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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pr 19. 2023

"우리 부엌 흙바닥은 왜 올록볼록하게 튀어나왔어?"

-제 13화 추억소환 할머니 음식 편-

지지지 지익.

 

그 기름진 소리란.

침이 고이게 만드는 마법.


할머니가 숟가락으로 바탕을 눌러주면 모양이 늘어났다 작아졌다 한다.(지지지 지익. 소리와 함께) 나는 뜨거운 기름 위에서 하얀 꽃이 피어나듯 생물처럼 움직이는 바탕을 한참을 쳐다보곤 했다.

(*바탕:유과를 만들기 위해 찹쌀로 만든 말린 반죽)

    

“모양이 네모나게 잘 펴져야 제사에 올릴 수 있다.”     


할머니가 제사상에 올릴 음식에 대한 정성은 자손이 잘 되길 바라는 지성에 다름없다. 나는 모두 다 찌그러지게 만들어지길 바랬다. 바탕은 안방 가장 따뜻한 구들목을 차지하고서 우리 잠자리까지 뺏어갔다.   

   

명절이 되면 할머니의 손길은 분주해진다.
떡쌀을 담가 떡국도 빼야 하고, 구멍이 숭숭 뚫린 떡시루에 떡도 쪄야 한다. 중간에 김이 새면 안 되기에 섬세하게 밀가루를 붙여 공기구멍을 막았다.     

 

떡국의 육수를 만들기 위해 닭도 단번에 잡아야 한다. 닭을 잡아야 하니 멀리 가있으라 하셨다. 몰래 나도 모르게 훔쳐보니 한 순간에 목이 꼬꾸라져 있었다. 뜨거운 물을 준비하고 일일이 모든 닭털을 다 뽑아서 빼내셨다. 흡사 모공에서 피지가 빠지듯이 이내 맨드라운 속살을 드러낸다.


부위별로 잘라내고 잔뼈도 굵은 칼로 일일이 다진 다음 걸쭉한 육수를 내신 것이다. 매 번 그렇게 하셨기에 당연하게 여기며 쪼그리고 앉아 구경을 했었다. 할머니는 떡국 육수는 닭고기 밖에 없는 줄 아신 모양이다.   

  

제수음식도 봐서 미리 준비해 둔다.
명절 때 자주 빼서 먹던 것은 홍합 말린 꽂이였다. 꼬들하게 말린 홍합이 어찌나 맛있던지. 제사준비를 위해 제수품을 부엌방에 모아 놓으면 매번 홍합꽂이에 제일 먼저 손을 댔다. 한 개 두 개  빼먹다 표가 날까 봐 전체 꽂이를 움직여 처음부터 느슨하게 있던 것처럼 꾸며놨다.
 

“누가 홍합 꽂이에 손대는 사람이 있나.”     



연노랑 감꽃이 피면 먹기도 하고 목걸이도 하고 다녔다. 덜 익은 감을 장독에 넣고 물과 소금으로 간을 하여 부엌방에 짚으로 덮어 두었다가 추석에 꺼내먹으면 약간 곰곰하고 시큼한 냄새가 나는 과일이 되었다. 할머니가 해주신 이후 이런 감맛을 느껴 본 적이 없다.  

   

할머니는 헛간옆에 땔감 해다 넣던 아랫채에 제사 때 쓸 놋그릇을 꺼내 놓았다. 그리고선 짚에 모래를 조금씩 묻혀가며 오래 닦으시곤 했다. 따뜻한 햇살아래 매해 똑같은 일을 시계처럼 하신 것이다. 지금도 가르마진 머리에 보조개를 볼에 이고 그릇을 닦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나는 어릴 때 김치 국밥을 싫어했다. 먹을 것이 없으면 할머니는 안방에서 기른 콩나물과 김치 등을 섞어서 국밥을 끓여 주셨다.
 

“할머니 나는 이런 거 먹기 싫어. 개죽 같아”
 

“처먹지 마라 이년아. 네 동생은 잘만 먹네”    


"나는 맛있는데..."  


동생은 언제나 눈치가 빨라서 혼날 것 같으면 약삭빠르게 나랑 반대로 행동했다.  

   

우리 집 우물가 근처에는 맷돌도 있고, 화강암으로 된 절구도 있었다. 직접 기른 콩으로 명절이면 꼭 두부를 만들어 주셨다. 푸른빛이 도는 간수를 부어서 만들었는데 간수는 먹으면 죽는다고 말씀하셨었다. 조금 무서웠지만 직접 만들어 흰 천을 덮어 응고시킨 두부는 다른 양념이 없어도 그 자체로 맛있었다.


