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 선생님

by 엘 리브로

이틀에 한 번 꼴로 카톡 메시지창에 유투브 동영상이 올라온다.

짧게는 20분, 길게는 거의 한 시간에 가까운 영상들은 대부분 아름다운 풍경이나 꽃들의 사진 아니면 사람들이 정을 나누는 훈훈한 장면이거나 가슴 뭉클한 동물과 사람들 간의 교감을 보여준다. 사진 위에 겹쳐서 보여주는 장문의 글귀들이 때로는 감동적이기도 하고 때로는 식상하기도 하다. 문제는 영상의 배경 음악으로 계속 연주되는 곡의 레퍼토리인데... 올드 팝송이거나 클래식일 땐 영상을 끝까지 볼 때도 있고 듬성듬성 건너뛰며 보기도 하지만 트로트 메들리가 나올 때가 더 많아서 몇 초 듣다가 닫아버리기 일쑤다. 미스터 트롯을 한 때 열광하며 봤지만 대회 참가자들의 노래실력이나 퍼포먼스가 좋았던 것이지 소위 말하는 뽕짝 스타일은 정말 싫어한다.


선생님께서 공유해주신 영상들


카톡으로 동영상을 보내는 분은 바로 나의 고3 담임 선생님이시다.

선생님은 연세가 아흔을 바라보고 있지만 여전히 산행을 거뜬히 하고 계시며 최근에도 눈 덮인 겨울산에 올라 사진을 찍어 보내셨다.

나는 나이 드는 것이 다 같은 과정을 겪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해주고 계시는 선생님을 자주 생각하며 살고 있으면서도 전화로 안부도 묻지 않고 카톡 문자로만 아주 가끔 인사를 하는 나이롱 제자이다.

국어 선생님께 쓰는 문자에 문법적인 오류라도 있을까 봐 처음엔 신경이 쓰였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수험생이 아닐뿐더러 언어의 문법보다는 사회성, 의사소통 도구로서의 언어의 역할이 더 중요하지 않냐며...




고3 학급을 배정받았을 때 여기저기서 한숨이 새어 나왔지만 내가 들어간 3학년 9반은 그야말로 초상집 분위기였다. 학교에서 가장 무서운 (사실은 독한...?) 선생님으로 소문이 났고 제발 그 선생님의 반만은 안되길 빈다는 바로 그 호랑이 선생님의 반이었기 때문이다. 반대로 학부형들 사이에서는 고3이 되는 딸을 어떻게 해서든 그 반에 넣으려고 일부러 교무실로 찾아가는 치맛바람까지 불게 만드는 장본인이셨다. 누가 그런 엄마의 딸인지 한눈에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몇몇 친구들의 얼굴엔 환희에 찬 미소가 가득했다. 마치 원하는 대학의 합격 통지서는 이미 자신의 것이라도 된 듯했으니 말이다.


그때 선생님은 교사생활 30여 년 중에 내리 10년째 3학년 담임을 맡고 계셨는데 해마다 선생님 반이 입시 성적에서 1등을 했었다. 나의 모교는 미션스쿨이라서 타학교에 비해 상대적으로 입시 스트레스를 덜 주며 인성교육을 강조했던 학교였지만 담임은 달랐다. 분명 이름은 자율학습이건만 강제적으로 참여해야 했던 야간자율학습시간도 다른 반에 비해 우리 반은 더 엄격했다.

아침이고 저녁이고 상관없이 우리 반 교실 앞의 복도는 다른 학년이 지나갈 수가 없었다. 자습시간이면 선생님은 복도에 의자를 내놓고 앉아서 교실 안의 동정을 살폈고 지나다니는 다른 반 학생들이 숨소리조차 죽여야 할 정도로 근엄한 얼굴로 쳐다보았다. 혹시라도 복도에 진을 치고 있는 선생님의 존재를 깜박하거나 모르고 친구들과 속닥거리며 복도를 걸었다가는 바로 불러 세워져서 몇 반 누구인지 말하고 훈계를 듣고 눈물 뚝뚝 흘리는 장면들이 연출됐다.

3학년 담임 선생님들이 돌아가면서 야간 자율학습 지도를 했지만 우리 반 선생님은 하루도 쉬지 않고 교실을 지키셨다. 공식적으로 일요일에는 격주로 자율학습을 쉴 수 있도록 하고 원하는 학생들만 학교에서 공부를 하게 되어있었으나 우리 반은 명절연휴와 소풍날, 운동회날을 제외하고는 무조건 등교해야만 했다.


