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쁘장하게 생긴 아가씨는 몇 살이고?"

제7화 집에 대한 단상-내 영혼에 흠집을 낸 자취방-현 진양호로 주위

by 윤슬





고등학교를 졸업하였다.

대학교에 진학하지 않았다.

고등학교 3학년 담임이셨던 영어담당 K선생님의 소개로 천막을 만드는 사장님과 태어나서 처음으로 그렇게 비싼 소고기를 구워 먹는 식당에 가봤다.


'이렇게 비싼 고기를 숯불에 구워 먹는구나.' 했다.


담임선생님께서 어렵게 마련한 자리인 데다가 돈을 벌 생각은 있었으므로 마지못해 나간 것이었다.

하지만 맘에 들면 일할 생각도 있었다. 앞머리숱이 많이 없던 그 나이 든 사장님과의 식사는 몹시 불편하였다. 처음으로 이런 방식으로 고기를 먹어 보는 것으로 맛은 꽤 있었던 걸로 기억이 나나 많이 먹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 사장님은 한점 한점 공손하게 예의를 다해 고기를 구워 정말 아무도 신경 안 쓰고 고기의 붉은빛이 막 가시자마자 맛있게 드셨다.




그리고 그 지긋지긋하면서 탈도 많던 J여고 주위 자취방을 미련 없이 떠났다.

다음으로 옮긴 곳은 J교대 주위 주인이 없는 자취방만 ㅁ자 형태로 몰려 있는 곳이었다.

어쩌다가 그리로 갔을까.

당시 같은 반 J의 소개로 그 주위에 있는 H교회에 다니고 있어서다.

그 자취방은 여러 부류의 학생들과 직장인들이 섞여 있었다. 제일 많았던 부류는 당연 J교대 학생들이며

교회의 성경공부 모임의 선생님들이기도 했다. 직장인 언니들도 있었고 나 같은 전자부품 공장에 다니는 사람도 포함되어 있었다. M언니가 자취방 사람들의 돈을 걷어서 주인에게 주기도 했고 간혹 전달사항도 언니를 통해 듣곤 했다.


젤 안쪽에 있던 방은 부엌이 샤워까지 할 수 있을 정도로 컸다. 연결된 손바닥만 한 방보다 부엌이 2배 이상 큰 곳으로 이곳을 운 좋게 사용하게 되었다.

(아마 나무 대문 오른쪽의 문간방에 살다가 누가 나가고 난 뒤 그쪽으로 이사를 한 거 같다.)

이 큰 부엌의 북쪽 방향으로 난 창문은 호리호리한 젊은 남자가 통과하면 꽉 낄 정도의 크기였다.

처음 이 방에 이 자취촌의 터줏대감인 M언니가 살았는데 아니나 다를까.

딱 그런 남자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그 좁은 부엌 창문을 뚫고 M언니 방에 쳐들어왔다.


그리고 내가 그 방에 가고 나서 그 창문을 통과 못한 남자들의 여러 차례 시도가 있었다. 이후

그 창문은 수리를 하여 폐쇄시킨 걸로 안다.


이 자취방은 J여고 첫 자취방보다 작은 듯했는데 방 개수에 대한 강한 미련이 있어서 찐한 연둣빛 암막천 같은 걸 사 갖고 와서 방을 분리해서 두 칸을 만들었었다. 누가 와서 보고 분리시킨 방이 너무 작아서 기겁을 했는데 이후 사람이 오면 커튼을 개방해서 1개로 만들고 혼자 있을 때는 커튼으로 손바닥만 한 공간을 2개로 만들어 안쪽분리된 공간(방이라 할 수도 없다.)에 스탠드 같은 무드 등을 켠겨 같다. 지금 생각하면 왜 그랬는지 이해는 되지만 얼마나 갑갑했을까.


아버지가 어김없이 찾아와서 당시 9만 원이나 되는 거액을 내놓으라 해서-같이 온 뚱뚱하고 짜리 몽땅한 아줌마도 있었다-드린 게 아니라 빼앗긴 게 맞는 듯하다.


T전자부품 만드는 공장에서 일을 했다. 아침이 되면 통근 버스가 와서 데리고 갔고, 저녁에 야근까지 하면 밤 10시쯤 자취촌에 떨어졌다. 그날은 혼자 남아 통근 버스기사* 아저씨와 단둘이 자취촌까지 왔다.


"예쁘장하게 생긴 아가씨는 몇 살이고?"


통근 버스기사 아저씨의 눈빛은 요상하게 이글거렸다.


[좌:소포니스바 앙귀솔라(1532-1625)피아노 치는 자화상의 일부/우:요하네스 베르메르( 1632-1675)진주 귀걸이를 한 소녀]

(저랑 가장 비슷한 이미지의 20세 무렵의 여성을 새벽 내내 찾았으나 없었어요. 그림에 나올 만큼 아름답지도 못할뿐더러 그나마 앙귀솔라의 하얀 피부가 닮아서 올려 봅니다.^^)



*통근 버스기사님을 전혀 비하하는 의도는 없습니다.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