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지기 내 친구 J

by 엘 리브로

중학교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친구 J는 1학년 이후로는 같은 반인 적도 없고 우린 고등학교를 서로 멀리 떨어진 곳으로 배정받아 다녔지만 결혼 전까지 1년에 한두 번쯤 띄엄띄엄 내가 연락한 덕분에 지금까지도 우리의 우정은 이어지고 있다.

J와 나는 1년 동안 단짝이었는데 학년이 바뀌면서 멀어질 뻔했던 위기가 몇 번 있었다.

반이 달라도 교과서나 체육복 등 준비물을 서로 빌려주며 여전히 친했던 우리는 각자의 반에서 새로 친해진 친구들과도 함께 어울리게 되었는데 가끔은 서로 간의 오해와 질투로 인해 미묘한 신경전이 있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J는 나에게 편지를 건넸는데 구구절절이 나에게 서운한 얘기를 하다가 끝에 가서는 이제 서로 모른 체 하자는 절교의 통보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우스운 일인데 그 당시에 나는 J와 절교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좋아서가 아니라 '네가 뭔데 나한테 절교를 선언해? 누구 맘대로?'라는 심뽀로 무시해 버렸다.

일부러 나를 피하고 다른 친구들 앞에서 나를 외면하는 J에게 전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다정하게 말을 건네고 평소와 똑같이 행동했다. 체육복을 빌리러 가고 깜지를 빌리러 가곤 했는데 처음엔 차갑게 굴다가 점점 어색해지더니 어느 순간 J는 다시 예전의 친구로 돌아가 있곤 했다.

나는 친구들이 많았으나 J는 한 두 명과 절친으로 지내는 경향이 있었다. 지나가다 마주치면 반드시 다시 뒤돌아보게 될 정도로 예쁜 J는 그래서인지 여자애들의 시기를 많이 받았고 선한 마음으로 행하는 일도 아부나 잘난 체로 평가절하되곤 했다. 선생님들로부터도 예쁨을 받았고 그것이 또 다른 아이들로부터 미움을 받는 원인이 되었으니 얼마나 힘든 학창 시절이었을까 싶다.

물론 철없던 사춘기 시절엔 그런 생각까지는 못했었고 다만 나는 다양한 개성을 가진 친구들에게 마음이 끌렸으니 J의 두드러진 미모가 내게는 질투의 대상이 아니라 독특한 매력으로 느껴졌을 뿐이었다.

천재에 가까운 IQ를 가진 친구나 춤을 잘 추는 친구, 만화 그림을 잘 그리는 친구, 개그맨 뺨치는 입담을 자랑하는 친구 등 어느 한 구석도 공통점이 없는 친구들에게 나는 빠져들었고 J는 그런 내가 못마땅하고 자기만을 바라봐 주기를 바랐었다. 우리의 우정이 40년 동안 계속된 것은 우리가 같은 고등학교에 다니지 않게 되어서 가능한 건지도 모르겠다.



J에게는 오빠 둘, 언니 하나와 남동생 한 명이 있었다. 모두 공부를 잘했고 그중 첫째인 큰 오빠는 의사인데(우리가 중학생이었을 때 의대생이었다) 어머니의 물심양면 맹목적인 지지를 받았다. 5남매 중 둘째인 언니는 어릴 때 얼굴에 입은 화상의 흔적으로 늘 가족의 과보호 속에 있었고 그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둘째 오빠는 K대학교의 법대생이었는데 그 오빠의 뒷바라지를 위해 J는 당시에 서울의 후기 대학이었던 S대학에 다녀야 했다. 서울의 전기 대학에 낙방하자 재수 따위는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고 학식이나 하숙집 음식이 입에 맞지 않는다는 작은 오빠의 밥시중을 들기 위해 S대학의 영문학과에 다녔다. 오빠의 밥을 차리기 위해 수업이 끝나면 시장을 보고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면서 대학의 낭만 같은 것은 느껴볼 수도 없었다. 동아리 활동도 물론 할 수가 없었다.

나는 서울로 진학할 기회를 원천적으로 차단당한 처지로 지방에서 대학을 다니고 있었고 우린 방학 때 한 번 얼굴 보는 것으로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곤 했다.

J는 몇 번의 연애경험이 있었는데 매번 학과가 비전이 없다거나 홀어머니에 외아들이거나 해서 J의 어머니가 완강히 반대하여 헤어지고 말았다.

대학 졸업 후 영문학과와는 전혀 관련이 없는 영업직을 전전하던 J는 내 결혼식에서 부케를 받았고 3년 후에 결혼을 했다. 친구의 신랑은 내가 소개해 주었는데 너무나 쉽게 결혼에 골인해 버린 것에 나도 좀 놀랐으나 우리 둘 다 독특한 세계관을 가진 것인지 당시에 난 그 결혼을 말리지 않았다. 그때 내가 뭘 안다고 남의 인생에 왈가왈부할 수 있었겠는가마는 아무튼 그랬었다.


서울에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내려온 친구는 말 그대로 신부수업이나 받아야 하는 처지였다. 눈 높은 엄마의 기준에 맞춘 신랑감을 찾아 선을 보러 다녀야 하는 신세였던 친구에게 마침 내가 대학 동아리에서 알고 지냈었던 동기를 소개해 주었다. 대학 졸업 후 소식을 단절하고 지냈었는데 병문안을 갔다가 우연히 대학병원의 복도에서 마주친 그 동기와 의례적인 인사 몇 마디를 주고받다가 "넌 결혼 안 해?"라고 내가 묻자 "아직... 여자도 없다!"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래? 그럼 내 친구 소개해줄까? 마침 지금 집에 내려와 있거든."이라고 운을 뗀 것이 인연이 되어 소개팅을 주선했다. 1주일 뒤 그 남자 동기에게서 전화가 왔다.

