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사람들은 "열심히 노력하겠습니다!"라는 말을 서슴없이 하는 것 같다. 특히 면접을 보거나 입사 지원서의 자기소개서에는 빠짐없이 등장하는 문장이 아니던가? 나 역시 매년 자기소개서를 쓸 때 마지막 문장으로는 꼭 넣어야만 직성이 풀린다. 저 한 문장이 없으면 내가 치열한 경쟁에서 뽑힐 가능성이 전혀 없기라도 하듯이... 그러나 실제로 저 문장의 유무가 서류 심사에서 어떤 영향력을 갖고 있는지는 확인해 본 일이 없다.
판에 박은 상투적인 저 표현과는 전혀 다르게도 난 스스로를 노력하는 인간이 아니라고 지금껏 생각해 왔다.
'노력'이라는 단어 속에는 뭔가 재미없는 일,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참아가며 해야 하는 듯한 뉘앙스가 있다.
또는 그다지 머리가 좋거나 재능이 있는 것은 아니라는 뜻을 바탕에 깔고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적어도 나는 그렇게 느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성실함'의 대명사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 결과적으로 '노력한다'와 '성실하다'는 동급의 지루하고 재미없는 표현으로 여겨진다. 어디까지나 나에게 그렇다는 말이다.
노력: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해 부지런히 애를 씀
열심히: 하는 일에 마음을 다해 힘써서
어렸을 때도 학창 시절에도 나는 무엇인가 내가 잘 못하는 것을 잘 해내기 위해 노력이라는 것을 해 본 적은 없다. 내가 잘하는 것, 남들보다 조금이라도 앞서가는 것이라면 칭찬받는 것에 신이 나서 좀 더 정성을 기울여 본 일은 있겠으나 그렇다고 열심히(마음을 다해서?) 하는 것도 아니고 부지런히 하는 것도 아닌, 한마디로 나태함의 표본이었다.
상위권의 성적에도 불구하고 더 노력하지 않는다며 혼이 났고 열심히 하지 않는다고 혼이 났었다. 내가 하고 싶은 미술이나 음악, 댄스 같은 것들은 잡기로 취급하고 공부에 방해되는 것으로 간주하는 선생님들 덕분에 아무것도 시도해 볼 수가 없었다.
대학을 절대 서울로 보낼 수 없다는 완고한 아버지 덕분에 일찌감치 의지가 꺾여 공부에 나의 모든 에너지를 쏟아붓지도 않았다. 서울로 가지 않고도 집을 떠날 수 있는 방편으로 기숙사에 들어가는 간호학과를 선택하고 적당히 열심히(?) 수험생의 도리를 했다.
그랬던 내가...
오늘의 글쓰기 주제인 '노력'이라는 단어를 보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나는 지금껏 살아오면서 열심히 노력해 본 일이 정말 아무것도 없을까?'
설마... 정말 그럴까?
아니다, 나에게도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있는 힘을 다해 부지런히 애를 쓴 기억이 있다.
학창 시절에서 세월이 흘러도 한참 흘러 40을 바라보는 나이에 우연히 벨리댄스를 알게 되었다.
초등학생인 두 딸들이 겨울방학 동안 구청에서 운영하는 청소년수련관에서 방송스피치 교실에 다니고 있었는데 어느 날은 수업이 끝날 무렵 아이들을 데리러 가게 되었다. 아직 수업이 덜 끝나서 1층 로비에서 이것저것 전시물들을 둘러보던 나의 귀에 들려온 난생처음 들어보는 음악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음악 소리가 흘러나오는 곳을 향해 2층으로 발걸음을 옮긴 나는 댄스 수업이 한창인 다목적실의 통유리문을 통해 훔쳐본 매력적인 춤동작과 이국적인 음악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겨버렸다.
수업이 끝난 아이들을 데리고 청소년수련관을 나오면서 취미 프로그램의 전단지를 챙겨 시간을 확인해 보고 내가 봤던 것이 벨리댄스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벨리댄스를 자세히 알아보기 위해 이틀 뒤 수업시간에 맞추어 수련관에 갔다. 그냥 구경하러 왔다는 나의 말에 회원들은 뒤에 서서 구경하지 말고 들어와서 따라 해 보라며 내 손을 잡아끌었다. 뒤에서는 강사의 동작이 잘 안 보이니 앞 줄에 서라는 친절까지 베푸는 회원들에 이끌려 엉겁결에 난생처음 보는(아마도 아라비안나이트 같은 영화에서나 얼핏 봤을...) 댄스를 따라 하게 되었다.
사람들은 어디서 배워온 것 아니냐며, 처음이라는 나의 말을 믿지 않았다.
학창 시절에 춤 잘 추는 친구들을 부러워했고 댄스부에 들어가고 싶은 열망은 있었으나 나의 시도가 좌절되었을 때 그냥 포기하고 잊고 살았던 그것. 내 안에 춤에 대한 열정이 살아있다는 것을 그때까지 몰랐었다.
살면서 처음으로 열심히 노력했다. 잘한다는 말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 잘하기 위해서, 강사처럼 멋진 동작이 나오지 않는 동작은 최대한 비슷하게 될 때까지...
수업이 끝나고도 강의실을 나가지 않고 남아서 춤을 추는 몇몇 마니아들이 있었다. 최소 1~2년씩 벨리댄스를 계속해오고 있다는 그들의 말에 놀랐다. 난 그런 춤을 배우는 곳이 있다는 것도 전혀 몰랐다. 내가 아는 댄스 학원이나 댄스 수업이라는 것은 스포츠댄스와 발레 정도였으니...
