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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pr 11. 2023

"누가 여기다 똥을 집어 던졌어"

제 1화 추억소환-할머니편

“누가 여기다 똥을 집어 던졌어”     


창밖에서 큰소리가 나서 보니, 앞집 구멍가게 할머니였다.     


“에이, 비도 오는데, 남의 가게 앞에 똥을 던지면 어떡해”     


순간, 눈물이 났다. 할머니가 창문을 열고, 쇠창살 사이로 똥을 던진 것이다.
 검정 우산을 쓰고, 비닐봉지에 똥을 담아서 들어왔다. 누가 볼까 봐 쏜살같이.
 할머니의 증상은 대도시 단칸방에서 그렇게 심해져 갔다.

하지만, 시골에 혼자 살던 할머니를 그냥 둘 수만은 없는 노릇이었다.
 시골 동네 사람들이 할머니 얘기를 해주셨다.
 

“윗옷을 다 벗고 온 동네를 돌아다니신다. 밥을 해 드시는 법도 잊었고.

동네 돌아다니면서 온갖 풀을 뜯어서 김치 담근다고 하신다.”
 

그래도 시골은 다 아는 동네 분들이 가끔 밥도 챙겨 드리고, 옷도 입혀 드리고 했다.
 무엇보다도 온 동네를 돌아다닐 수 있었던 거다.
 하지만, 대도시 작은 다락방이 딸린 단칸방에 오시고 난 뒤부터, 종일 방에서만 지내게 된 것이다. 대변과 소변도 요강에 해결했다. 때마침, 잠시 볼일 보러 나갔다 오니 저 사단이 난 것이었다. 방안은 똥오줌 냄새로 가득했다. 방바닥 장판을 일부 뜯어내고, 구석에서 소변을 보기도 했다. 한번은 소변을 보시고, 텔레비전 뒤쪽에 소변을 부어서 불이 날 뻔한 적도 있었다.
 20대 초반의 내가 감당하기엔 벅찬 일상들이었다. 옷에 대소변 냄새가 날까 봐, 코가 점점 예민해져 갔다.     

  

“야 너희 할머니 오셨다”
 

중학교 수업 후 쉬는 시간에 친구가 말했다. 나가보니 비탈길 도로 사이로 할머니가 보였다.
 그 순간, 너무 부끄러워 도망치고 싶었다. 일명, 개구멍이라는 사잇길로 빠르게 나갔다.
 할머니가 들고 오신 보자기가 보였다.
 

“네가 밥도 안 먹고 가서, 점심 도시락 싸서 왔다.”
 

열어보니 금방 한 흰 쌀밥 한 공기, 갈치구이, 간장, 숭늉과 김치가 정갈하게 담겨 있었다.
 

“이런 거 들고 학교 오지 말라고 했지? 부끄러워 죽겠다. 빨리 들고 다시 가라.
 다시는 학교에 찾아오지 말고.”
 

할머니는 계속 들고 가서 먹으라고 했지만, 누가 쳐다보는 것 같아 뿌리치고, 부리나케 학교 안으로 들어왔다. 멀리서 보니 할머니는 다시 뚜껑을 덮고, 보자기를 싸서 비탈길, 공동묘지 사이로 사라지셨다. 10리가 되는 길을 무슨 생각을 하면서 되돌아가셨을까. 30년이 지난 지금도 돌아서서 가시던 그 뒷모습이 기억난다.
 

할머니는 우리가 태어나자마자, 길러주신 분이다.
 3남 4녀를 다 기르시고, 늘그막에 둘째이자, 첫아들의 손녀 둘을 키워야 했다.
 아주까리기름으로 가운데 가르마를 타서, 참빗으로 곱게 아침마다 머리를 빗고,
 늘 비녀를 꽂고 계셨다. 평생 누런색 무늬가 있는 저고리에 회색 일바지(몸빼)를 입으셨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새벽에 일어나서 아침밥을 챙겨 주셨고, 학교 행사 때마다 한복을 입으시고 오셨다. 학교 다녀오면, 어디서 먹을 것을 얻어와서 안 드시고, 찬장에 꼭 숨겨 두었다 주시곤 했다.

나무 땔감이 없어서, 가을이 되면, 리어카를 끌고 소나무잎(갈비)을 모으러 까꾸리(갈퀴)를 들고 근교 산을 누비셨다. 초등학교 마치면, 우리는 할머니가 계신 곳으로 가서 리어카를 끌고 오곤 했다. 우물가에 있던 벚꽃 나무도 팔고, 기르던 메리(개)도 팔려 갔다. 그 돈으로 절인 생선을 사고, 김을 사서 밥상에 올리신 것이다.
 

할머니의 병세가 깊어지고, 욕창이 생기더니 금세 커져갔다.
 챙겨 드린다고 했는데도, 점점 마르시고, 아래턱도 빠졌다. 아버지는 급하게 병원에 모시고 갔다. 중환자실에 계시던 할머니는 며칠을 못 버티시고 하늘나라로 가셨다.
 할머니는 돌아가신 날 아침에도 이런 얘기를 하셨다.
 
 “S야, G야, 밥 먹고 학교 갔나.”
 

4월이 되면, 같은 달에 돌아가신 할머니가 더욱 그립다. 할머니는 손녀 둘이 얼마나 잘 컸는지 아실까. 대학에 다니고 있던 손녀들이 직장을 얻어서, 결혼까지 하신 걸 아실까.
 첫 월급을 받아서 할머니 호강시켜 드린다고 했는데. 할머니는 기다려 주지 않으셨다.
 2년 전 돌아가신 아버지도 잘 만나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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