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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Sep 17. 2023

"무엇이 나를 이토록 바쁘게 하는가."

벌초하러 갔다가 언니집에서 가족이 모여 함께 식사하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바쁘게 하는가. 브런치 그 짧은 글도 정독 못하게끔. 누군가의 동영상 한번 편안하게 처음부터 끝까지 재생버튼에 손을 대지 않고 천천히 보지 못할 만큼. 무엇이 그렇게 바쁜가. 그토록. J(It' me 이니셜)야.



아리아에게 클래식을 주문했다. 그리고 거실 창문을 열었다. 다리사이로 갈바람이 들어와서 장딴지 근처 가는 솜털을 간지럽힌다. 그리고 턱을 괴며 간간히 생각한다. 너 주말 동안 뭘 했니. 글은 쓰고 싶어서... 아니면 이렇게 분주한 마음을 정리라도 하고 싶어서 노트북을 켰는데... 복잡한 마음에서 무슨 얘길 할 거니라며 자기들끼리 속딱거린다. 할 얘기도 많고 정리 안된 마음으로 앉았는데... 서서히 괴인 턱을 풀고 정리해 나가야지. 멀리서 클래식사이로 경전철 철커덩거리는 소리가 리듬을 타면서 들려온다.


밤새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다. 아 아버지와 할머니 산소에 동생과 제부 셋이서 벌초하기로 했는데. 간간히 거실 통유리창으로 번개가 번쩍인다. 꿈결에도 생각한다. 안돼. 오늘은 꼭 가야 해 아버지와 할머니 만나러. 그러던 사이 아침이 되었고, 차가 막힐까 봐 동생이 일찍 온다고 했는데 8시 40분경 아파트 정문에 도착했다. 미리 편의점에서 제부 줄 아메리카노커피를 2+1으로 사서 마시면서 기다렸다. 차에 타자마자 술기운이 아니라 커피기운이 돌아서인지 쉴 새 없이 동생에게 떠들었다. 요즘 직장 돌아가는 상황과 두 아이들 얘기며, 딸은 현타가 왔는지 새벽운동-그 어렵다는-편입 위한 인강을 오늘도 새벽 6시부터 듣는다는 둥. 마치 카셋테이프 돌아가듯이 참새처럼 조잘거리자 동생은 일일이 추임새를 돌리며 반응했다.


그러던 중 고향에 도착했다. 그렇게 비가 많이 왔는데, 분교가 되어버린 국민학교며, 40년간 같은 자리에서 같은 송정상회 간판을 달고 있는 구멍가게를 지나 산소에 도착하니 햇빛이 눈이 부시다. 무슨 날을 잡은 것인지 어분골 골짜기 올라가는 입구에 많은 벌초 차량이 있어서 놀랬다. 요즘은 벌초 서비스를 받는 사람이 많은 듯. 멀리서 보니 어릴 때 밭사이에 있었던 대나무가 산소가 있는 땅을 다 뒤덮어 멀리서 보면 대나무밭으로 보인다. 입구에서부터 무성한 수풀이 가로막아 제부가 제초기로 일일이 길을 만들면서 올라갔다. 여기저기서 제초기 소리가 되돌이표 노랫소리로 들려왔다. 올라서자마자 가는 줄무늬의 산모기가 덤비기 시작했는데 동생은 뒤따르며 온 산소주위를 에프킬라향으로 뒤덮을 기세로 뿌려댔다. 제부는 땀범벅이 되어 제초기 전동기가방을 매고 할머니, 할아버지, 아버지 산소주위의 모든 풀들을 갈기 시작했다. 나와 동생은 간간히 낫과 톱으로 근처 거슬리는 대나무와 잡풀을 정리했다. 그리고 동생은 토실한 밤을 줍기 시작하고, 제부의 온몸이 비 온 듯이 물이 흘려 내려서야 벌초 작업이 끝이 났다. 그리고 우리 셋은 인사를 하고 하산했다. 제부의 뒷모습과 등이 그렇게 넓어 보일 수가 없다. 직접적으로 제부에게 고맙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진 못했지만 진심으로 제부에게 말할 수 없는 고마움이 밀려왔다.


내려오면서 여유가 생겨 아무렇게나 뒹굴어대던 호박과 어릴 때 [엄마짓찌]라면서 따먹던 친근한 풀들과 깻잎모종이 자란 밭을 둘러보았다. 아버지, 할머니 다시 올게요. 우리 아이들 둘 건강하게 잘 크게 해 주세요. 저는 더 바라는 게 없어요.

