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Apr 15. 2023

“자 교장선생님께 하고 싶은 말을 적어서 내세요”

제 5화 추억소환-선생님 편

좋은 일보다 우리는 아팠던 일들을 더 오래 기억한다.

가장 행복했던 중학교 학창 시절에 이 일은

아직도 아킬레스건처럼 내 마음에 걸려 있다.


눈이 부리부리하고, 떡 벌어진 어깨, 큰 키의 H 교장선생님.
당시 손자 같은 미취학 아들이 있었다. 소문에 의하면 조강지처와 헤어진 후

지금의 여자와 재혼했다는 것이다. 내 눈에는 가무잡잡하고 호리호리한 큰 키에

눈매가 사나워 앙칼진 30대로 보였다.
 

내가 다니던 중학교는 면소재지에 있었다.
관내 3개 정도의 초등학교 학생들이 모인 곳이다.

남자반, 남녀공학반, 여자반 이렇게 3반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약 4킬로, 10리에 해당되는 거리를 걸어 다녔다.
더 멀리 분교졸업 후 오는 아이들도 있어서 모르는 친구들도 많이 알게 되었다.


H 교장선생님은 부임 후 도서관에 학생들을 모아 놓고 이런 말씀을 자주 하셨다.
 

“선남선녀들만 따로 100명씩 뽑아서 정기가 좋은 산에서 모여 수련을 하고, 짝짓기를 한다.”
 

대체 무슨 소리를 하시는 건지. 단군 신화도 아니고 정기 좋은 산에서 쑥이나 마늘을 먹고,

짝을 짓고 자식을 낳으면, 좋은 유전자가 나온다는 얘기인가.
 
또 부임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해괴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여학생들이 교장실에 한 명씩 불려 갔다가 나오곤 했던 것이다.

그중에 나도 포함되어 있었다.
 

“월경을 하는가? 생리 후 그 생리대를 말려서 햇빛에 비춰보면 색깔이 나와.
 색깔이 맑고 붉을수록 건강하다는 것이고, 색깔이 탁하면 안 좋은 거지”
 

이런 얘기를 학생들 1명씩 (자기 기호에 따라?) 교장실에 불러서 할 얘기인 건가.     

교실 복도를 걸어가고 있는데, 결혼 안 한 음악선생님께서 교장실을 나오면서 눈물을 글썽이는 것을 본 적이 있다.
다들 쉬쉬 하면서 우리들은 ‘변태’ 교장이라고 얘기하고 다녔다.
 

한 번은 중3이었던 우리 교실에 들어와서, 설문 조사를 한다고 하셨다.
우리는 영문도 모른 채 종이를 받아 들었다.
 

“자 교장선생님께 하고 싶은 말을 적어서 내세요”     


다들, 열심히 적고 있었다. 나는 쓸 내용이 없어서 창밖만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다.
‘솔직하게 적어 내야지’ ‘뭘 더 바랄 게 있는가’
나는 종이에 한 단어만 크게 적어서 제출했다.


“징그럽다”     


그 일이 있은 후에도 여학생만 불려 가는 일이 계속되었고, 나는 내가 적은 일마저도 잊고 있었다.
쉬는 시간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갑자기 큰 덩치의 H 교장 선생님께서 우리 교실로 오셨다.
내 이름을 부르며, 나오라고 하셨다. 나는 앞쪽 출입문 교단 옆으로 나갔다.
 

“너 뭐라고 썼어?”


 “... ... .”     


순간 큰 덩치의 H 교장선생님이 너무 무섭게 느껴졌다. 재차 뭐라고 썼는지 물으셨고,
나는 알아들을 만한 소리로 대답했다.    

 

“징그럽다”     


순간, 그 큰 손이 내 왼쪽 귀와 뺨을 후려갈기면서 때리는 바람에 나는 몸의 중심을 잃고,
교실 출입문 옆 구석에 내동댕이 치듯 처박혔다. 너무 아파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이 일로 인해, 참을 수가 없었던 나는 담임선생님께 얘기를 했다. 그리고 며칠 뒤 우리 동네 J이장님께서 나를 불러서, 학교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셨다. 있는 그대로 이야기했더니, 들은 게 다 사실이었다고 하시면서 학부모들이 가만있지 않을 거라고 하셨다.
 

결국, 정년퇴임을 앞둔 H교장은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학교에서 쫓겨났다.
수업 중이었는데, 어떤 친구가 창밖을 보면서 말했다.     


“저기 변태 간다, 간다”
 

어느 순간, 왼쪽 귀가 오른쪽 보다 청력이 좋지 않음을 알게 되었다.

그때마다 H교장이 때린 일이 생각난다. 무엇에 씐 사람처럼,

16살 학생을 그토록 센 악력으로 교실 바닥에 내동댕이 쳐야 했단 말인가.


아직도 잊을 수 없는 그 이름.

이전 04화 "안 그래요? 엄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