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Apr 21. 2023

"소담스런 모란꽃 너머"

-제 7화 추억소환 국민학교 생활 1편-

자주빛깔 모란이 소담스레 피어나

노란 이를 드러내고 말을 건넨다.


숙직실을 돌아 우물가에 소녀하나

쌀 씻어 밥 안치고,

설거지하며 남은 라면 국물 마시웁네.


누군가 보는 사람 없나

콩딱 콩딱 두근거리는 가슴 안고.


어디선가 불어오는 솔바람

마음 쓸어안아 보듬고 가네.



마음 한켠에 남아 있는 사진 같은 영상이다.

어린 시절 우물가에 앉아 있는 나를 바라본다.



학교에는 흉흉한 소문이 돌기 시작했다. 학교 터가 공동묘지였단것.

그래서 귀신이 나타난다는 것. 그리고 진짜로 내가 본 것은 당시 젤 왼쪽 1학년 교실로 쓰이던

곳에 차려진 제사상이다.

상위에 촛불이 타오르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런 소문이 돌고부터 건물 오른쪽에 있던 솔밭이나 대나무 밭이 가끔 섬뜩하게 느껴졌었다.

솔밭옆에 있던 공중화장실엔,


"통시 바닥을 보면 안 된다"


"밑에서 쑤욱 올라와서 잡아간다"


당시 학교 친구들 사이엔 똥 닦고,


"파아란(느리게) 종이 줄까?"(빠르게 감아치는 발음)

"빨간 종이 줄까?"


라고 귀신이 화장실에서 기다린다는 전설의 소리들이 퍼져 나갔다.


5학년때부터 담임인 G선생님께서는 자주 나를 부르셨다.

숙직실에서 선생님 점심시간 되기 전에 밥을 안치는 일을 부탁하신 것이다.

가끔씩 간식으로 라면을 드시면 수돗가나 우물가에 가서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그릇을 씻었다.

라면도 귀했던 그 시절엔 설거지하다가 밑에 건더기가 많이 남아 있으면

누가 볼세라 두리번거리다 몰래 입안에 홀딱 털어 마셨다.


6학년이었다. 교실 뒤에 꽂아둘 문고가 필요했다.

당시 G와 나는 [화목나무]라는 책을 만들었다. 줄거리는 화목나무로 인해 온 가족이 화해하고 따뜻하게 살게 되는 권선징악의 내용이었다.


아침에 학교에 가면 칠판에 일찍 오는 친구들을 위해 자습문제를 적어 놓았다. 산수문제도 있고

리트머스지와 봉숭아 등, 산성과 알칼리성 색깔의 변화와 광합성에 관련된 문제도 있었다.

가끔 늦게 남아 칠판에 문제를 내고 있으면 짓궂은 남학생들이 남아서 장난을 걸어왔다.


"너 블보가 뭔지 아나"


말해 놓고도 자기들끼리  키득거리면서 웃어댔다.

별 대꾸가 없자 칠판에 영어단어를 써가면서 또다시 웃어대곤 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여성의 생식기를 영어로 표현하는 거였다 싶다. 어디서 보고 왔는지 정확하지도 않은 발음으로 어설프게 발음하고 웃던 동무들.


단층건물로 거의 한 반이 한 학년이었다.(저학년일 때는 두 반이.)
유일하게 2층 건물은 중앙 현관에서 계단으로 올라가면 자연과학실이 있었다. 우리가 다 기억하는 그런 교실 맞다. 큰 유리병에 박제된 야생 동물이 눈을 뜨고 쳐다보는 그런. 교실도 서늘했지만 혼자 준비물을 챙기러 열쇠를 들고 올라가다 눈이 마주치기라도 하면 밤에 생각이 나기도 했다.


나는 당시 키가 커서 늘 60번대였다. (이후로 키가 자라지 않았다. 슬픈 사실이지만 벌써 받아들였다) 주번명찰도 달아보고 전교학생부회장에서 부반장(여학생은 회장과 반장이 될 수 없다)까지 왼쪽 팔에 이름표들을 완장처럼 이어 달고 다녔다. 완장과 상관없이 고무줄을 끊는 남학생들과


"아이스께끼"


라고 외치며 치마를 들어 올리는 개구쟁이들 사이에서 감정 줄타기가 늘 있었다.


꼬마에서 소녀 혹은 소년으로.

요술공주 밍키의 노래처럼  '빛을 타고 내려온' 천사들은 꿈을 꾼다.



조만간 할머니와 그 옆에 누워계신 아버지 보러 고향에 다녀와야겠다.

그리고 그 넓은 운동장을 뛰어다니던 그 아이를 다시 만나보려 한다.


이전 06화 “보랏빛 등나무 꽃이 피는 교정”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