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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pr 22. 2023

"선생님 큰일 났어요"

-제 8화 추억소환 중학교 생활 편-

“선생님 큰일 났어요”
 

“왜 그래”
 

“S가 엎드려 자다가 갑자기 일어나서는...”
 

사회과목을 가르쳤던 S선생님은 기겁을 해서

운동장으로 뛰쳐나오셨다.
우리들은 이미 입을 맞춰 놓은 상태다.
나는 몽유병환자 행세를 했다. 혼비백산한 듯 놀라서 쫒아나온 선생님을 보니
너무 우스워 연기하던 내 몸에 힘이 다 빠질 지경이었다.
 

“야 000 너 왜 그래?”     


내 손목을 끌어당기면서,
 

“야 정신 차려 000”
 

내 얼굴과 등 어깨를 세게 치면서 깨우셨다.
 

당시 S선생님은 막 제대 한 후, 첫 발령지였던 걸로 안다.

(여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았던 듯.)

선생님께서 누군가를 자전거에 잠시 태우기라도 하면 곧 시기하는 상대가 되었다.     


그날도 야간 자습을 하고 있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고, 우리는 무료했다.

회초리 같은 막대기를 들고 1층 교실 복도를 오가며 우리를 감시하고 계셨다.


갑자기 선생님을 골탕먹이자는 내 말에 친구 몇 명이 가세해서 벌인 일이었다.
그날 나는 곧 울 것 같은 눈빛으로 애원하는 선생님을 보고 못 이긴 척 교실로 들어갔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선생님께서는 나를 보고 아픈 데는 없냐고 물으셨다.

(당시 너무 놀란 선생님께 사실대로 말씀드릴 수가 없었다. 오랜 시간이 흘러 구경한 친구들이 이실직고했다는 소문이 들리긴 했다.)  

 


나는 아주 당차고 건방지기까지 한 중학생이었다.     

국어 수업시간에 교과서에 실린 희곡 작품을 보고 감상을 말해보라고 하셨다.
 

“시시하다”     


고 혼자서 중얼거렸는데, 국어 선생님께서 그렇게 말한 사람이 누구냐고 물었다.
나는 선생님께서 화가 나서 그런 줄 알았다. 그러나 바로 선생님께서 나랑 생각이 같다면서

이런 작품이 여기 왜 실렸는지 모르겠다고 하셨다.     


가사시간에  Y선생님께서 버선의 발등 부분 이름 아는 사람 있냐고 물으셨다.
 

“시눅선요”
 

할머니가 늘 버선을 신었으며 시눅선이라고 하던 말씀이 생각이 나서였다.
Y선생님께서 수눅이 맞다면서 크게 칭찬해 주신 일이 기억이 난다.
 

수업시간에 늘 졸고 있던 N이라는 친구가 있었다. 그러면 칠판에 엄청난 찌이익~하는

소리를 내면서 긋거나, 분필을 부러뜨려 N에게 던졌다.

N은 그래도 꾸벅꾸벅 졸았던 기억이 난다.     


내가 좋아하는 남학생이 있었다. 그 이름은 Y. 그는 영어를 좋아하고 잘했으며

외국에 있는 여학생들과 펜팔을 했었다. 어떤 때는 영국에 마당 있는 집의 소녀가

보내 준 편지를 보여 주기도 했다. 나는 그의 관심에 대한 표시로 쪽지에
 

“MAJAJUKGOSIPEO?”
('왜 그랬을까. 그냥 좋다고 하지')    


라고 쪽지를 보낸 적도 있었다.      

    

수학여행을 갔다.

숙소에서 먼저 자는 사람은 손해다. 누군가가 괴롭히거나 골탕을 먹이기 때문.
나는 당시 병베지밀을 사서 뚜껑을 열고 소금을 가득 부었다.
그런 다음 최대한 흔들어서 선생님 방에 들고 갔다.
 

“선생님 베지밀 드세요”
 

하면서 살짝 덮고 있던 뚜껑을 열고 곱슬머리가 돋보였던 영어 선생님께 드렸다.
선생님께서는, 0.1초간 미간을 찌푸리시더니, 이내 평정을 찾고,
바로 옆 선생님들께도 권해 주셨다.
 

“아 선생님들 이 베지밀 정말 맛있네요.
 쭈욱 같이 마십시다. “
 

영어 선생님의 적극적인 협조로 그 방에 같이 계시던 선생님 모두

소태 같은 쓴 맛을 동시에 보셨다.     


수학여행지에서 식사가 제일 큰 문제다. 당시 설악산에서 2박을 하였다.
밥에서 담배꽁초가 연거푸 나오자 나는 참지 못하고 식당에 항의하러 갔다.
계속 반에 문제가 생기면 왔다 갔다 하던 나를 식당에서 일하던 비슷한 또래가 계속 쳐다보았다.

마지막날 식당에 다시 갈 일이 있어 갔더니
갑자기 또래의 남자아이가 문 뒤에서 내 손목을 잡았다.     


“너 가지 말고 여기서 나랑 같이 살자”
 

지금도 이 말이 떠올라 웃음 짓는다.     

      

가끔씩 야간 자율학습시간에 선생님의 감독이 느슨해지면 우리는 원카드

놀이를 했다. 놀 때는 시간 가는 줄 모른다.


그때는 간식으로 컵라면이 나왔는데, 포장지 입구에 행사 로고를 잘라서 100장을 모으면
대관령구경을 시켜 준다고 했다. 친구 G와 쉬는 시간에 쓰레기장에 몰래 가서 그 포장지 뚜껑을 모았었다.

생각보다 100장 모으기는 쉽지 않았나 보다. 아직까지 대관령에 못 가본 걸 보니.



참으로 아름다웠던 학창 시절이었어.

지금도 다시 돌아갈 수 있다면 이 시절로 돌아가고 싶어.

할머니가 갖고 오신 보자기에 싼 흰 밥도 먹고.

담임선생님 갖다 주라며 주홍빛으로 영근 감을 가지채 꺾어 학교에도 가져갔지.


"선생님, 우리 할머니께서 갖다 주라고 하셨어요"


쑥스러워 쭈뼛거리며 내놓은 감가지를 받아 들고 환하게 웃던 L선생님.


"세상에 너무 예쁘고 탐스럽게 열렸네. 잘 먹겠다고 꼭 전해드려"


그 시절은 모든 게 빛나기만 했지.

그중 단연 돋보인 건 우리들.

그리고 선생님.


사람들, 사람들이었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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