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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Sep 08. 2023

"글을 닫으려고 하는데 익숙한 향기가 풍겨 나왔다."

여자의 행복에 대해 생각하다...





하루의 마지막을 보내고 다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되는 시간을 창가의 나방들과 함께 하고 있다. 나방이라도 있어 덜 외롭다. 이 녀석들 글을 못 읽으니 참견할 이유도 없다. 혼자 사색의 흐름을 따라 적기만 하면 된다.

이따금 멀리서 오토바이 부릉거리는 소리가 아득히 들려온다. 바람을 가르며 먼 곳을 향해 푸른 눈빛으로 내려 달리는 자동차도 있다. 이 시간은 경전철의 온기가 가신 지 오래지만 멀리 다리사이로 새어 나온 은은한 불빛은 낮동안 달궈진 철도를 식혀주는 듯.


바람이 분다. 확연히 다른, 여름의 뜨거운 숨을 비워 낸 오묘한 바람이다. 이따금 멈추었다 불어 내면, 창가의 얉은 세사커튼이 수줍은 듯 일렁인다. 내 마음의 바람도 인다. 이따금 얼굴이 붉어져 온다. 그 마그마도 일렁거려서.

(좌:이른 새벽의 바깥풍경/우:딸아이가 준 마우스 패드)


요 며칠 아니 뜨거운 한 여름밤부터 한 가지 생각이 계속 일어선다. 참 촌스럽기도 하지만 여자의 행복이다. 그래서 여자인 나의 행복은 무엇일까. 무척 거창한 질문일 거 같지만 나의 답은 너무 간단명료하다. 바로 그것은 한 남자에게서 사랑받으며 평범한 일상을 영유하는 것. 생각하고 또 생각해도 이 나이가 되어서 생각해도, 지금도 어제도 변함없이 그것이 여자로서, 또한 지금의 나로서 가장 큰 행복이 아닌가 싶다.


그러면서 나 자신에게 다시 물어본다. 과연 5년 전 10년 전에도, 20대에도 같은 생각을 했던 것이냐고. 솔직히 말하면 그것은 아닌 것 같다. 오늘은 여기까지 쓰자. 앞으로 더 사색할 많은 가을이 남았으며 이 달고 시원한 바람도 이제 시작되었다. 차분히 정리를 하면서 왜 내가 한 남자의 사랑을 받으며 사는 것이 그 어떤 유명한 작가가 되는 것보다, 일확천금을 버는 것보다 훨씬 더 행복한 것이라고 생각하는지를. 이제 와서야 말이다.




글을 닫으려고 하는데 익숙한 향기가 풍겨 나왔다... 아까부터 눈여겨보고 있던 곤충이었다. 어린 시절 골 깊은 산속 산딸기나무에 붙어있던 보호색으로 무장한 곤충과 모양이 거의 똑같다. 이 녀석은 색깔만 초록일 뿐. 산딸기나무에 붙어 있던 같은 모양의, 곤충 색깔은 나무줄기와 똑같았다. 그리고 꼭 이 녀석은 그렇게 달디 단 가장 큰 산딸기에만 붙어 있었다.


노란 주전자에 산딸기를 가득 담아 내려오다 배가 고프면 슬쩍 손을 넣어 한 움큼씩 이 벌레와 같이 입속에 들어가기도 했었다. 이 맛이란 참 기괴했고 그 향기를 35년을 훌쩍 넘긴 지금도 정확히 기억한다. 그런데 갑자기 이 벌레에게서 같은 냄새가 심하게 풍겨 나온 것. 자세히 들여다보니 다리를 몹시 오글거리면서 떨더니 그 향을 방출하는 것이다.

(좌:이렇게 높은 층 방충망에 매달린 산딸기 나무에 붙어 있던 벌레/우:다리를 심하게 오글거리며 떨면서 향을 방사한 후 더 높이 위로 기어 올라간 벌레)
(평생 먹어도 질리지 않는 그 맛. 늘 어린 시절의 모든 기억 감춘 산딸기나무)

이 늦은 새벽시간에 무슨 의미로 내게 이렇게 짙은 향을 방사한 거니. 참 여러모로 외로운 마음에 벗으로 다가온 썩 달갑지 않은 이 또한 외로운 벌레들이여.



(P.S)

이 글보고 제철도 아닌 산딸기 먹고 싶을까 봐 걱정입니다.^^ 오늘 새벽에 쓴 날것의 글을 오타 수정해 올립니다. 익혀 드리지 못해 죄송합니다… ㅎㅎ

오늘도 잘 보내고 계시죠? 남은 하루도 기분 좋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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