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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pr 15. 2023

"엄마, 한국 문화 알리는 1일 도우미부탁하셨어"

제 11화 추억소환-딸 편

"엄마 선생님께서 한국 문화 알리는 1일 도우미 부탁하셨어."


"뭐 엄마는 중국어 제대로 할 줄도 모르는데,

지금 할 수 있는 건, 니 하오?(안녕?) 뚜어 샤오 치엔?(이거 얼마예요?) 마샹 회이 라이.(금방 돌아올게.)

챠부 두어(비슷해), 쩜 머 양?(어때?) 요런 수준인데.

일단 알겠어. 접수."


왁자지껄,

교실 안이 고만한 아이들로 천지삐까리다.


서로 먹어보겠다고 책상 앞으로 다가왔다. 정신이 하나도 없다.

말이 제대로 통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모든 걸 알 수 있다.

여기는 중국현지 S 초등학교 1일 한국 문화 알리기 도우미 행사 자리다. 딸의 담임 선생님께서 아이 편으로 부탁하신 거였다. 거부할 수도 없는 것이

아이가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뭐든지 해야 한다는 책임감에서였다.

지금 생각하면 참 무모한 용기였다.


가장 손쉽게 다가갈 수 있는 것은 아무래도 음식 만들기 여서

김밥 재료를 들고 학교에 갔다. 한국을 알리기 위해 어떤 자료를 들고 갈까 고민하다가

주위에 도움을 받아 한국의 행사에 대해서도 준비해 갔다.

딸아이도 함께 나와서, 통역을 하였다.

아이들은 만들어 보겠다고 난리였고, 서로 먹어 보겠다고 교단에 둥그렇게 몰려들었다.

다 먹고 음식 만들기가 대충 정리가 되고 난 뒤가 문제였다.

중국 담임 선생님께서 이제 한국의 행사에 대해서 설명한다는 말씀이 이어졌다.

우리는 전날 밤 준비한 자료로 한국의 단오에 대해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단오, 제기랄! 우리가 뭘 이리 어려운 걸 준비했지?'


"한국 단오에는 청포로 머리를 감는다. 이것은 귀신을 쫓아내고 액운을..."



우리는 청포로 머리를 감는다는 것에서부터 모든 설명들이 엉켜서 땀을 뻘뻘 흘렸다.

둘 다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중국 담임 선생님께서는 웃으시면서,

재빠르게 수습해 주셨다.

(다음날, 중국 소도시 지역신문에 김밥 만드는 내 모습이 실렸다.)


아직도 목에 빨간 손수건(红领巾, 홍링진)을 하고, 노란 학교 모자(색깔만 틀리지, 꼭 새마을운동 초록모자 같다)를 쓰고 교문 뒤로 사라지던 딸아이의 모습을 기억한다.


시아버지의 사업으로 인해 우리 가족은 중국으로 갔다. 중국어도 배울 겸 아이 둘도 함께 간 것이다. 9살이던 6월에 중국에 도착해서  바로 현지인 중국교포에게 시간당 과외를 붙였다. 아무런 어학준비도 없이 떠난 것이었다. 9월 새 학기가 시작되자마자 바로 학교에 입학시켰다.


진짜다. 지금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지만.

그때 처음으로 아이 머리에 손지검을 했다. 너무 스트레스가 많고, 준비 없이 온 중국이었는데도

아이가 학교수업에 잘 못 따라가니 손부터 올라갔다. 늘 학교에서 솜사탕보다 더 착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가진 S에게라고 편지를 받아 왔던 아이인데, 그 착한 아이가 학교 수업 따라 가랴,

엄마의 스트레스까지 고스란히 안고 지냈던 것이다.

이후 아이는 중국인보다 더 국어를 잘하는 학생이 되어 갔다.


3년간의 중국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아이는 유창한 중국어를 구사했다. 어순이 비슷한 관계로

영어회화를 따로 가르치지 않았는데 영어도 웬만큼 원어민과 소통되는 게 신기할 따름이었다.


지금은 이공계를 전공하는 대학생이 되었다.

빠알간 작은 꽃잎 수제 원피스를 입고, 시골 우체통 앞에서 V자를 그리며, 유치원 단체사진 속에서 웃던 아이. 지금도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세상에서 제일 예쁜 나의 공주님.



"엄마 저기 서있는 나무 좀 봐"


5세 생일을 앞둔 비가 많이 온 어느 여름날 아침이었다.


"저 나무는 밤새  물을 많이 먹어 오줌 눈다고 얼마나 힘들었을까!"


아직도 그 기억이 바람에 실려오는 초봄 오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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