퇴근 후에도 선생님은 우리들을 감시하고 계셨다. 밤 12시에 라디오 교육방송에서 하는 국어강좌를 잘 듣고 있는지 불시에 전화를 걸어 확인하셨다.

우리 반이 그 해 입시에서 1등을 했는지는 기억이 안 난다. 기억에 없는 걸 보면 아마 아니었을 것이다. 우린 그냥 쿨쿨 자다가 선생님의 전화를 받았고 선생님은 아침에 교실에서 코피를 쏟으셨지만 우리들 중 아무도 학교에서 코피가 난 친구는 없었다.

매월 모의고사가 끝나면 자습시간에 한 명씩 상담실로 불려 나가 지난번 모의고사 목표 점수와 비교해서 성적이 떨어졌을 경우에는 매로 손바닥을 맞았다. 그리고 다음번 목표점수를 말하고 앞으로의 학습계획이나 희망 학과 등에 대해 선생님과 얘기를 나눴다. 한 명씩 조용히 나가서 들어올 때는 거의가 훌쩍거리고 있었다. 성적이 약간이라도 오른 친구들은 덤덤한 표정으로 들어왔지만 마음은 무거워 보였다.


어느 날 한 친구가 울면서 하소연을 했다. 시골에서 올라와 자취생활을 하던 그 친구는 대중목욕탕에 갈 시간을 달라는 것이었다. 아파트에서 살고 있었던 나는 생각해 보지도 못한 일이었으나 단독주택의 방 한 칸을 얻어 자취를 하던 몇몇 친구들은 "맞아요, 맞아"를 연발하며 불만을 터뜨렸었다. 그러나 선생님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으셨다. "지금 일 분 일 초가 아까운 마당에 대중탕에 가겠다니... 씻는 건 대충 해도 된다. 마음만 먹으면 접싯물에도 씻을 수가 있다."라는 황당한 선생님의 답변이 나는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전 세계를 휩쓴 코로나19 팬데믹이 있기 전인 2019년 봄,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의 졸업 30주년 홈커밍 행사가 있었다. 그 행사의 준비를 위해 행사 1년 전쯤부터 몇몇 동창생들은 연락을 주고받기 시작했고 졸업 후 각자의 삶을 사는데만 바빠 잊고 지냈던 서로의 안부를 확인했다. 자연스럽게 담임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고 힘들었던 수험생 시절의 장면 속에서 각자 기억하고 있는 에피소드를 꺼냈다.

그러나 모임에 나왔던 동창들은 아무도 '접싯물의 일화'를 기억하지 못했다. 내가 이상한 것인가?

하긴 수업 시간 중에 오고 갔던, 수업과는 관련이 없는, 사소한 대화를 나는 곧잘 기억했는데 친구들은 자신이 몇 학년 때 몇 반이었는지도 기억을 못 하고 담임 선생님의 성함조차 생각이 안 나서 무슨 과목 선생님으로 말하는 경우도 있었다.


어떤 친구는 절대 잊을 수 없는 고마운 은사님으로 기억했고 어떤 친구는 선생님 때문에 평생 트라우마로 갖고 있었던 사건을 말하기도 했다. 나는 고3 시기를 내 학창 시절 중 정서적으로 가장 안정되었던 기간으로 기억한다. 십 대의 마지막 해였고 질풍노도의 막이 내리고 대입학력고사라는 목표만을 보고 살았던 1988년.


3학년 반배정이 되고 난 직후의 긴장감은 금세 사라져 버렸고 우리 반 친구들은 그 무섭다는 선생님, 선후배들 뿐만 아니라 학교 전체의 모든 선생님들 사이에서도 알아주는 대쪽 같은 성격의 선생님을 전혀 무서워하지 않는 슈퍼 울트라짱 하룻강아지들이었다. 그 당시 1년 내내 인상을 찌푸리고 계셨던 선생님을 우린 성격이 괴팍해서(?)라고만 생각했었는데 30년이 지나서야 선생님을 통해 들은 이야기는 그때와는 다르게 와닿았다.

선생님은 진심으로 우리의 미래를 고민하셨고 한 명이라도 더 4년제 대학에 보내기 위해 건강을 해쳐가며 열성을 다해 지도했지만 우린 선배들과 달리 잘 따라주지 않았다. 거기다 우리와 동갑인 막내딸까지 자꾸만 선생님에게 반항하던 시기였었다고 한다.


