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결에 시원스러운 빗줄기가 쏟아지는 소리를 듣고는 '아, 드디어!'라고 마음속으로 환호하며 다시 잠에 빠져 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나 캄캄한 새벽의 시원한 빗소리를 들어본 지가 얼마만인지...
일기예보를 확인하니 오늘부터 이틀 동안 80mm 이상의 비가 내린다고 한다. 남부 지방의 가뭄이 해소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간절히 바라는 마음이다.
지역 방송에서는 지난가을부터 물을 아껴 쓰자는 캠페인이 계속 나오고 있다. 시에서 보내는 안전 안내 문자도 매일 받는다.
오피스텔 근처의 공단과 인접해 있는 마을에서는 스피커를 통해 같은 내용의 방송을(지하철에서 듣는 녹음된 안내 방송과 같은 음성으로) 주기적으로 내보낸다.
오피스텔의 관리 사무소에서도 구체적으로 물을 아껴 쓰는 방법에 대해 방송을 하고 엘리베이터 안에 안내문과 함께 생활 속에서 잘 실천을 하고 있는지 동 호수별로 표기하고 서명하도록 체크리스트를 붙여놓았다.
샤워시간 단축하기, 설거지할 때 대야를 놓고 쓰기, 양치컵 사용하기, 수압 조절하기, 변기의 물통에 벽돌 넣어두기 등등이다.
새로울 것은 없다. 누구나 알지만 실천하지 않고 있을 뿐이고 가뭄 때문이 아니라도 당연히 생활 속에 습관으로 자리 잡아야 하는 일이다. 수도 요금을 아끼기 위해서만이 아니라 자원을 아끼기 위해서다.
결혼 초에는 무엇이든 아끼다 못해 궁상스럽기까지 한 시어머니의 습관들과 4남매 중 유일하게 혼자서 닮아 그대로 실천하는 남편을 보며 힘들어했다. 그러다 어느 부분에서는 배울 점이라 생각했고 나도 자연스럽게 보조를 맞추게 된 것이 나만의 물을 아끼는 방식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우선 변기의 물통에 벽돌을 넣거나 페트병에 물을 담아 넣어봤지만 그것 때문에 내부 부속품의 자리가 이탈되어 물이 차지 않고 줄줄 새어나가 버리는 일이 자주 생겼다. 그래서 물통에 뭔가를 넣는 것보다는 수량을 조절했고 머리 감을 때 헹구는 물을 변기의 물통이 아닌 변기에 바로 부어서 물을 내렸다.
샤워할 때도 따뜻한 물이 나오기 전에 틀어서 버려지는 찬물을 대야에 받아 모아두고 속옷을 빨고 그 물을 변기에 부었다. 20년이 넘게 해 온 그 방식이 우리 집에서는 자연스럽고 딸들도 자취생활을 하면서 그대로 하고 있다. 내 이야기를 들은 친구나 지인들 중에는 "그래, 나도 이제는 그렇게 해봐야겠다."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에이, 변기물을 바로 안 내리면 냄새나잖아!"라며 인상을 쓰기도 한다.
냄새가 날 정도로 하라는 말이 아니다. 두 번 물 내릴 것을 한 번으로 줄이고 욕실 청소 할 물도 기왕이면 흘려서 버려지는 물을 모아서 사용하면 좋지 않을까? 상황에 따라 조절을 하되 전혀 생각을 하지 않고 사는 것과는 차이가 있다. 수도 요금의 고지서에 항상 가장 적은 요금이 찍혀 나오는 것도 작은 성취감이기는 하지만 남들보다 한 달에 1~2만 원 아낀다고 부자가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자원을 낭비하지 않고 아껴 쓰고 있다는 자부심은 덤으로 따라온다.
한창 헬스장에 다녔을 때는 기분 좋게 운동을 하고 나서 매번 샤워실에서 스트레스를 잔뜩 받았다. 샤워장에 들어가는 순간부터 나올 때까지 물을 틀어놓고 잠그지 않는 사람들이 너무 많았다. "제발 비누칠하면서, 머리에 샴푸 거품 내면서 물 좀 잠그면 안 되나요?"라고 묻고 싶었으나 그런 마음은 꾹꾹 눌러두고 "저기... 물을 좀 잠갔다가 다시 틀면 안 될까요?"라고 말해볼까?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런 말을 했다가는 이상한 사람 취급 당할 것 같아 끝내 아무 말도 못 했다.
