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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pr 19. 2023

“보랏빛 등나무 꽃이 피는 교정”

-제 6화 추억소환 고등학교 생활 1편-

따라라 란~~딴 따~라 란따다아~

(소녀의 기도에 맞춘 무용시간 몸사위)


보랏빛 등나무 꽃이 피는 교정.

아름드리 몇 배가 되고 초록잎 무성한  나무 두 그루.
그리고 파란 천가방.
   

모교를 떠올릴 때마다 생각나는 것들이다.     


450045번. 멋진 수험표를 들고 고등학교 응시시험을 쳤다. 평준화가 된 탓에 학교 배정은 추첨기 탓이었다. 다행히 너무도 바라던 00 여고에 입학을 했다. 시골 중학교에서 시내로 오니 모든 게 새로웠다. 할머니가 해주신 따신 밥을 먹고 자란 나는 이제부터 자취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1학년 교실은 젤 왼쪽 동에 있었다. 쓰레기 소각장이 잘 보이는 곳이었다. 한 번은 수업 중에 누가 큰 소리로 외쳤다.
 

“저기 바바리맨 나타났다”    

 

창 밖을 보니, 베이지 코트를 입고, 일명 바바리맨이 쓰레기 소각장 근처에 나타난 것이다. 내가 봤을 때는 옷을 여민 상태여서 중요 부분은 보지 못했다. 모두들 기겁을 했고, 그쪽으로 난 길 쪽으로 종종 나타난다고 친구들이 이야기했다.
 

아버지가 한 달에 생활비로 3만 원을 주셨다. 그러면 제일 먼저 사는 것은 초코파이였다. 식사나 간식으로 하나씩 먹기가 좋았기 때문에. 가장 힘든 일은 도시락 싸는 것이었다.


친구들과 같이 매일 밥을 먹고 싶었는데, 종종 쌀도 없고 반찬도 없었다. 한 번은 도시락으로 밥솥에 밥이 쉰 지도 모르고 싸간 적이 있다. 순간 약간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으나 점심까지 들고 있었으니. 도시락 뚜껑을 여니 쉰 냄새가 확 올라왔다. 반찬은 늘 김치 한 가지였다. 갑자기 같이 밥 먹던 친구가,
 

“너랑 같이 밥 먹기 싫어”     


거의 굶고 다닌 기억이 많다. 학교에서 우유 급식했던 친구들을 보면 정말 부러웠다. 나도 저 흰 우유 마음껏 먹어 봤으면.     


1학년 신학기 때의 일이다.

학교에 학부모 상담을 위해 J친구 엄마가 학교에 찾아왔었다. 왔다가 친구를 만나고 갈려고 화단에 서성이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 세련되고 도시적인 외모였다. 흡사 클레오파트라 머리에 파마를 입힌 헤어였다.


저 친구는 저런 엄마가 있어서 정말 좋겠다. 당시 그 친구는 마이마이 카세트를 들고 다니며 최신가요 테이프를 넣어서 이어폰에 꽂고 야간 자율 학습을 했었다. 참으로 부러웠던 단상이다.



중학교 때는 전교 2등까지 하며 공부 잘했던 내 성적이 점점 떨어지기 시작했다. 아무도 관심도 없을뿐더러 잘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하루하루 굶지 않고 밥을 먹고 다니는 것이 내 관심사였으니깐.     


2학년이 되었다. 이과신청을 했다. 잘하는 과목은 국어였지만, 좋아하는 과목은 수학과 과학이었다.


학교에서 지역학교탐방 글쓰기 대회가 있었다. 나는 반에서 눈에 띄는 아이는 아니었다. 사람들이 내게 관심을 주지 않길 바라는 조용한 아이였다. 조회시간에 선생님께서    


“시조나 시 쓰기 대회가 있는데, 나갈 사람?”


아무도 관심이 없었다. 그때 한 친구가 책을 좋아하는 나를 추천하여 당시 뒷동 도서관에서 있었던 대회에서 할머니를 주제로 쓴 2연짜리 시조에서 장려상을 받았다.
 

3학년이 되었다. 대학에 가고 싶은 생각이 없어졌다. 그저 학교나 마치고 취업이나 하고 싶었다. 대학을 안 가겠다고 하는 대여섯 명을 당시 한문교사였던 상담선생님께서 따로 불렀다. 모든 게 귀찮게 느껴졌다.

     


자취방에 가니, 부엌 아닌 선반에 종이 가방이 있었다. 가방을 열어보니 퍼프소매에 흰 반팔블라우스와 병아리색 A라인 스커트가 들어 있었다. 언니가 왔다 간 것이다. 15살 넘게 차이나는 언니가 자취방에 와서 옷과 밑반찬을 두고 갔었다.
 

부엌이 있었으면 하는 생각에 종이 박스를 모아다가, 방 안에다 칸을 만들어 칸막이 놀이를 했다. 여기는 부엌, 신발장 이렇게 적어 놓고 안 그래도 작은 방을 나눴었다. 연탄아궁이에 가끔 뭔가를 올리기도 했으나 좁고 자취하는 사람이 5명이나 있어서, 대문 입구방이었던 나는 모든 사람들이 다 보는 음식을 하는 게 싫었다.


가끔 자취방을 구경하고 싶다 하는 친구가 있었다. 야자 하기 전 저녁시간에,


“너네 방에 가서 라면 끓여 먹자 “


그러고 난 뒤 친구들이 고마움의 표시로 시내에 있는 '부배'라는 분식점을 데리고 갔다.


거기서 나는 신세계를 경험했다. 쫄면을 처음으로 맛본 것이다. 아주 가는 면으로 만든 새콤달콤하고 쫄깃한 맛이란.


그렇게 시내에 발을 디뎌 본 이후, 우리(동생도)는 밀밭을 알게 되었다. 최고의 경양식 돈가스 집이었다.   

계단을 반쯤 타고 내려가면 벽면에 밀밭이 초록과 연노랑으로 펼쳐져 있다. 큰 액자에 걸린 것으로 기억하는데, 지금까지 밀밭은 나를 그 시절로 데려가는 맛의 밀어가 되었다. 가성비가 정말 좋은 최고의 식당이었다.         



당시 매점 얘기를 안 할 수가 없다. 처음에는 1학년 동이 있는 곳에 있었다. (후에는 생활관이 최신식 시설로 들어오면서 옮겼지만.) S라는 생크림파이가 새롭게 나왔는데, 아이들이 쉬는 시간만 되면 달리기 선수가 되어 매점에 갔다. 입안에서 이름처럼 사르르 녹는 것이 그 달콤함 또한 잊히지 않는다.


성적이 떨어지니 점점 소심한 아이로 변해갔다. 괴한이 자취방에 쳐들어 왔다. 젊은 국어선생님께서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셨다. 운구차가 운동장에 큰 동그라미를 그리며 사라졌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공장에 취업을 했다. 인문계고등학교 나왔다고 부품 만드는 첫 단계의 일을 가르쳐 주었다. 공부를 안 한 것을 절절히 후회했다.


카키색 남방을 입고 버스를 타고 N강 다리를 건너고 있었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창밖을 내다보니 떠내려온 시신을 수습하고 있었다.


도착하자마자 버스에서 내려 이발소로 갔다.


"아저씨 제 머리 빡빡 밀어주세요"


"아니 무슨 일 있나. 예쁜 아가씨가"


"아니요"


"혹시 대학 동아리에서 연극을 맡았어요?"


"아니요"


두 번째 '아니요'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바리깡이 내 모든 머리카락을 바닥에 떨어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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