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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pr 24. 2023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제5포지션"

제 9화 추억소환-고등학교 생활 2편

근처 공원에 나가보니 여고 시절의 보랏빛 등나무 꽃이 소곤거리듯이 피어났다.



따라라 란~~딴 따~라 란따다아~

(소녀의 기도에 맞춘 무용시간 몸사위)
 

무용시간이 되면 체육복으로 갈아입고 강당으로 갔다.

C시가 고향이라고 했었던 단아한 무용선생님. 남편은 방송국에 근무한다고 하셨던 거 같다.
짧은 단발머리를 하시고 표준어를 쓰시면서

우리에게 우아한 동작을 가르쳐 주셨다.(너무 우아해서 간질거리는. 나는 그랬다.)


지금 보니 발레의 기본 포지션이었던 거네. 제일 기억에 남는 건 제5포지션.
양다리를 꼬아서 발모양을 맞춘 뒤 팔을 둥그렇게 올려서 원을 만드는 것이다.  

   

하나하나 동작을 익힌 다음 카세트 테이프 속에서 흘러나온

소녀의 기도 피아노 선율에 맞춰서 발걸음을 살포시 내디뎌본다.


유독 나는 이 무용시간을 좋아했다.

고독한 자취생활에 잠시 숨 고르기를 한다고 할까.

그와 동시에 크고 작은 동작 속에 자유를 품었다 할까.

쉽게 딱 한마디로 말하면 이거다.


"음... 뭐 좀... 있어 보이네"


한걸음 한걸음 발을 뗄 때마다

웅크린 몸이 피어나듯
작은 춤사위가 시름을 걷어가네
아픈 기억마저 하얀 꽃으로 피어나

노랑나비 되어 날아가다.

   

조지훈의 승무가 기억난다. 김춘수의 꽃.
그리고 내가 자주 읊조렸던 김소월의 진달래꽃까지.

(학교에서 배우는 수업은 모든 단어와 문맥을 끊어내고, 숨겨진 의미와

작가의 의도가 무엇인지 찾고 싶지 않은 것을 계속 찾아내라고 했다.)


자습시간에 수학문제는 안 풀고 가만히 눈을 감고
시를 소리 없이 읽고 있으면,
 

“야 너는 다음에 작가가 되겠다. 네가 책내면 나한테 제일 먼저 보내줘”


 친구 K가 무심코 한 말이다.



쉬는 시간에는 S시에서 온 친구 G와 영화배우 끝말잇기를 했다. 계속 말을 이어가다가 내가
 

“맥가이버”
 

라고 외치자     

 

“그건 드라마에 나온 이름이잖아”   

  

당시 나는 왜 맥가이버가 영화배우이름에 안 들어가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화학시간이었다.

원소주기율표 외우기 시험을 치고 있었다.

 

“선생님 S가 울고 있어요”
 

“너 왜 우는데?”


한참을 말을 못 하고 있다가

   

“......  너무 열심히 외웠는데 생각한 만큼 발표를 못해서요.”
 

“울지 마. 너 너무 잘했어. A 받았어. 여기 볼래?”
 

그 말을 듣고 기분이 좋았는데, 보니 A+이 제일 높은 점수였다. 더 잘하지 못한 게 화가 났다.   

  

입방구조를 공부할 때였다. 면심입방, 체심입방......     


“선생님. 여기 같은 이름을 가진 친구 있어요.”
 

“음. 그러네. 자... 저 친구가 앉아 있는 자리에서(내가 중앙쯤에 앉아 있었다.)
 요렇게... 요렇게... 중심에서 퍼지는 구조가 이 입방구조란다”


그리고 그 뒤로 내 이름과 비슷한 그 단어가 나올 때마다 친구들이 키득거리며 쳐다봤다.
 

화학시간은 내가 좋아하기도 했지만 특히 기억에 많이 남는다.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나는 것은.
 

“자 이번에 성적 나왔다. 제일 못한 사람들 뒤에서 8명 앞으로 나와”
 

정말 부끄러워서 죽을 것만 같았다. 친구들이 다 보는 데서 교단에 올라갔다.
 
“요 녀석들. 점수가 이게 뭐냐?”
 