제일 맛있었던 음식은 고구마 빼떼기죽이었다. 고구마를 얇게 썰어 지붕에 말린 다음 찹쌀과 빼떼기를 뭉근하게 끊여서. 겨울에 주로 끓여 주셨다.  벼농사가 끝나면 마당에 벼지푸라기를 널어 말렸다. 해가 지면 공기가 축축해져 말린 볏짚단이 눅눅해지니 저녁에는 다시 한 곳에 산처럼 모았다.      


저녁 무렵 할머니의 죽 끓이는 냄새가 온 마당에 퍼지면 우리는 너무 행복해서 빼떼기죽 먹을 생각에 모아놓은 볏짚에 몸을 던져 푹 파묻히곤 했다. 놀러 나간 우리를 불러 모으는 마성의 죽이기도 했던 것. 시커먼 가마솥에 큰 나무 주걱이 빙글빙글 돌아가면 부뚜막에 앉아 군침을 흘렸다.
 
칼국수도 직접 만들어 주셨다. 밀가루를 치댄 다음 나무방망이로 돌돌 말아서 직접 칼로 얇게 썬다. 구수한 멸치 육수로 끓인 칼국수. 고명은 언제나 집 밖에 굴러 다니는 호박과 남새밭의 부추였다. 부추옆에 있던 방아잎은 밀가루와 섞여 풀죽처럼 끓여 나왔는데 은은하고 향긋한 방아향이 입맛을 돋우어 주었다.


김은 아주 특별한 날 나왔었다. 아버지가 오신 날이었다. 우리는 아껴먹느라 김을 손톱만 한 크기로 잘라 간장에 푹 절여 먹었는데 그날은 입이 호강하는 날이었다.
      

동네에서 돼지나 소를 잡는 날이 있었다. 할머니는 돼지 껍질과 비계를 얻어 오실 때도 간혹 있다. 석유곤로에다 노란 양은냄비를 올려 고추장을 듬뿍 넣어서 타기 직전까지 볶아서 내어 오셨다.


석유곤로 손잡이는 잘 돌아가지도 않고 파란 불이 전체로 골고루 퍼지도록 목이 빠져라 쳐다봐야 음식이 조리된다. 기름 냄새는 얼마나 고약했는지. 코밑에는 시커멓게 연기가 묻을 정도다.


낡은 곤로로 인해 조리과정부터 귀한지라 우리는 바닥에 구멍이 나도록 긁어서 먹었다. 동생은 늘 천천히 먹고 나는 빠르게 먹는 편이었다. 동생 두 배 속도로 먹으니 동생은 늘 내가 먹는 양의 반 정도를 먹었을 테다. 매번 그러다 보니 그런 홍시 사건도 생겼을 터. 나는 미루어 짐작해 본다.
      

우리 부엌은 아궁이가 두 개였다. 삐걱거리는 나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왼쪽에 곤로와 찬장이 놓여있다. 부엌에서 정면으로 보면 부엌방 문이 보인다. 그 밑 부뚜막엔 부엌방 불 지피는 아궁이, 오른쪽은 안방으로 들어가는 가마솥 아궁이가 있다. 가마솥 아궁이를 약간 비켜서 안방으로 통하는 작은 문이 있어 겨울에는 이 문을 열고 반찬을 나른다. 그 옆으로는 그릇 올리는 선반이 있다. 그 위는 바깥 마루와 연결된 나무 찬장이 올려져 있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할머니와 둘이 부엌에 쪼그리고 앉아 있다.

"할매"

"와"


(부지깽이로 흙바닥을 툭툭 치며)


"우리 부엌 흙바닥은 왜 이리 올록볼록하게 튀어나왔노?"
(흙으로 된 바닥이 달걀판처럼 생겨서 둥근삽으로 긁어내도 다시 원래대로 되었다.)


"이거는 이 집에서 훌륭한 사람이 나오려고 그런 기다. 다른 집에 가봐라. 그런 데가 있는가."

나는 그 말을 오랫동안 마음속에 담아 두었다.



이 글을 쓰면서 할머니가 사무치게 그리워 눈물이 나려 한다.


"할머니 사랑해요. 너무 보고 싶어요. 곱게 잘 키워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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