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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Apr 21. 2023

"이 노래에 맞춰서 안무를 짰던 기억이 나느뇨?"

-제 14화 추억소환 소꿉친구 편-

   

“미리내 미리내 우리의 젊음이 모여드는 곳”


“미리내 미리내 수많은 생각이 합쳐지는 곳”


“꿈이 있고 내일이 있기에 아아아아”


 “우린 지금 초라해도 눈빛만은 밝아요”

 (오방희의 '미리내' 중에서)


우리 집 대청마루에서 엉덩이를 흔들면서 이 노래에 맞춰서 안무를 짰던 기억이 나느뇨?     


무슨 대회에 나갈 춤연습인지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는다. 면민 체육대회나 장기자랑대회였는지. 지금의 아이돌 못지않게 모이면 춤연습을 하면서 놀았던 죽마고우들.
내가 동생을 그렇게도 따돌리고 같이 몰려다닌 친구들. G야. H야.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온 동네 감나무 홍시 따먹으러 다녔던 것이다. 때론 몰래 따먹다가 주인에게 들켜서 혼난 적도 있었다.


먹어도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았고, 먹어도 먹어도 질리지 않는 홍시였다.



"니네들 용돈 벌이 하는 데 있는데 갈래?"


"뭐 하는 건데요?"


"고구마 입줄기 따는 일이다."


하루는 용돈벌이하러 가자는 어른들의 말에 셋이서 고구마 잎줄기를 따러 갔었다. 반나절을 하고 이천 원을 받고 얼마나 즐거웠는지.
 

그 돈으로 우리가 도시에 놀러 가자는 말이 나왔을까.


당시 마을 회관 벽면에 도시의 큰 할인점에서 세일한다는 벽보가 붙은 적이 있었다. 우리는 위치를

정확히 잘 모르니 그 종이를 몰래 뜯어와서 시내에 나갈 계획을 세웠다.      

거기에는 시내 유명한 관광지가 귀퉁이에 안내되어 있었다.
 

“여기 봐 C관광지가 터미널에서 600미터 남짓 거리라고 되어 있어”


버스는 한 시간 1대씩 정도로 있었다.

우리는 처음으로 버스를 타고 시내를 나가보는 거라 들떠 있었다.


막상 나가보니 어디가 어딘지 알 수가 없었다. 깡촌에서 온 촌년들.

불과 600미터 남짓한 거리에 유명한 C관광지와 N강 다리도 있었지만 찾지 못했다.
(정확한 상황이 기억나지 않지만 불안하고 무서워서 같은 자리를 뱅뱅 돈 거 같다)


결국은 터미널에서 간단한 간식거리를 먹고 놀다가

다시 버스를 타고 돌아왔다.     



봄이 되면 바구니를 들고 나물 캐러 다니던 봄 소녀들.

쑥, 냉이, 쑥부쟁이를 많이 캐러 다녔다.

캐고 난 뒤 누가 제일 많이 캤는지

양도 재어 보고. 누가 뒤꽁무니 뿌리가 깨끗하게 다듬어졌는지도 검사한다.



찔레향이 코끝에 머물러 설렘을 피워오고

연한 찔레순이 입안 가득 침을 고여온다.

우리는 그렇게 온 봄을 끼고돌며 자라나고 있었다.


 

어느 추석날 밤이었다.


당시 시골에는 또래도 많고 동네 오빠들도 많았다.

특히 명절이 되면 도회지 나가 공부하던 학생들도 돌아온다.


그날은 H네 집에서부터 시작된 걸로 기억한다.     

G와 H 그리고 동네오빠 J와 조그만 방에서 술을 마신 것이 문제가 된 것이다.


J오빠는 우리 셋을 데리고 늦은 밤에 술을 마시고 운전을 했던 것이다.
당시 고등학교 1학년이었던 우리 셋은 아무 생각도 없이 동석을 했다.    

 

명절이라 비상근무를 했었던 경찰의 검문에 딱 걸렸다.     

당시 나는 술을 마실줄도 모르면서 너무 마셔서 정확한 기억이 없다.

다만 경찰 단속에 걸려서 파출소에 끌려 들어간 후,
 

“우리 신경 끄고 당신네들 자식이나 신경 쓰세요.”
 

술에 취해서 이 한마디를 하고, 나이 많은 경찰관에게 뺨을 세게 얻어맞았다.    

 

이후엔 온 동네가 난리가 났던 걸로 기억한다. J오빠 부모님은 그 문제를 해결하느라 여러 번 경찰서에 끌려가서 조사를 받았다. 우리는 미성년자라서 반성문을 냈던 기억이 난다.

이후 다시는 술을 마시지 않으리라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올해 1월엔 A시에 살면서 B군에 직장이 있는 친구가 3명이 다른 도시에 사니 중간 지점에서 모이자고 했다.
그 도시는 N시로 낙점되었다. 수학여행 때 말고 한 번도 온 적이 없는 곳이었다.
예스러운 도시는 길가에 눈꽃을 담고서 아담하게 늘어서 있었다.


아무 말하지 않아도 함께이기에 행복한 시간이었다. 사진을 점점 찍기 싫어하는 나였는데

돌아와 보니 많이도 찍어서 문자로 보내주었다. 남는 게 사진이라는 말이 실감 나네. 칭구야.



친구들아 언제 다시 모여 엉덩이 흔들며,
 

“아아아 우리 가슴을 흠뻑 적셔 줘요”
 

노래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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