일주일에 두 번 있는 수업이 끝난 후에도 열정적인 회원들과 함께 남아서 2시간 정도 연습을 했다.
수업이 없는 날 중에도 하루는 강의실이 비어있는 시간을 우리의 고정 연습시간으로 잡아서 꼬박꼬박 나갔다. 강사에게 부탁하여 수업 준에 사용한 모든 음악 파일을 CD에 담아 틀어놓고 정말 열심히 땀을 흘려가며 춤을 췄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 인터넷으로 얻을 수 있는 정보도 거의 없었던 때라서 서점에서 벨리댄스에 관련된 책을 찾아보았다. 앉으나 서나 벨리댄스 생각뿐이었다. 두 번의 공연무대에 서고 보니 뿌듯한 성취감이 생겼고 더 잘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마침 피트니스와 함께 댄스열풍이 불고 건강 관련 TV 프로그램에서 벨리댄서들이 나오기 시작했다. 벨리의 기본 동작이나 작품들을 비디오로 만들어 출시하는 강사들이 유명세를 탔고 여러 협회들이 새로 만들어지면서 협회마다 각각 다른 특색 있는 벨리댄스의 계보를 만들어가고 있었다.
1년 동안 열심히 벨리댄스를 배우면서 벨리강사의 길에 도전해 볼까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전업주부로 살았던 내가 무언가 내 일을 시작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던 시점이었으나 강사과정에 등록하기 위해 당시로서 거금인 300만 원이 넘는 돈을 한꺼번에 내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웠다. '만약에 중도에 마음이 바뀌면 어쩌나, 취미로 하는 것과 전문가의 길은 분명 다를 텐데 내가 정말 잘 해낼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끊임없이 올라왔다.
그 시기에 공교육에서 초등영어교육을 강화하겠다는 정책들이 나오면서 영어회화전임강사를 각 학교에 배치하겠다고 하니 각 지역의 대학교에서 영어강사를 육성하는 프로그램들을 내놓기 시작했다.
두 가지 길을 놓고 고민하던 나는 벨리댄스는 취미로 하기로 하고 대학의 언어교육원에서 진행하는 TESOL 프로그램에 지원했다. 초기 투입 비용은 비슷하나 영어강사로 나서는 것이 당장의 커리어를 쌓는데 확실한 길로 보였기 때문이다. 토익시험과 유사한 시험으로 수강생을 뽑는 TESOL 과정에서 떨어질 경우 벨리댄스강사 과정에 등록하기로 하고 결과를 기다렸는데 합격통지를 받았다.
그런데 또 마침 집 근처의 초등학교에서 방과후교실 강사를 모집한다는 공고가 나왔길래 아무런 경력이나 자격증이 없었지만 (영문과 편입한 졸업장만 가지고) 영어강사에 지원해 보았다. 시험장에서 주어진 시간 안에 수업계획안을 짜고 수업시연과 면접을 했는데 불합격 통지를 받고는 그러려니 했다. 딸들에게 영어동화 읽어준 것과 몇 달 영어학습지 관리교사 한 것 말고는 현장 경험도 없었으니...
며칠 후 초등학교에서 연락이 왔다. 합격한 선생님이 다른 학교와 계약을 해버려서 차점자인 나에게 기회가 왔는데 계약 의사가 있느냐고 물었다. '당연히 해야죠!'라고 마음속으로 환호하면서 겉으로는 태연하게 "네, 하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
새벽에 출근하는 남편의 차를 타고 대학에 가서 오전에는 TESOL 수업을 받고 바로 방과후 수업을 하러 나가거나 벨리 수업을 받으러 다녔다. 방과후 수업을 위해 수업자료를 만들고 TESOL 과정을 따라가기 위해 과제를 하고 벨리댄스도 열심히 했던 그 해는 정말 내가 선택한 그 모든 과정들을 잘 해내기 위해 글자 그대로 땀 흘리며 노력하는 해였다.
그러나 그것은 시작이었을 뿐이고 그보다 더 치열하게 나를 달달 볶으며 40대를 살았다.
방과후 강사로 일하면서 교육대학원에 진학해서 중등영어교사 자격증을 취득했고, 강아지를 키우게 되면서 반려견 훈련사 자격증을 땄고, 한국어교원 양성 과정에 들어가 공부하고 자격증 시험에 합격하고, 초등 1, 2학년에게 방과후 영어수업을 금지하던 해에는 직업을 바꿔야 하는 위기감에 증권투자권유대행인 시험까지 보고 자격증을 취득했다. 간호사와 보건교사 자격증까지 있는데 왜 굳이 전문직 놔두고 그러느냐며 주변에선 이해불가의 시선을 보냈고 딸들도 엄마, 공부 중독증 아니냐며 제발 있는 거나 활용하고 공부 좀 그만하라고 난리였다.
생각해 볼수록 난 노력형 인간임이 분명하다. 무엇을 위한 노력이었는지는 글쎄...
지금도 노력 중이다. 12시를 넘기기 전에 이 글을 완성하려고 노력 중인데 글의 내용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다. (에라 모르겠다...)
앞으로는 노력 같은 건 때려치우고 마음의 여유를 갖고 살아야겠다고, 건강이나 챙겨야겠다고 생각하며 작년 하반기를 보냈건만 새해가 되자마자 글루틴을 시작하고 또 새로운 강좌를 등록해버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