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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pr 13. 2023

“선생님, 제 동생이 지갑을 안 가지고 갔어요.”

-제 3화 추억소환 동생편-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사람이, 한 사람의 인생에 몇 명이나 될까.
보통 자녀들을 보고 그런 말을 한다. 자녀 다음으로, 내게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이는 동생이다.
 

초등학생 때, 학교에 갈 때면 집 앞까지 따라나서서,
 

“응가(언니) 학교 가?”
 “학교 갔다가 빨리 와”
 “응가 학교 가지 마라”     


요런, 귀여운 소리를 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짙은 초록 나팔바지를 땅에 끌리다시피
 (최신, 복고풍 바지 느낌) 입고, 삐딱하게 서서, 친구네 대봉감나무 밑에서 하던 얘기가 귓가에 맴돈다.     

친구들과 놀려고 하면 꼭 따라나서려고 하던 동생. 친구들은 둘 다 동생이 없었다.
 나만 동생을 따돌려야 같이 놀 수 있었던 거다. 그런 날은 동생을 시골집 뒤 담장으로 데리고 갔다. 원래 집채와 담벼락 사이 뒷공간이 비어 있었다.
 

“응가 어디 잠시 갔다 올 테니, 여기서 숨바꼭질하듯이 벽에 눈감고,
 얼굴 기대고 열만 세고 있어라. 눈뜨고 따라오면 순사가 잡아간다. 금방 올게.”
 

그렇게 동생을 따돌리고, 우리는 온 동네 홍시를 주워 먹으러 다니거나, 쑥을 캐고, 멱을 감으며 놀았다. (아마 지금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된 동생은 참으로 할 말이 많으리라.)     

     

 초등학교 마치고 돌아오니, 할머니께서 찬장에 홍시 있으니 먹으라고 하셨다.
홍시를 너무 좋아하기도 했고, 배가 고픈 터라 찬장 문을 열었다.

전혀 먹을 것이라곤 보이지 않았다. 부엌에 있던 동생에게,     


“할머니가 찬장에 홍시 먹으라 하는데, 못 봤니?”
 

“엉 그거 내가 안방 선반(당시, 안방에 장롱 위 물건을 올리는 공간)에 올려놨어.
 찾아 먹어.”
 

나는 동생 말만 믿고, 선반에 올라가 먼지를 뒤집어쓰고 홍시를 찾았다.

끝내 없었다.
      

“홍시 없는데, 네가 먹었어?”     


“응, 내가 배고파 언니 거까지 다 먹었어.”
 

먹었다고 바로 말했으면, 그냥 포기하고 선반에 올라가서 먼지까지 뒤집어쓰고 찾지는 않았을 텐데.
대체 동생은 왜 그랬을까. 동생을 볼 때마다 지금도 왜 그랬냐고 가끔 묻는다.
최근, 동생에게 들은 얘기다.
 

“먹었다고 하면 언니에게 혼날까 봐. 거짓말했어.
 그리고 처음부터 먹으려고 했던 건 아니고.
 보니, 살짝 금이 갔길래, 홅아 먹었는데, 틈이 조금 벌어져 다시 한번 더 빨아먹고
 그러다 보니 내가 다 먹었더라.”


           

 동생의 수학여행 날이 다가왔다. 당시 다니던 H 교회에서 어떤 사업가 G 씨가 나에게 한 달에 2만 원씩 후원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마침 동생의 수학여행 경비가 없었는데, 그거라도 받으면 줄 수 있을 거 같아서 마음이 놓였다. 그래서 통장을 만들어 놓고, 거짓말 좀 보태서 돈이 들어올까 싶어서 수십 번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마음속으로 이번에 한 번만이라도 2만 원이 들어왔으면 정말 착하게 살겠다는 생각을 했다.
 

동생의 수학여행 버스는 출발했다. 나는 동생이 용돈 하나 없이 가서, 종일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마침, 여고 서무실에 중학교 동창이 일하고 있다는 생각이 불현듯 떠올랐다.
 

“S야 잘 지냈니, 동생 수학여행 갔는데, 급한 일이 있어서 그런데, 숙소 연락처 좀 알 수 없을까. 좀 부탁한다.”     


“응 설악산 숙소 전화번호 가르쳐 줄게, 전화 한번 해봐”


저녁이 되어 숙소에 수학여행 버스가 도착할 시간에 전화했다.
 

“저기 OO여고, 오늘 저녁에 들어왔나요?”
 

“수학여행 간 OO여고, G 언니인데, 급한 일이 있어서, 담임 선생님과 통화를 좀 할 수 있을까요?”     


잠시 기다리니, 담임 선생님께서 전화를 받으셨다.     


“선생님 저 G 언니인데요, 제 동생이 지갑을 안 가지고 갔습니다.
 돈을 조금 빌려주시면 다녀오면 드리겠습니다.”     


이후 동생이 수학여행 다녀올 동안 편안히 기다렸다.

이윽고, 동생이 돌아오자마자,     


“선생님께 지갑을 안 들고 갔다고 전화했는데, 용돈을 좀 빌려주셨어?”     


선생님께서 버스에 타시더니, 갑자기 큰소리로 친구들 다 듣게,
 (버스에 안내원이 앉는 앞자리 한가운데 의자에 앉아 뒤돌아보시며)
 

“야, G, 너 지갑 안 들고 왔다며?

 돈 필요하면 말해라”    

 

동생은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었다고. 모든 친구들이 다 듣게 말해서 얼마나
부끄러웠는지 모른다고.     



 G야, 네가 감기가 심하게 걸려서 코맹맹이 소리로, 어제도 통화했는데,
 

“너무 많이 사랑한다. 동생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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