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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pr 11. 2023

“아버지, 말씀해 보세요.”

제 2화 추억소환-아버지편


일하고 있는데, 혼자 계시던, 아버지 도우미로부터 연락이 왔다.
아버지가 설사를 너무 해서, 병원에 모시고 가야 한다는 것이다.
 

마스크를 쓰고, 아버지가 계시던, 작은 임대 아파트에 도착했다.

늘 나던 노인 냄새가 훅, 코끝을 스쳐 지났다.
 

“아버지가 계속 설사해서. 금방 씻기고 났는데 또... ... .”
 

도우미분이 말끝을 흐렸다. 짜증이 났다. 동생보다 잘 해드린 것도 없고, 잘하지 못했는데도.
기력이 없이 마스크 끼고 웅크리고 누워있는 모습이 불쌍해 보이지 않는다.
속으로 ‘이제 그만큼 했으면 됐어요. 돌아가실 때도 됐어요’
도우미분이 갈려고 하는데, 다시 아버지는 누운 채로 설사했다. 도우미분은 내가 씻기기를 바랐는지. 내가 머뭇거리는 사이, 도우미분이 겨우 부축해서 다시 화장실에 가서 씻기셨다.


 문득, 며칠 전, 동생과 했던 말이 생각이 났고, 끝내 듣지 못한 한마디 말이 생각이 났다.
 감정이 사그라들지 않았고, 도우미가 계신지도 잊은 채, 속사포로 말이 쏟아져 나왔다.

     

“그래, 아버지, 말씀해 보세요. 왜 그러셨어요, 왜 우리 둘을 시골에 두고,

그렇게 돌아다니셨어요.” “대체 왜 그랬냐구요”
 

“니 누구니. 니는 아버지 왔어요. 하고 말도 안하고... ... .”    

 

생뚱맞은 소리를 하셨다. 그러는 사이 도우미분이 민망했는지 슬그머니 간다는 인사를 하고 가셨다.
 

다음날 동생과 지인이 근무하는 요양병원으로 모시고 가서 입원시켜드렸다.     

아버지는 첫 아내를 병으로 잃었다. 2남 1녀가 있었는데, 두 아들도 병으로 잃었다.

딸은 조강지처랑 같은 병으로 지금도 일주일에 3번씩 투석을 한다. 동생과 나는 재혼한 엄마의 딸들이다. 우리 엄마도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그 후로도 아버지는 내 기억에만 최소 4명의 여자에게 엄마라고 부르라고 했다. 고등학교 졸업 후 공장에 다닐 때, 자취방에 여자를 데리고 와서,
 

“니가 일을 하니, 돈이 좀 있어? 아버지가 용돈이 없는데.”
 

그러면서 가지고 있던 9만원을 가져가셨다.     

중학교 때, 고등학교 진학으로 인해 아버지가 학교에 오셨다.
아버지가 가신 후, 담임 선생님께서 불러서 말씀하셨다.


 “아버지께서 가정 형편이 어려우니,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공부하는 학교로 진학했으면 좋겠다고 하셨어. 나는 너가 똑똑한 아이니, 인문계 고등학교 가도록 설명드렸다.”
 

아버지는 늘 이런 식이셨다. 치매 걸린 할머니를 다락방이 딸린 단칸방에 모시고 왔을 때의 일이다. 3남 4녀가 있었지만 아무도 시골에 계신 할머니를 모시려고 하질 않으셨다. 대학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짧은 공장 생활을 그만두고 초등학생 학습지 알바를 하면서 할머니 끼니를 챙겨 드리고 있었다. 술에 취한 채 들어오신 날, 다락에 있던 나는 인기척을 느끼고, 여섯 칸도 채 안되는 좁고 가파른 다락 계단으로 내려오고 있었다.
갑자기 계단문이 열리면서 아버지가 내 멱살을 잡으셨다.  

   

“그냥 돈이나 벌면 되지. 대학을 그렇게 가겠다고 난리냐”    


할머니는 밑에 방에서, 아버지를 신랑으로 착각하고, 새색시 마냥 웃고 계셨다.
 

   

월요일, 일하고 있는데 핸드폰으로 급하게 전화가 왔다.
아버지가 위독하시다는 거였다. 어제도 큰아이와 다녀왔는데. 코로나로 인해 면회 금지라 아버지께 올라가 보지도 못했는데. 아버지가 도가니 곰탕이 먹고 싶다고 하셔서, 포장해서 전달만 하고 왔는데. 병원 앞마당 강아지가 새끼를 7마리나 낳아서 구경하고, 한참이나 서성이다 왔는데. 아버지께 올라가 볼걸, 대체 코로나로 못 본다 하고 아버지 상태가 어땠다는 건가.

긴 터널을 지나 병원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숨을 거둔 뒤였다. 멀뚱히 쳐다보고 있으니,
 

“어제 사 오신 곰탕을 소분하여 점심까지 드시고 돌아가셨어요. 아버지 손이라도 잡아 보세요”     


아버지는 편안히 눈을 감고 계셨다. 손을 잡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다만 아버지 얼굴에 있던
까막딱지 여드름을 짜고 싶은 강한 충동이 일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뒤, 병원에 있던 지인에게 연락이 왔다.
 

“아버지가 두 딸들 자랑을 정말 많이 하셨어. 돌아가시기 얼마 전부터는 식사를 거의 안 드셨어. 나는 죄가 많은 사람이라고. 식사가 나올 때마다 기도를 오래 하시길래 여쭤봤어. 뭘 그리 오래 하냐고. 하느님 저 빨리 죽게 해주세요. 그래야 두 딸들 도와주는 겁니다.”
 

아버지는 요양병원에 들어가신 지 정확히 두 달 만에 돌아가셨다.


아버지, 그곳은 평안하신가요. 할머니도 잘 계신 가요.
두 딸이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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