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은 남들이 겪는다는 명절 스트레스를 시댁과의 마찰이 아니라 부녀간 언쟁 때문에 겪어야 했다.
일 하면서 시댁과 친정 일까지 돌봐야 했던 내가 혼자서 집안일을 다 하는 것을 보고도 아무도 나서서 도와주지 않았다. 아이들의 시험기간과 명절(또는 공휴일)이 항상 겹쳤고 공부를 핑계로 설거지조차도 안 하는 아이들과 "집 안에 여자가 셋인데 내가 왜?"라며 아무것도 돕지 않는 남편 때문에 나만 혼자서 주방을 벗어나지 못하는 휴일이었다.
'속은 부글부글 끓고 있으나 며느리의 도리는 한다'는 오기로 버텨내며 혼자서 명절 음식을 다 만들어서 시댁에 갖다 드리고 명절 당일에 또 인사를 가고 시댁에서도 내가 혼자서 차리고 치우고를 반복했다. 친정 부모님이 돌아가시기 전 몇 년 동안은 시댁과 친정을 함께 챙겨야 했다.
왜 어디서나 엄마만 일 하는 거냐고 불만인 아이들과 남편의 신경전은 집에 돌아와서 연장전을 치르다가 꼭 한 번씩은 크게 터지고야 말았고, "정말 나를 생각해 주는 거라면 상대방 탓하지 말고 그냥 지금 설거지를 하던지 청소를 같이 해라"라는 나의 외침은 남편과 큰딸의 싸움을 말리는 데는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둘째와 나만 한숨지으며 말없이 집안을 치우면서 폭풍이 지나간 후의 막막한 기분에 휩싸였다. 그리고 하루나 이틀쯤 냉전이 지속되고 대화도 없이 각자의 시간을 보내다가 연휴가 다 지나가버리고 아이들은 서울행 기차에 오른 뒤에야 미안하다는 문자를 보냈고 남편도 뒤늦게 후회하는 모습을 보였다.
큰 딸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부터였던 것 같다.
그전까지는 아이의 강한 자기주장에 대해서 별 반응이 없고 허허 웃고 넘어가던 남편이었다. 그런데 어느 때부터인가 아이의 눈빛이 달라지고 아빠에 대해 비난조의 강한 어투를 쓰기 시작했다. "네 주장을 하려거든 감정적으로 접근하지 말고 차근차근 논리적으로 풀어가라"는 나의 말을 딸은 귓등으로도 안 들었다.
남편은 버릇없이 대드는 아이를 혼내지 않는다며 나에게 불같이 화를 냈고, 아이는 아이대로 아빠가 논리적으로 반박하지 못하니까 말투를 문제 삼는다며 맞섰다.
큰 아이가 중학생이 되자 한 달이 멀다 하고 남편의 분노가 폭발하였고 그 피해는 나와 둘째 딸의 몫이었다.
둘째는 아빠가 무서워 눈치를 슬슬 보며 숨죽여 울었고 난 아이 교육을 잘 못 시킨 죄, 아이 앞에서 남편의 권위를 세워주지 않은 죄로 며칠 동안 곤욕을 치러야 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사춘기 아이의 짜증이 늘었고 그것을 참아내지 못하는 남편과 딸의 전쟁은 1,2주에 한 번 꼴로 터졌다.
오죽했으면 집에서 멀리 떨어진 타지방의 외국어 고등학교에 지원하겠다는 중3 아이의 갑작스러운 선언에 놀라지도 않고 마음속으로 박수를 쳤을까...
아이가 공립외고에 입학하여 기숙사 생활을 하자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한 달에 한 번 집에 오면 전에 그렇게 서로 못 잡아먹어 안달이던 아빠와 딸은 언제 그랬냐는 듯 애틋했다.
그러나 그것도 한 학기를 못 넘겼다.
공립외고라서 사립학교와 달리 국경일, 연휴마다 쉬었고 이런저런 이유로 주말에 기숙사에서 나와야 할 때가 많았다. 아이가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 때면 어김없이 폭풍이 한 번씩 지나갔고 난 매번 강한 후폭풍을 2,3일은 겪어야 했다.
수험생활에 지장이 있을까 봐 집에서는 스트레스를 주고 싶지 않았던 나와 다르게 남편은 아이의 말투나 늦잠, 방을 치우지 않는 등의 생활태도에 대해서 훈계를 하려고 했고 고분고분 말을 듣지 않는 것에 불같이 화를 냈다. 오죽했으면 그 시절의 나는 달력의 빨간 날짜를 다 지워버리고 싶다고 했을까?
아이들이 모두 대학생이 된 후에는 페미니즘까지 들먹이며 딸은 아빠의 가부장적인 태도를 문제 삼았고 논리적으로 반박하지 못하는 남편은 폭언으로 자신을 방어했다. 같은 여자의 입장에서 딸의 말이 다 맞는 말이었기에 난 아이의 말하는 태도만을 나무랄 수밖에 없었는데 그럴 땐 "엄마도 똑같다"라는 소릴 듣게 되었다.
남편과 딸 사이에서 누구의 편을 들 수도 없어서 중재랍시고 어중간한 의견을 내놓다가 양쪽의 비난을 받기 일쑤다.
남편은 아이들이 어렸을 때부터 내가 아이들 편에 서서 자기를 무시했다며, 그래서 애들이 아빠를 우습게 본다는 일관된 주장만 내세울 뿐 아이들이 주장하는 내용을 진지하게 들어볼 생각은 하지 않는 것 같다.
"사람은 절대 안 바뀐대."라는 말을 하면서도 제 아빠의 얕은 인내심을 종종 시험하는 딸에게 나도 이젠 같은 말을 하고 싶지도 않다. 어린애도 아니고 자기만의 확고한 신념인지 철학인지 모를 강한 성향을 보일 때마다 '품 안의 자식'이 아님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직장인이 되어 매일 출근을 해내고 야근까지 하면서 보낸 몇 년의 세월 동안 딸은 '평생 아빠가 이렇게 힘든 일을 해왔구나'하는 생각과 고마움에 측은지심까지 갖게 된 듯하다. 가끔은 아빠를 향한 고운 시선을 보내기도 하고 아빠가 보고 싶다는 말도 하는 걸 보면 '그래, 의견이 안 맞을지는 몰라도 핏줄이 어디 가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음식 만드는 것, 설거지하는 것을 정말 싫어하는 큰딸은 이제 재택근무이거나 연휴 때 집에 오게 되면 밀키트를 미리 잔뜩 주문해 놓고는 "엄마, 주방에서 일하지 말고 편하게 먹고 쉬어, 엄마는 너무 일만 하더라!"라며 뭐가 먹고 싶냐고 묻는다.
구정연휴가 다가오고 있다. 딸들은 일하기 싫어서 아무것도 만들지 말라고 할 것이다. 그래도 둘째는 아빠나 언니와 입씨름하는 것보다는 늘 그래왔듯이 나를 돕는 쪽을 선택할 것이다. 친정 부모님과 시어머님이 돌아가시고 나니 준비해야 할 음식이 많은 것도 아니고 차례상을 격식에 맞추어서 차리라고 하는 사람도 없다.
정말 간단히 식구들 먹고 시아버님께 드릴 만큼만 음식을 만들고 명절 선물세트로 들어온 것들로 연휴 상차림을 준비하려고 한다.
아무도 안 돕겠다고 해도 화나지 않을 만큼만 일하고 놀기. 그것이 이번 명절 연휴의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