"OO야, 나 어떡해야 할지 모르겠다..."

"엥? 뭘?"

"J 씨가 결혼할 거 아니면 그만 만나자고 하는데..."

"뭐시라고라고? J가 정말로 그랬어? 니들 몇 번이나 봤다고?"

"그니까. 오늘 두 번째 만났는데 자기는 시간 허비하고 싶지 않다고 연애하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어쩌고 할 나이는 아니라면서 결혼할 건지 아닌지 알려달래."

"ㅎㅎㅎㅎㅎ 그래서 어쩔 건데?"

"잘 모르겠어..."

"내가 결혼하라고 하면 하려고? ㅋㅋㅋㅋ"

"나 심각하다. 진짜 어떡해야 할지..."

"놓치기 싫으니까 고민하는 거잖아. 내가 남자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만, 친구로서 지켜본 바로는 정말 좋은 애야. 현모양처감이야. 난 보증할 수 있어."

"그래도 너무 갑작스러워서..."

"내가 너를 잘 모르지만 J는 확실해. 잘 생각해 보고 결정해~"

나는 전화를 끊고 J와 통화했고 J의 생각은 확고했다. 시간 허비하며 고르고 골라봤자 거기서 거기라는... 시간이 지날수록 눈만 높아지고 나이만 먹게 될 것이라는... 옛날 사람들은 얼굴도 모르고 시집가서도 잘만 살았다는 식의 정말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에나 통할 것 같은 얘기를 했다.

난 그때 결혼 3년을 거의 채워가고 있었고 남편과는 6년 연애를 했으니 10년 동안 남편을 알고 지낸 셈이었다. 6년 연애를 했다고 해서 내가 남편을 잘 안다고 할 수 없었다. 결혼 전과 후는 다른 사람이었다. 내가 당시에 느꼈던 결혼생활에 대한 회의감 때문에 J의 말에 반박하지 않은 것이었으리라.

어차피 결혼을 하는 것이 목적이라면 친구의 말이 전혀 이상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소개해 준 동기를 가정사까지 알지는 못했지만 밖에서 보인 그의 대학생활 모습은 건전했고 사려 깊었다. 주사가 있는 것도 아니었고 쉽게 흥분하는 성격도 아니었으니 잰틀하고 직업도 의사인 그를 소개해 준 것이 어쩌면 친구로서 잘 한 일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들은 바로 양가에 인사를 드리고 3개월 후 결혼식을 올렸다.




J의 결혼생활은 행복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아니 그것은 너무나 완곡한 표현이고 나라면 견뎌내기 힘들었을 시집살이였다. 홀어머니가 남편처럼 의지했을 잘난 아들은 며느리에게 주기가 너무 아까웠나 보다.

그 남편은 아들 노릇만 열심히 했을 뿐 J에게는 철저히 남이었다. 나쁜 놈. 그럴 거면 왜 결혼을 한 건지 모르겠다. 어렵게 아이를 가졌고 그 아이가 자라는 것을 보며 견뎌낸 세월이었을까?

J의 하소연을 들을 때마다 나는 맞장구를 쳐주고 위로해 주었지만 마음은 편하지 않았다. J의 불행이 내 탓인 것만 같았다. 내가 그를 소개해주지 않았더라면 더 좋은 사람 만나서 사랑받으며 살 수 있었을 텐데... 오랫동안 그 생각은 나를 불편하게 했다. 크나큰 빚을 진 것 같았다. 그래서 함부로 중매를 서는 것이 아니라고 하는구나, 사람은 겉만 보고는 알 수가 없는데 내가 뭘 믿고 친구에게 소개를 한 것인지...


J는 나에게 아낌없이 주는 친구다. 같이 밥을 먹으면 절대로 돈을 못 내게 하고 오래전 자기 아버지의 장례식에서는 부의금을 받지도 않았고 작년에 내 아버지의 장례식에는 과하게 많은 부의금을 냈다. 내 딸들에게는 아낌없이 용돈을 주면서 자기 딸에게는 돈을 받지 말라고 시켜서 아이의 손에 돈을 쥐어주는 것도 얼마나 진땀을 빼야 했던지... 그것도 오래전의 일이다. 코로나 이후로 서로 얼굴을 못 보고 몇 년이 흐른 사이에 J의 딸도 벌써 대학생이 되었다.

세월이 많이 흘렀다. 마음고생을 많이 했을 J는 작년부터 여기저기 몸이 아프다고 한다. 지난가을에는 오랜만에 안부가 궁금해서 전화를 걸었더니 혼자서 여행 중이라고 했다. 혼자서 강원도까지 가서 펜션에서 머물고 혼자 산책을 하고...

친구가 그렇게까지 벗어나고 싶었던 것이 무엇이었는지 묻지 않았다. 우린 경치에 대해 이야기하고 홀가분한 기분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서로의 건강을 염려했다.

말하지 않아도 안다. 지금까지의 삶을 알기에 왜 떠났냐고 묻지 않았다. 한 번씩 그렇게라도 바람을 쏘이고 나면 답답한 일상에서 조금은 숨쉬기 편해질지도 모른다.


다음엔 J와 함께 여행을 떠나야겠다. 각자의 삶이 너무나 각박하고 바빠서 꿈도 꾸지 못했던 우리들만의 여행을 이제는 떠나도 좋지 않겠는가? 아이들이 다 컸으니 우린 이제 자유다.

우리가 각자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었던 것들로부터 이제는 자유로워져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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