홈커밍 행사 때 나오신 선생님은 참석한 우리 반 친구들에게 책을 한 권씩 선물로 주셨다. 선생님의 등산 이야기가 담긴 기행문을 책으로 출간하셨고 3권째 집필 중이시라고 했다.

우리들은 모두 탄성을 질렀다. "와아, 선생님! 저희는 벌써 글자 보는 것도 힘들어서 책도 잘 안 읽어요. 정말 대단하셔요!" 선생님의 이야기는 더욱 신기에 가까웠다. 전국의 이름난 산은 안 가본 데가 없고 중국도 오로지 등산을 위해서 3번이나 다녀오셨다고 했다. 외국 여행을 가실 때마다 그 지역의 산에 오르셨다고 한다.


나는 고3 당시 늘 무릎이 안 좋으시다며 손바닥으로 무릎을 자주 문지르거나 난로가에 다리를 가까이하고 계셨던 선생님이 생각나 지금은 괜찮으시냐고 여쭸다. 선생님은 그때 다리며 온몸이 다 아프셨고(몇 년째 쉬지도 못하고 매일 아침 7시부터 밤 10시까지 학교에서 3학년들과 씨름하던 삶이었니 그럴만했다) 우리 반을 끝으로 담임을 맡지 않으셨다고 했다.




교사생활 중 가장 드세고 말을 안 들었다는 우리 반을 끝으로 3학년 수업을 맡지도 않고 담임을 맡지도 않으신 선생님은 시간적인 여유가 생기자 등산을 시작하셨다고 했다. 그때부터 이어온 등산 덕분에 건강을 되찾았고 곧 아흔이 되는 연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산행을 하시며 글을 읽고 책을 쓰시는 선생님.

동창들 중 연락을 계속 주고받는 친구들은 늘 "우리 선생님처럼 나이 들어야 하는데... 선생님처럼 꾸준히 운동해야 되는데..."라고 말로만 읊조리고 있다.

"선생님이랑 등산 한 번 갈까?"라고 말한 지가 벌써 몇 년인지 모르겠다. 코로나를 핑계로 만나지 못했으나 이제는 정말 선생님을 찾아뵙고 삶의 지혜를 전수받아야겠다.

나의 부모님, 시어머님이 돌아가셨고 친구들도 상황이 비슷하다 보니 왕성한 활동력을 보여주시는 선생님이 그저 존경스러울 뿐이다.

아직은 골골한 50대 초반의 제자들보다 훨씬 튼튼한 다리를 유지하고 계시는 선생님.

친구 한 명은 홈커밍 이후로 자극을 받아 등산을 시작했고 주 1회 등산을 몇 년째 계속해오고 있다고 한다. 난 딱 두 번 그 친구와 무등산에 올랐는데 벌써 3년 전 일이 되고 말았다.

허리가 늘 아팠던 친구인데 지금은 괜찮아졌는지 물어봐야겠다.


선생님께서 보내주신 사진: 지난 12월의 산행


선생님의 건강비결은 등산, 그리고 읽고 쓰는 삶일 것이다.

카톡으로 유투브 영상을 공유하시는 선생님은 손주들에게 멋쟁이 할아버지 소리를 듣겠지. 젊은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해 스마트폰의 사용법을 열심히 익히시는 노력 또한 벌써부터 새로운 도전 앞에서 나이를 핑계로 머뭇거리는 우리들이 배워야 할 점이다.

문자를 받고 보내는 것마저 잊어버리신 시아버님을 생각해보면 퇴직 후 활동을 하지 않으셨고 갈수록 누워만 계시려는 아버님과 등산을 꾸준히 하신 선생님과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그나저나 난 등산을 언제 시작하나...?

집 근처에 산이 없다 보니 큰맘 먹고 차를 끌고 멀리 나가야 한다. 혼자서 멀리 가는 것도 얼른 내키지 않는다.

이럴 때 또 담임 선생님의 그 시절 단골멘트가 생생하게 귓가에 울린다.

"옛말에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고 했다."

그래, 핑계 대지 말고 방법을 찾아야겠다!


앞으로도 오래도록 건강하시길 바라며...

선생님과의 만남을 위해 당장 친구들에게 연락을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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