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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Sep 02. 2023

"바로 그때. 띵동. 띠리리리링 현관문이 열린다."

퇴근 후의 소소한 일상이야기





비가 온다. 글쓰기 좋은 날씨다. 일하면서 마치자마자 '자전거를 타러 가야지' 하면서 시름을 달래고 있었다. 집에 오니 설거지가 한가득이다. 만 15세 남은 가르쳐줘도 잘 안 한다. 늘 던져놓기 선수다. 다행히 자기 방에 처박아 놓지만 않아도 다행인데 한 번씩 믹스기 볼이 없어서 가보면 어딘가에 처박혀 있다. 대학생 여는 나를 자주 놀라게 한다. 바쁜 와중에 틈틈이 식기세척기를 돌려놓는다. 어떤 때는 내가 퇴근 직전에, 집에 저녁 먹으러 와서 돌리곤, 부엌싱크대 앞이 물기에 젖어 있곤 한다. 그러면서 빵긋 웃으며 '엄마 내가 돌려놨어'할 때는 예쁜데 정말 더 예쁘다.


1시에 땡 하고 마치고선 집에 들어오니 또 아무도 없다.



9시 51분에 한창 바쁜 일하던 시간에 아들 학원 원장님 문자가 도착했다.

[Web발신]

안녕하세요 A침에 학원입니다.

오늘 자녀분 10시 보충수업이 있습니다~

혹시 자고 있다면 깨워서 보내주세요.


으이그. 또 자고 있구나. 급하게 겨우 연락을 취해 학원을 보냈었다. 토요일 일하는 시간마저도 아들에게 관심을 거둘 수가 없다. 나는 언제 쉬노. 제길. 일하면서도 아들의 동선을 생각하며 챙겨야 하다니. 다 내 복이다.



오전에 틈틈이 자전거 탈 생각에 좁은 창틈으로 바깥을 내다보니 날씨가 좋다. 앗싸. 날씨가 내 맘 아네. 날 위로해 주는구나 싶었지. 집에 와서 걸신들린 듯 어제 공동구매해 온 배추겉절이로 국그릇에 머슴밥을 먹었다. 그릇을 싱크대에 조용히 묻으려는 순간 이건 아니다 싶다. 눈에 띄면 못 놔둔다. 최소 식기세척기 준비기간 10분이다. 세척기에 넣을 그릇을 정리하고 있는데 환하던 거실이 점점 어두워진다... 그리고선 내 뒤에서... 알 수 없는 음산한 기운이... 나를 잠식해 온다. 마치 거대한 외계 생물체가 멀리서 걸어 나오면서 쿵... 쿵... 그 그림자로 내 몸부터 서서히 가두리 쳐 오듯이... 이건 뭐지... 아 무서워... 뒤를 돌아볼 수도 없다... 아아아 아아앙.


바로 그때. 띵동. 띠리리리링 현관문이 열린다.


"엄마 배고 파요."


너무 무섭다. 저 말이. 어떤 외계생명체가 34층 아파트 보다 큰 덩치로 덮치는 것보다 말이다. 학원 갔다 돌아온 아들의 공포스러운 저 마아아아알... 여기까지 ㅎㅎ 자전거 타러 못 가니 내가 미쳤나 보다.


바로 그 공포스러움은 점점 맑던 하늘이 갑자기 회색빛으로 뒤덮여오는 구름이었던 것이다. 그래 내가 좀 더 식세기 안 돌리고 일찍 나섰다면 최애보물 자전거와 내가 비에 흠뻑 젖었겠지. 식세기 돌릴 때 비가 와줘서 고마워. 개뿔 고맙긴. 그냥 여기까지 쓰고 그만  쓰고 싶다. 사실은 포도 얘기를 쓸려고 앉았는데 말이다. 혹시나 알람을 대부분 꺼 놓으셨겠지만 시도 때도 없이 행여 관종이 되어 글을 올릴 수 있는-벤자민 나무모양의 윤슬만 꺼 두시기 바랍니다. 끝.

(좌:비 오는 가운데 펼쳐지는 오후 2시 정각 분수쇼/우:바로 이어 포도 얘기 쓸래요.)




(P.S)

그렇게 맑던 하늘이 급 어두워지더니 비가 쏟아지네요. 이렇게 비가 와도 분수쇼를 하고 있어요. 거참. 그래도 보기 좋네요. 식세기 돌리면서 포도에 관한 글을 쓸려고 사진을 한 장 찍어 놨는데 비도 오고 종일 거실 구석에 앉아 글이나 쓰렵니다. 진짜로 죄송해서 그러니 알람을 꺼주세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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