머리가 벗겨지기 시작한 화학 선생님께서는 모든 친구들 보는데서 땡꽁을 주었다.
정말 아프게. 그 당시 반응물 간의 전자 이동으로 산화 환원 계산하는 것이 가장 골치 아픈 단원이었다.

아픈 것보다 부끄러움으로 인해 선생님이 미우니 더 공부하기가 싫어졌다.  




신체검사가 있은 날이었다. 모두 체육복으로 갈아입었다.

여기저기서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야 이번에 검사할 때는 가슴을 직접 보여 줘야 한대”


“뭔 소리야?”
 

“아니 그게... 혹시 임신인지 아닌지 젖꼭지 둘레를 보면 안다고...”
 

“아... 뭐야...”
 

결국 우리는 강당에서 줄을 서서 한 명씩 보여줘야 했다.

이후 G라는 친구가 검사에서 걸렸다고 또 이상한 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사실인지 아무도 확인되지 않은 얘기들이 여기저기 떠다녔다.


 

미술실은 도서관 근처 뒤쪽에 있었다.
미술선생님은 거친 단발머리에 투박한 말투. 얼굴엔 굵은 주름이 있고 시커멓게 그을린 피부의 남자였다.
미술실 안 선생님 교단 뒤쪽으로는 여러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내 기억엔 주로 나체화에 가까운 그림들이 많았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시냇가에서
아래쪽 중요부위만 살짝 가린 여인들의 그림이었다.     


“너 이렇게 그리면 어떡하니?"
 

“왜에 선생님께서 친구 모습 그리라 해서 그렸는데?”
 

J는 잔뜩 화가 나 있었다.

내가 너무 사실적으로 친구의 눈을 작게 그렸던 것이다.
 

미술선생님께서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신다고 했다. 나는 시내에 나갔다.
당시 지하상가에는 발레 도자기 인형들을 팔고 있었다. 그것을 거금(그 시절에)을 들여 샀다. 미술실에 몰래 갖다 놓았다. 선생님은 이사 가시면서 작은 흰 종이에 돌돌 말린 그 장식품을 들고 가셨을까.

 

두발 단속이 너무 심해서 나는 늘 커트 머리를 하고 다녔다.
하루는 학생지도 선생님께서 친구 L을 불러서 데리고 갔다. 귀 밑으로 단속하는 길이보다 머리가 더 내려왔다는 거다. 친구 L은 반항하다 불려 가 울상이 되어 돌아왔다.


 

한 번은 K친구가 와서 말했다.     


“너 만화방 갔어?”
 

“아니 빌린 적도 없는데”
 

“너 이름이 만화방 대여 목록에 적혀 있더라”
 

친구들이 내가 만만했는지. 만화방 근처도 가지 않은 내 이름을 거기서 봤다고 했다.



수업을 마치고 미술학원에 가는 친구가 있었다.
 

“너 혹시 [이종환의 디스크 쇼]에 사연 보냈어?”
 

“응. 무슨 내용이던데?"


"네가 몽유병 환자로 변신한 얘기~~~~~~~"


나는 보내놓고 듣지도 못한 이야기를 친구가 학원에서 그림 그리다 들었다는 것이다.

정말 배꼽 빠지게 웃었다면서.


사연선물로는 알람 시계였는데, 나는 그 시계를 받지 못했다.

L씨네 자취방은 문전성시를 이뤘을뿐더러.

그중에서도 시계 도둑으로 의심되는 사람도 한 둘이 아니었다.
 

그는 옥상에서 자주 기타를 치고 있었다.

저녁이나 밤에 야간자율학습을 마치고 돌아오면 빨래를 해서 널어야 하는데 그가 늘 있었다.

당시 서른 즈음인(정확히 알 수는 없다.) L 씨네 큰 아들이었다.
무슨 노래를 불렀는지 기억은 없다.

키가 크고 흰 피부의 네모난 얼굴을 한 남자. 의자에 앉아서 기타 줄을 튕기고 있었지.

그러던 그가 며칠 째 보이지 않았다.
 

“저기 여기 L 씨 집 맞아요?”
 

나는 저녁시간에 집에 온 의문의 사람들을 기억한다.


그리고 하얗게 질려 넘어가던 L 씨의 어머니도 또렷이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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