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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pr 17. 2023

"안 그래요? 엄마”

제 4화 추억소환-어머니 편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가을 곁에 서 있던 여자.

그것이 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본 엄마 모습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때였다. 1학년 학생이 찾아왔다,
 

“저기 혹시...”     


“누군데?”


 “엄마가 같은 학교에 사촌이 있다고 해서.......”    

 

그 아이가 내 이종 사촌이며, 외삼촌이 G면에 살아 계신 걸 알았다.

이종사촌 S의 소개로 머지않아 외갓집에 놀러 갔다.
 

마당이 있는, 제법 멋진 기와집이었다. 사는 것도 괜찮아 보였다. 비닐하우스에 호박과 오이를 재배하는 걸로 보아. 가장 놀란 것은 외할머니의 생존이었다.


아주 작은 키에 왜소한 몸을 가진 외할머니. 외할머니는 나를 보자마자, 거친 손으로 쓰다듬으며 우신 것 같다.


외숙모는 굉장히 미인이셨다. 시골에 사시는 데도 얼굴에 윤이 나고(작은 기미마저도 예쁘게 빛나 보이는), 영화에도 나올 법한 사랑스러운 여자였다. 외삼촌이 나를 닮았으리라 생각했는데, 이마가 넓고 호탕한 웃음을 지닌 유쾌한 남자였다.


2남 2녀인 외삼촌은 첫째는 고등학교 교사, 둘째는 S대 졸업 후 심리학전공하기 위해 외국에 나갔다 했고, 셋째 딸은 둘째 동문과 결혼해서 D도시에 살고 있다고 했다. 막내는 나랑 같은 학교 1학년 여고생이었다.


외가의 존재가 참으로 놀라웠다. 외숙모님은 내가 학교에 잘 다니는지 중학교 근처에 와서 물어보았다고 한다. 외할머니는 막내딸이 서른을 못 넘기고 죽자, 가슴에 한이 맺힌 듯이 보였다. 처음 듣는 이모얘기도 있었다. 엄마 위로 2명의 이모가 U면에 사신다고 전해 들었다. 외가는 다 키가 매우 작았던 것 같다.     


나는 엄마를 직접 본 기억이 없다. 가장 많이 전해 들은 사람은 할머니. 난데없이,
 

“니 애미년은 너하고 같이 죽으려고, 무릎밑에 농약을 숨기고 있는 걸 내가 뺐었다.”


 “딸년만 둘이 쏙 내떠서(?) 낳고...”

 (귀가 아프게 들었다. 첫아들의 손자를 2명이나 잃고 손자 강박증이 있으셨던 걸까)


 “지 애미년을 닮아서 하는 짓이...”
 

“니 들을 내한테 맡기고 촌에 살기 싫어서, 장터에서 국밥을 팔고...”     



대체 우리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던 걸까. 죽마고우 G는 자기 엄마에게 전해 들은 얘기를 해줬다.(비교적 최근에 들은 얘기다)
 

“너네 엄마가 시집와서 빨래터에 나오면, 동네 사람들이 구경하러 갔대. 너무 예뻐서”
 

“우리 엄마가 네가 엄마를 정말 많이 닮았다더라”
 

(평소 내가 예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는데. 엄마를 제일 많이 닮았다니.)
 

외숙모님께 엄마 사진이 있냐고 물었다. 낡은 사진첩을 들고 오셨다. 코스모스가 핀 길가에서 민소매 원피스를 입고 서 있었다. 얼굴표정은 자세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막내딸이었으며, 외할머니가 정말 아끼었다고 한다. 늘그막에 낳았기 때문에.     



첫아이를 낳고 엄마에 대해 궁금해졌다. 내가 5살 때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얘기만 전해 들었었다. 출생신고를 하러 가서 필요한 서류를 떼면서, 엄마의 기록을 찾았다. 길에서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는 것이다.


여러 가지 궁금증이 생기기 시작했다. 물어볼 작은아버지, 고모, 아버지 많은 사람들이 있었지만 물어보지 못했다. 언니에게 물어보았다. 자기도 B시 공장에 다니고 있어서 자세히 기억하지는 못하지만,     


“전깃줄 만드는 공장에 다녔는데, 퇴근하고 내리면서... 운전기사가 내린 줄 알고 출발했는데... “

“미처 내리지 못한 상태로 출발하면서 버스 바퀴에 깔려 들어가서... 병원으로 옮겼는데...”     


아버지에게 물어보았다.      


“건널목 건너다가 택시에 받쳐서, 병원에 갔는데 죽었다.”     


누구의 말이 맞는지 분명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내가 기억하는 순간부터 할머니품에 있었다는 것이었다. 할머니가 엄마를 싫어한다는 것이었고. 엄마라는 단어를 입 밖으로 내뱉는 것을 잊었고. 내 인생에 엄마라는 단어는 사라진 어느 날, 외사촌이 교실로 찾아온 것이었다.     


엄마를 원망한 적이 있었다. 나에게 엄마라는 기억도 남기지 않은 채 그렇게 일찍 생을 마감해야 했는지. 왜 다른 사람도 아닌 아버지를 사랑한 것인지. 끝까지 그렇게 사랑하셨던 아버지만이라도 책임지고 가셨으면 좋았을 것을 이렇게 말이다. 하지만 이내 그때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나는 알 수도 없으며, 이해할 수도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엄마는 그렇게 최선의 삶을 살며 몸부림치다 가셨는지도 모른다. 그나저나 이렇게 예쁜 친동생이 있지 않은가.



나는 엄마의 공동묘지가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 자주 가서 꽃도 바꾸어 드리고, 직장 일이나 사는 일이 잘 안 풀리면 곁에 서서 조용히 울다 온다.


엄마의 비석 뒤를 쳐다본다. 낳지도 않은 아들 이름과 동생과 내 이름이 적혀있다.   

  

“낳지도 않은 아들은 데리고 가시지나 말지. 그 아들이라도 살아 있었으면...”
 “혹시 알아요. 아버지가 저렇게 바깥으로 나돌지는 않았을지.”
 “안 그래요?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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