(좌:자연산 호박/우:지천에 널린 엄마짓찌라 불리던 식물)
(동생과 그 초록잎을 많이 따먹었단 얘길 했다. 배고프던 시절 그 시(새)콤한 맛.)
(좌:농부의 정성이 한껏 들어간 들깨모종들/우:대나무로 엉켜버린 선산. 저 안에 산소가 있다.)


언니는 몸이 아파서 산소에 자주 오질 못한다. 점심을 준비할 테니 와서 먹고 가라고 해서 우리는 J시로 갔다. 마침 언니네에는 캐나다에 있는 조카내외가 2주 휴가를 받고 나와 있었다. 닭볶음에 쇠고깃국, 언니 특허반찬인 가지, 호박, 버섯나물과 갈치 고등어 삼치 조기 구이가 나왔다. 맛있게 먹고 과일을 먹고 있을 때였다.



#1


"집 정리하다가 일기장이 하나 발견됐어. 이거 누구 건지 봐봐."


우리 세 명이 선상에 올랐다. 조카 란이, 여동생 그리고 나였다. 그것은 다름 아닌 일기였다. 셋은 번갈아 가면서 냅다 일기장을 훔쳐보기 시작했다. 도통 글씨로 봐서는 알 수가 없었다. 서너 번을 손수건 돌리기라도 하듯이 빠르게 일기장이 돌려졌다. 서로 자기 일기장일까 봐 내용을 보려고 하면 다음 사람이 낚아채는 식이었다. 무슨 그런 비밀이라도 많은 것일까. 깨알 같은 내용이 있었다. 결국은 돌고 돌다가 글씨로는 알 수가 없었다. 다음  단서는 1990년으로 시작되는 것. 조카는 이때 일기를 쓰기 않았다는 것이다. 자 그다음은 내가 슬쩍 훔쳐봤다.


"이승철 오빠가..."


그 말을 한 순간 동생이 재빠르게 낚아챘다. 동생이 자기가 가수 이승철을 너무 좋아해서 쓴 것이라고 했다.

결국은 그 일기장은 여동생것이 맞았다. 조카가 말했다.


"이모 그 승철이 가수 이승철 맞아?"

(좌:언니가 꺼내준 무시무시한 일기장/우:동생의 추석선물과 언니가 해준 밑반찬 그리고 조카가 캐나다서 가지고 온 아이스 와인.)


#2


"J야 외사촌 오빠에게 전화 한번 해."


언니가, 우리가 벌초로 내려온다고 하니 외사촌오빠가 우리랑 밥 먹고 싶어 한다며 꼭 전화하라고 했다.


"네 오빠 안녕하세요. 별일 없으시지요. 건강은 어떠세요?"


"응 그래 잘 지내고 있어. 너네들한테 벌초를 맡겨서 미안하다. 가까이 있으면서 벌초 한번 가지도 못하네. 다음에 시골에 내려오면 꼭 집에 들러서 점심 한번 같이 먹자."


여러 가지로 생각이 많아졌다. 내가 할머니가 치매에 걸려 그렇게 단칸방에서 고생할 때 외사촌오빠는 아주 가까이 살면서 단 한 번도 외할머니를 보러 오지 않았다. 그리고 우리 아버지까지 돌아가신 이후에도 벌초를 하신 적도 없다. 그리고 손녀 딸들이 있는데 굳이 외손자가 벌초하러 갈 일은 또 무엇인가. 지금은 시골에서 블루베리 농장도 하고 돌아가신 고모가 남겨놓은 재산으로 앞으로 사는데 아무 문제없다. 뒤늦게 시골 고향에 내려가서 정착을 하셨지만 외롭고 적적하실 것이다. 내 생각인지 모르지만. 우리가 도움이 필요할 때 한 번도 손길을 내밀지 않았다가 나이가 칠순이 넘으니 우리더러 고향에 내려오면 오빠네에 들러라고 얘기하신다. 그냥 아직 덜 성숙해서인지 참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순식간에 글을 쏟아내고 나니 다시 공원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마음에 뭔가 남은 것이 있는데 다 털어내지 못한 느낌이다. 무엇이 이토록 바쁘게 하는가. 브런치 글 쓰는 시간만큼이라도 나를 온전히 내려놓자. 그리고 쉼을 허락하자. 빡빡한 일정을 조금 내려놓자. 그러려고 하니 헬스 마감시간이 다가온다. 주말은 오후 7시까지이다. 아... 다시 현타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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