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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pr 13. 2023

“수건 챙겨, 따라와”

-제 10화 추억소환 범죄자 편-

 아직도 생생히 기억되는 문장과 말투.

 

운전하면서 가다가, 갑자기 마음의 소리가 들린다고 해야 하나.

‘나를 빨리 꺼내줘. 이제 그만 나를 세상에 보내줘. 네가 다시는 아파하지 않게’     


허름한 L 씨 댁 자취방 나무 대문이 열렸다.
문이 열리자마자 보이는 오른쪽이 내방이다.
그 안에서 나는 여느 때처럼 야간 자율학습을 마치고, 자고 있었다.
갑자기 자고 있는 내 목에 칼을 들이대었다. 날카롭지만, 뭉툭한 느낌의 칼이었다.
칼 손잡이를 수건으로 감싼 채,     


“수건 챙겨, 따라와”
 

(이 글을 쓰는 이 순간도 손이 떨린다. 30년이 더 지났는데도 말이다.)
      

여고 바로 옆에는 거의 다 허름한 자취방 촌이었다. 좁은 골목들을 돌아 위쪽으로 올라가면
B산이 버티고 있었다. 거기까지 어떻게 끌려 올라갔는지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
 

산의 왼쪽 기슭으로 끌려 올라간 나는 바지를 벗어야 했다. 목에 칼을 들이대고 있었으므로.
내 의지대로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여러 번 성폭행을 시도하더니, 뜻대로 안 되니 멈췄다.
나는 제발 살려 달라고만 했다. 딱딱한 나무 막대기로 느껴지던, 성기를 내 몸에 넣으려고 시도했던 기억이 오래 남아 있다. 그리고 혼자 산을 내려와 자취방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자취방 담을 끼고도는 사찰의 새소리가 여느 때와 같이 고즈넉이 들려왔다.    

 

담임이었던 수학 선생님께서 놀라서 자취방으로 찾아오셨다. 윗채 집주인은, 어제 누가 마지막으로 들어왔냐고 묻고 다녔다. 고장이 나서 안쪽에서 잠가도 툭툭 치면 열리는 문이었는데도 말이다. 경찰서에서 자취방으로 찾아와서 인상착의를 물었다. 기억하는 것 자체가 더 힘든 일이었다. 아버지는 다른 도시에서 경비 일을 하시다, 학교에서 연락했는지, 학교 중앙현관으로 나를 찾아왔다.  

        

경찰에서는 조사를 하더니, 시큰둥하게 미수사건이 되었고 무성한 소문만 돌았다.

J 시장에 J 분식집 큰아들이 이 동네에서 그런 짓을 하고 다닌다더라. 여고생 자취방마다 종종 성범죄자들이 돌아다닌다는 소문도 파다하게 퍼졌다. 어떤 친구들은 창문 밑에서 이상한 소리를 내는 성범죄자로 인해 고향에 계시던 할머니와 같이 자취생활을 하기도 했으며, 여러 친구가 무서워서 모여서 자기도 했다.
 

그 기억으로 인해 나는 그 자취방에 계속 살 수가 없었다. 알던 친구가 있는 평지로 내려와 방을 구했다. 그곳은 마치 자취생만을 위해 만든 집처럼 지어 놓았었다. 하지만 이곳도 예외는 아니었다. ㅁ자 형태로 되어있는 자취방 옆에는 5층 건물이 있었다. 내방은 5층 건물 창문이 잘 보이는 구조였다. 하루는 친구가 내게 말했다.


     

“S야 저기 5층 건물이 그 J 시장 J 분식 건물인데, 그 꼭대기 5층 건물에 그 미친놈이 산대”


          

가장 짧지만, 한 글자씩 쳐 나가는데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 시절의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잘 견뎌왔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것이다. 지금의 나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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