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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pr 27. 2023

"유리병 속에 사탕알처럼 유난히도 반짝거리누나."

제 15화 추억소환 낯선 남자들 편

우리는 살아가면서 누구나 크고 작은 일들을 당한다.


때론 당당하게 맞서지 못하고 속으로 삭여야 했던 시간들이

가슴속에 보이지 않는 멍을 만들었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견뎌오며 살 수 있었던 건 나는 충분히 아름답고

사랑받을 가치 있는 이 세상에 단 하나의 나였기 때문이다.


(가장 가슴에 남아 있는 작은 에피소드들을 기억으로 엮어 본다)

 



열두서너 살 무렵이었나.


부엌 옆엔 장독대가 있다.

갖가지 양념들이 소리 죽여가며 보골보골 익어 가는 곳.


가끔 나는 장독대에서, 가마솥에 데운 뜨거운 물을 적당히 식힌 다음 큰 물통에 담아서 두곤 했다.

어둑해지고 사방이 조용해지길 기다렸다. 목욕을 하기 위해.


거의 다 씻고 옷을 입으려고 했을 그때였다.
대문 옆 큰 무궁화나무 옆에 사람 그림자가 어른 거렸다. 언제부터 훔쳐봤던 것일까.
 

“거기 누구세요!”     


나는 고함을 지른 뒤 주섬주섬 옷을 껴입었다. 그리고선 릴레이 선수하던 달리기 실력으로 바로 도망치는 남자를 따라갔다. 내가 그렇게 빠르게 따라올 줄 몰랐겠지.


숨이 찰 때까지 따라가서 어디로 들어가는지 이젠 내가 지켜봤다.

그 집은 동네에서 거의 막다른 길 꼭대기에 있던 W 오빠네 집이었고, W 오빠 아버지였다. 그리곤 아무 일도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어분골 근처 밭에 일하고 있을 때였다. 근처 W 오빠 아버지가 밭에서 일하는 모습을 멀리서 봤다.

뒷모습을 보면서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훔쳐봤는지 그때는 오랫동안 생각했다.     






아홉 살로 돌아간다.


늙은 총각이었는지, 도시에서 데려온 어린 신부랑 결혼한 상태였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나를 동네 조그만 점빵근처.

경운기가 논으로 내달리던 다리 밑으로 데리고 갔다.


“아저씨가 용돈 줄게”   

  

“......”


피부가 뽀얗고 또래보다 키가 컸던 나에게 동전 200원을 주었다.

그걸로 나는 100원 자리 스낵과자를 두 봉지 사서 동생과 나눠 먹었다. 그때는 무슨 생각으로 돈을 줬는지 자세히 알 수는 없었다. 나를 아래위로 쳐다보긴 했으나, 내가 귀엽고 예뻐서 주는 걸로 생각했다.

(그런데 왜 다리 밑에서 주셨을까.)






 갓 열네 살이 될 때였다.


 J 댁에 입양 와서 사는 오빠가 있었다.
 할머니가 없는 사이 우리 집 마당에 왔다.
 

“너 우리 집에 놀러 올래?
 맛있는 거 사줄게”
 

나는 호의로 받아들였다. 맛있는 과자를 먹으며 노는 것이라 생각했다.
 

“할머니 J오빠가 집에 놀러 오래. 맛난 것 사준다고”     


할머니께 맞아 죽을 뻔했다. 한 번만 더 그런 소리 하면 얘기하라고. 나도 놀러 가기만 하면
다리몽둥이를 분질러 놓겠다 했다.    

 




열셋의 소녀일 무렵쯤.


초등학교 선생님의 숙직실 옆 좁은 화단에 짙은 자주색 모란꽃이 선명하게 피어 있었다.
정말로 붉은 꽃물이 떨어질 듯 가던 길 멈칫멈칫. 요즘 말로 하면 '핫플'이 되겠다.

(다시 언급할 정도로 빼어난 장소였어...)


핫플을 지나 초등학교 뒷문을 일자로 가로질러, 소나무 밭을 지나면, S상회가 있었다.


나는 언제부터 맛을 봤는지 모르겠지만(아마도 동네에서 제사 때가 되면 집안 어른인 할머니께 인사하러 오신 친척들이 설탕과 분유를 사 오신 거 같다.) 어느새 분유에 맛을 들였다.

분유에 설탕을 적당히 섞어서 먹는 맛이 천국의 맛이었다고나 할까.

