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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Sep 02. 2023

"나는 돌담벼락에 서서 몰래 침을 꼴깍 삼켰다."

포도에 얽힌 이야기

 





"S야 할머니와 같이 먹어."



동생과 나는 자다 깬 얼굴로 재빨리 디딤돌 위에 올려진 작은 광주리에 담긴 제삿밥을 챙겼다. 거기엔 갓 지은 흰쌀밥과 나물류가 종류대로 들어 있고 과일이 조금씩 들어 있었다. 나는 그때 이 나무 광주리에 든 검은 알포도맛을 잊지 못한다. 그 맛 또한 지금까지 기억한다. 조금만 더 주셨으면 좋았을 텐데... 어린 동생과 나는 참 아쉬웠었다. 거기다 동생은 게눈 감추듯이 먹어대는 언니통에 제대로 포도 한 알이라도 맛을 봤는지 기억이 안 난다. 늘 반송이도 아니고 4분의 1 정도 못되게 예쁜 모양으로 담겨 있었다.


그날은 석종구네 조부모님 제사상이었나 보다. 늘 먹을 것에 굶주렸던 나는 내일은 누구네 제사라도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또한 할머니와 같이 사는 손녀였기에 동네에 있는 모든 제사상의 호사는 모두 누린 듯하다.

(좌:제사에 빠질 수 없는 나물류/우:저렇게 생긴 광주리에 담아서 이른 아침에 갖다 주셨다.)
(꼭 이 정도 크기로 예쁘게 담아서 갖다 주신 검은 알포도.)




나는 돌담벼락에 서서 몰래 침을 꼴깍 삼켰다.


'아 나도 너무 먹고 싶다. 저 검은 포도알. 저 알포도...'


그날 오후 무심코 죽마고우 H네 집을 지나고 있었다. H 네 집 밖으로 난 부엌에는 장독대가 있었다. 장독대에 드리워진 그 포도나무. 그 한 그루는 모든 장독대를  덮고 있었다. 포도나무가 처지지 않도록 나무로 엮어둔 지지대 사이로 포도가 주렁주렁 달려 있었다.


"다 따 먹어."


"아 진짜 달다. 오빠 다 따먹고 가."


그날 내가 본 풍경의 기억에는 H와 그녀의 친오빠. 또 다른 죽마고우 G와 그녀의 친오빠 이렇게 4명이었다. 아 나도 오빠가 있었으면 좋겠다. 오빠 따라 저기 들어가서 실컷 따 먹을 수 있었을 텐데.

(비슷한 장독대 위의 포도 사진은 없어서 그냥 가장 맛나게 주렁주렁 달린 포도사진을 인터넷 검색으로 찾아 왔다.)




언제부터인가 사람들이 나와 포도 먹기를 싫어한다. 언제부턴가... 나는 포도씨를 뱉지 않는다. 지금도 포도를 아주 좋아한다. 오늘도 그 생각을 하면서 어제 사 온 포도 1박스를 다 해치웠다. 물론 우리 집엔 아무 경쟁자도 없어서 재미도 없지만, 나는 그렇게 포도를 좋아한다.



(P.S)

이런 제삿밥을 기억한다면 정말 시골에서의 정을 기억하는 분이실 겁니다.ㅎㅎ 그때는 제사만 지내면 온 동네에 광주리를 들고 음식을 나눠 먹었죠. 지금도 시골 어디선가에는... 그리고 나의 고향 지수는 아직 그럴 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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