사람들이 사용하는 바디 샴푸와 헤어 샴푸의 양도 어마어마했다. 한 사람이 만들어낸 그 많은 비누 거품들을 씻어내기 위해 얼마나 많은 물이 쓰이고 그 물을 정화하기 위해 또 얼마나 엄청난 양의 물이 소비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답답했다.
내가 내 돈 내고 사용하는데 무슨 참견이냐고 말할 사람이라면 더 말할 가치도 없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공공의 이익이나 환경 보존, 자원 고갈의 위험성 같은 개념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 생판 모르는 남을 몇 마디 말로 바꿔보겠다고 나섰다가는 봉변당할 것이 뻔하고 혼자서만 속앓이를 하면서 못 본 척 나오는 수밖에...
다행스러운 것은 오래전에 샤워기의 물이 일정 시간 동안만 나오고 끊기면 다시 눌러야 하는 방식으로 바뀌어서 그나마 조금은 나아졌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은 신경질적으로 계속 잠금장치를 때려가며 물의 흐름을 끊지 않으려 애쓰고 있었다.
그것은 대중탕에서도 수영장의 샤워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내가 대중 샤워시설을 이용한 지가 꽤 오래되었지만 그리 달라지지는 않았을 것이라 확신한다.
사람들은 쉽게 변하지 않으며 그들을 보고 자란 자녀들이 또 그런 생활양식을 이어가고 있으니까...
이 지역 주요 식수원의 저수율이 24% 아래로 떨어졌고 이대로 계속 가면 3월부터는 제한급수가 불가피하다고 한다. 아주 오래전(호랑이 담배까지는 아니지만) 내가 국민학교, 중학교에 다닐 때 제한 급수를 자주 했었다. 커다란 탱크에 물을 실은 급수차가 오면 집집마다 식구들이 있는 대로 나와 양동이들을 양손에 들고 줄을 섰다. 차가 떠나버리기 전에 한 동이라도 더 물을 받기 위해 물이 든 양동이를 들고 빠를 거름으로 집에 들어가서 욕조만큼이나 커다란 고무대야에 물을 부어놓고 다시 빈 양동이를 들고 달리기를 했다. 그 물로 3일은 버텨야 했으니 식구들이 많거나 하숙이라도 치는 집에서는 그야말로 물 전쟁이었다.
그 시절의 추억이 있는 사람들은 제한 급수라는 단어에 민감하고 걱정이 태산이다.
어쩌다 아파트의 물탱크 청소라든가 상수도 공사 등으로 인해서 몇 시간 단수만 되어도 긴장하고 욕조에 물을 가득 받아두었던 때도 간혹 있었지만 요즘은 욕실에 욕조를 없애버린 집들이 많다 보니 또 걱정들이다.
먹는 물은 생수를 사서 먹는다고 해도 매일 하던 샤워는 어쩔 것이며 변기에 부을 물은 어디다 저장한단 말인지... 매일 산책 후에 발을 씻겨야 하는 강아지들도 있다. 욕실이 좁아진 새 집에는 간이 욕조나 큰 대야를 사서 놓을 공간도 없다. 오죽하면, "만약 제한 급수를 하게 되면 난 강아지들 데리고 서울로 올라가야겠다."라고 선언했겠는가!
사람들은 안부를 묻듯이 물걱정의 말을 서로 주고받는 것이 일상이 된 지 오래다.
지인들에게 난 진심을 담아 말한다, 대한민국 사람들이 나처럼만 물을 아껴 쓴다면 이런 지경까지는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때로는 웃으며 말한다, "네가 그렇게 물을 펑펑 쓰니까 저수지 물이 다 말랐지!"
난 부자가 아니다. 그러나 주장하고 싶다, 물값을 지금보다 두 배 이상 올려야 한다고.
아니, 세 배쯤 올려야 한다. 기본요금은 낮게 하되 누진 구간을 더 세분화하고 누진율을 팍팍 올려야 한다.
오늘 아침 다행히 비가 내리고 있다. 100mm 정도는 와야 저수지의 저수율이 10% 상승한다고 한다. 지난달에 내린 폭설은 가뭄 해소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했다. 1월인데도 3월처럼 포근한 요즘 봄이 되기 전에 비가 많이 내리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