(눈이 큰 남자아이가 모델이었던 그 분유였다.)


그곳 주인아저씨는 우리 할머니뿐만 아니라 아버지도 아는 사이다.
예순 언저리의 주인은 자그마한 눈으로 나를 볼 때마다,
 

“너는 참 [숙성]하구나”
 

그러면서 분유통을 건넬 때마다 손이나 손등을 슬쩍 만지기도 했다. 성숙하다는 단어는 익숙한데.

늘 '숙성하다'라고 말하는 아저씨를 생각할 때마다 묘한 어감과 그 눈빛이 생각이 난다.





열일곱 살 때의 기억저편에.


우리 고등학교 위에는 S 여자중학교가 함께 있었다. 점심시간에 보랏빛 등나무 밑 벤치에 앉아 있었는데   

S 여자중학교 남자 선생님 한분이 내게 말을 걸었다.


"너는 어느 중학교 출신이니?"


나눈 다른 이야기는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보라색 반팔 블라우스를 입은 1학년 여고생이었다는 기억 외에는.

며칠 뒤 반친구가 위쪽에 위치한 S 중학교 선생님께서 J중학교 다녔던 날 찾는다(혼자 J여고에 배정되었다.)며 잠시 1층에 내려오라 했다고 말해줬다.


"시골에 안 내려가는 주말에 나랑 바로 뒤 B산에 등산 가지 않을래?"


이후 50대 후반의 여자중학교 선생님과 B산에 올랐다. 우거진 초록 숲길의 긴 능선을 타면서,


"우리 손만 잡고 가지 않을래?"

(그러면서 손으로 내 볼을 만졌다.)


조금 야릇한 느낌이었지만, 손을 잡았다.

산을 내려오면서 다음에 다시 날짜를 잡아서 같이 가자고 하셨다.


조금만 이상야릇한 느낌이, 등산 후 더 많이 괴상 야릇하게 여겨졌다.

나는 다음에 함께 갈 날짜를 정하고는 나가지 않았다.






스무 살 무렵의 터널이 지나간다.


출근시간 만원 버스를 타고 가는 길.

말쑥한 정장차림 양복을 입은 60대 초반의 아저씨(정확하진 않다)가 계속 나를 쳐다보았다.

 

당시 나는 앞머리는 뱅스타일에 뒷머리는 어깨에 닿을 듯한 길이의 가발(당시 머리카락이 없어서)을 쓰고 있었다. 누가 보면 조금 모자라 보일 수도 있겠다. 내 눈매에는 총기가 서려 있었지만.(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다리 사이로 손을 넣어 허벅지에서 몸 중심부위로 슬그머니 올라왔다. 순간 움찔하니 급하게 손을 뺐다.

몸에 소름이 쫘악 끼쳐 왔다.


'변태 중에 상변태.'


번지르르하니 아래위로 말끔하게 잘 차려입고 비겁하게 만원 버스에서.

내가 아무 소리도 못 낼 줄 알았나...


"......"


사실 아무 소리도. 끽~ 소리도 못했다.

순간 너무 놀라서 기회를 놓치기도 했지만, 나만 가만히 있으면 조용하게 넘어갈 일이었기에.






스물대여섯을 넘어서던 어느 날.


유독 짙은 여름날 밤이었다.

더워서 짧은 옷을 입고 자고 있었다.

어느 순간 일정한 소음이 들렸다.


"달각...달각..."


눈을 감고 가만히 있었다. 무서워서 눈을 뜰 수가 없었다.


살짝 실눈을 뜨니 길가로 난 창문이었는데 빡빡머리의 남자가 지나다가 담을 넘어 내 방 방충망을 뜯고 있었다. 얼마나 오랫동안 나를 훔쳐보며 '달그락' 소리를 내면서 그러고 있었던 걸까.


내가 일어났는데도 무서워하지도 않고.(심지어 나를 쳐다봤다.) 고함을 치니 그제야 담을 넘어서 도망쳤다.

(당시 방충망에 손만 닿으면 전기가 흐르는 발명품이 나왔으면 하고 바랐다.)






쏜 화살 같이 세월이 흘러갔다.


마음에 담긴 멍을

글로 새겨 내어

투명한 유리병에 담아 본다.


초록빛, 노랑빛, 파랑빛.

붉은빛, 보랏빛, 주홍빛, 쪽빛.


일곱 가지 편린들이

유리병 속의 사탕알처럼

유난히도 반짝거리누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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