 있는데 드실래요?

몇 시간이 지나서야 답장이 왔다. --자네 먹지 그래.

이건 거절인가 아니면 그냥 한 번 사양해 보는 제스처인가? 헷갈렸다.

--저희 식구들은 그닥 좋아하지 않아서요. 좋아하시면 갖다 드릴게요.

톡을 읽고도 한참을 대답이 없다. 거절인가? 초조하게 문자를 기다리다가 답답해서 전화를 걸었다. 전복 안 좋아하시냐는 나의 말에 "좋아하기는 하는데..."로 시작한 말이 한참 길어졌다. 결론은 아무도 만나고 싶지 않다는 것이었다.

아! 진작에 그렇게 말하면 안 되나? 몇 시간 동안 전복을 냉동실에 넣어야 되나 말아야 되나 고민하고 휴대폰을 들여다보고 했던 내가 우스웠다. 그런데도 한편으론 이런 생각도 했다, '사람을 만나는 게 싫다면 경비실에 두고 온다고 할까?'

내 생각을 말하자 남편은 "그러든가..."라고 말하는데, 옆에서 딸은 "꼭 그렇게까지 해야 돼?"라며 싫은 내색을 했다. '그래 정말 싫은 것일 수도 있는데 내가 오버하는 건지도 몰라...'

결국 전복은 친정 동생에게 가져다주는 것으로 마무리되었다.

사촌 동생은 딱 잘라 말했다. "전복 다듬는 거 손 아파서 싫어. 안 먹을래."

거절은 그렇게 확실하게 해 줘야지.

그나저나 불쌍한 전복 같으니라고... 몇 번을 퇴짜 맞은 거니 너?


난 거절하는 방법을 잘 모르겠고 상대방의 완곡한 거절을 알아채는 것도 어렵기만 하다.

나이를 더 먹으면 쉬워지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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