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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pr 17. 2023

"봄이 되니 도랑에 물이 돈다."

제 12화 추억소환-시골 생활 편

봄이 되니 도랑에 물이 돈다.


졸졸졸 흘러가는 물소리가 가볍고 명랑하다.

곧이어, 없던 빨래도 만들어 세숫대야에 들고나가

빨래터에서 G와 H를 만나게 되겠지.
 

“빌어 먹을 년들. 씻고 벗고, 씻고 벗고 하루에도 몇 번씩...

어디 가서 코빼기도 안 보이고. 하는 짓은 지 어미 닮아서 꼬락서니 하고...”

 

귓전에 들리는 듯한 할머니 목소리.
 
시골은 자연이 주는 먹거리가 많다.

노란 막걸리 주전자를 들고, 산딸기 따러 다닌 적이 있다.
한참 몸을 늘어뜨려 알맹이가 큰 붉은 산딸기를 따려는 순간 한가운데 굵은
가지에 큰 뱀이 돌돌 감겨 있어 얼마나 놀랐는지.

칡뿌리를 캐러 다니기도 하고, 삐삐(부드럽고 단맛이 나는 속살을 가진 식물)도 많이 뽑아 먹으러 다녔다.   

  

농한기에는 큰 광주리를 이고 물건 팔러 다니는 할머니가 계셨다.
늘 우리 집에 방이 남았기에 하룻밤 주무시고 간 적이 많았다.
어떤 때는 먹기 힘든 노가리를 내어 놓고 가기도 하셨다.
 

먹을 게 없을 때는 엿장수도 자주 왔다.

그 큰 가위를 흔들어 대면 동네 아이들이 모두 몰려들었다.
나와 동생은 도저히 갖다 줄 게 없어서 남의 집 헛간에 있는 비닐을 뜯어서 갖다 주기도 하고,
실제 쓰던 것도 갖다주고 엿바꿔치기해서 할머니께 감당 안 되는 욕을 들어야 했다.
 

세 식구가 사는 삶은 단출했지만, 할머니가 나이가 들어가시니

집안에서 힘쓰는 일은 점점 내게 돌아왔다.     


시골 화장실은 푸세식이다.

큰 장독을 바닥에 묻어서 위에 나무판 2개를 올려서 그 위에서 용변을 봤었다.
가장 힘들고 하기 싫었던 일은 똥장군에 똥퍼다 나르기다. 더럽고 냄새가 너무 지독하기 때문이다. 기분 좋게 일하지 않고 투덜거리면서 억지로 하면 바로 응징이 돌아온다. 예를 들면 군인모자 같은 바가지를 막대기 끝에 달고, 똥을 퍼다가 섬세하게 작업하지 않으면 똥물이 내 몸에 튀는 것이다.


특히 여름이 되어 그 장독을 비워주지 않으면, 냄새도 나지만 구더기가 생겨서
빠르게 똥을 퍼 주어야 했다. (지금도 태어나서 본 것 중 더러움은 최고인 듯하다.)  
똥을 퍼서 똥장군에 담아서 지게에 지거나 리어카에 실어서 가까운 밭에 가서 뿌리기도 했다.
 

“언제 저게 저렇게 커서 힘이 세니 일도 잘한다”     


고 할머니께서 칭찬해 주셨지만, 하기 싫어도 내가 아니면 할 사람이 없기에 한 것이다.     


가을이 되면 땔감 걱정을 해야 했다. 겨우 부치는 논 1마지기로 나오는 지푸라기로는
추운 겨울을 날 수가 없었다. 할머니가 산에 갈비(소나무잎) 검으러 가실 때 나는 포대를 들고

솔방울 주우러 다니기도 하고, 썩은 나무뿌리 캐러 다니기도 했다.
 

(지금은 불을 피우기 위해 소나무잎을 긁어 올 필요는 없지만, 요즘도 소나무밑에 수북이 쌓인
것을 보면 아깝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겨울이 되면 온 동네수도가 얼어서 터졌다.

물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기에 동생과 나는 물 길으러 자주 다녔다.

리어카에 큰 갈색 플라스틱통을 싣고, 두레박으로 물을 길어 올렸다.
(너무 손이 시리면, 오히려 손에서 엄청나게 열이 나는 걸 아는가.)
물을 싣고, 밧줄로 잘 묶는 것도 요령이다. 잘못하면 실컷 힘들게 길어서
집에 끌고 오는 길에 다 흘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시멘트로 된 물통에 물을 그득히 부어 놓으면 배까지 두둑해져 왔다. 또한 할머니 몰래 길어다 놓고 기뻐하시는 걸 보면 더 하고 싶어 진다.


 

눈이 소복이 내린 날.
하얀 창호지 사이로 흰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지난밤에 나 몰래 눈이 온 걸까.'


동생과 나는 문을 활짝 열었다.


얼마나 많은 눈이 곱게 쌓여, 곡선으로 다듬어 놓았는지.

너무 밝아 시려오는 눈 위에 내 마음도 헹구어라.
싸리비로 곱게 단장한 너의 얼굴은 봄볕 숨긴 새색시 같구나.
(지금도 사진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는 풍경이다)


할머니는 새벽에 일어나 싸리비로 벌써 우리가 다닐 길을 열어 놓으셨다.
그리고 부엌에서는 솥뚜껑 위에 올려 데운 김치와 가마솥에 지은 밥 냄새가 올라왔다.

밥도 해놓고, 마치 아무 일도 안 해 놓으신 듯 할머니는 잠시 몸을 녹이러 우리 곁에

몰래 누워 계시곤 했다.


아 지금도 그리운 나의 집이여. 너는 모두 무너지고 남의 집, 마당 한편이 되었구나.

다시 한번 너의 마지막 모습들을 되새겨 본다


마당에 있던 남새밭에는 정구지(부추)와 방아잎, 상추를 심어서 사시사철 찬으로 올라왔고,

집 대문에는 무궁화나무가 있다. 마당 가장자리엔 할머니가 가꾸던 노란 창포, 금잔화, 주황원추리, 가지각색의 채송화가 계절마다 피어났다. 우물가에 있던 벚꽃은 팔려나가 지금은 고향 동네입구에 심겨 있다.


이곳이 내가 가장 사랑한 집, 1092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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