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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Sep 15. 2023

"요 근래 계속 감상적인 헛소리만 찌껄이다가,"

[나는 왜 쓰는가]를 통해 나를 돌아보게 한 시간





"모든 작가는 허영심이 많고 이기적이고 게으르며, 글 쓰는 동기의 맨 밑바닥은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 300p-



요 근래 계속 감상적인 헛소리만 찌껄이다가, 다시 잡은 조지 오웰의 저 문장에서 책을 덮고 이건 글을 써야 하는 각이 쟈나 하고 일어나서 노트북 앞에 앉았다. 막상 할 말이 있어 책상 앞에 앉았으나 오웰이 모든 이야기를 한꺼번에 정확하게 축약해 버린 탓에 나는 할 말없는 무음 모드로...


어쩜 저렇게 글 쓰는 나를 적요하게 묘사할 수가 있나 싶을 정도로 놀랍다. 정말 나는 그렇다. 허영심이 너무 많다. 허영심을 정확히 알고 있나 싶어서 검색을 해본다. 허영심이란 허영에 들뜬 마음이다. 그럼 허영이란 무엇인가? 자기 분수에 넘치고 실속이 없이 겉모습뿐인 영화(몸이 귀하게 되어 이름이 세상에 빛남) 또는 필요 이상의 겉치레(겉만 보기 좋게 꾸미어 드러냄).-제길 핸드폰 사전 찾다가 글 마치겠네... 사실 나는 허영심이 많은 사람을 무척 싫어한다. 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점점 내가 그런 사람이 되어가는 것을 느낀다.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만 아니면 다인게 아니다. 내 속은 허영심으로 가득 차 있다. 개뿔 가진 돈도 없으면서 있는 척하는 거. 머리에 든 거도 없으면서 많이 아는 척하면서 둘러대는 것. 다 들통날 일이고 금방 상대는 알아보는대도 말이다. 이런 내 모습이 늘 나타나는 것은 아니지만 열등감에 절릴때 자존감이 심하게 떨어지면 여지없이 허영심은 둥근 보름달처럼 떠오른다.


그리고 나는 이기적이다. 생각보다 너무 이기적이어서 깜짝 놀랄 때가 많다. 그리고 너무 현실적이다. 나이 탓으로 돌리기엔 내 성향이 그리 태어났나 보다. 이런 이기적인 성격으로 이타적인 일을 하는 직업을 가진 것이 놀랍다. 그러면 이기적의 정확한 뜻이 뭔지 다시 찾아본다. 이기적은 자신의 이익만을 꾀하는 것이다. 너무 표현도 노골적이고 적나라하다. 요즘 나의 직장생활을 돌아보게 된다. 아랫사람을 생각하는 척하면서 부장님 방에 가서 나도 모르게 현실적인 내 이익을 꾀하는 본능적인 말솜씨를 본다. 그러면서 곧바로 미안한 마음으로 부장실을 걸어 나올 때가 있다.


나는 또한 게으르다. 정말 바빠서 게으르기도 하지만 내 이전 글들을 보면 음식물 쓰레기를 제때 버리지 않고 냉동실에 차곡차곡 채워놓다가 이것들이 '냉동실 독거음식 쓰레기 일동'하면서 데모를 일으킨 일도 있다. 게으름의 축은 청소를 몰아서 하기이다. 요즘은 아주 조금은 나아졌지만 청소는 아마도 게으름대회에 나가면 1등이라도 할 기세다. 이 집에 이사를 오면서 정리 정돈과 청소가 제대로 안 되는 나는 여동생이 집들이하러 한 달여 만에 와서 기겁을 할 정도였다. 식탁이 없는 자리에 짐을 한 곳에 풀지도 않고 그대로 두어서 동생이 집들이 온 조카들과 내 아들,(내 딸은 제외)제부를 밖으로 내보내고 거의 다 버리고 깔끔하게 정리해 주었다.(어쩌랴 하기엔 민망하지만 할머니 손에서 자란 나는 뭐든지 버리지 못하고 어딘가에 쓸 곳이 있을 테야 라면서 모아두는 지저분한 성격인 탓이다.)


오웰이 나에게 건넨 말이 아닐까? [글 쓰는 동기의 맨 밑바닥은 미스테리로 남아 있다.] 이 표현이 정말 머리를 한대 세게 쳤다. 그는 1903년에 태어나서 1950년에 사망했다. 나는 생각보다 오래된 사람인 줄 알고 이렇게 옛날에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같은 얘기가 통한다 하려고 했는데. 굉장히 현대 사람이구나. 거의 책을 봤는데도 말이다. 종종 글을 쓰는 것은 화가 치밀어 올라서 감정을 가라앉히거나 그야말로 순전한 이기심으로 사람들의 이야깃거리가 되고 싶고 브런치를 빌리자면 라이킷을 누르거나 통계수가 올라가는 목적으로 정도. 그런데 말이다. 요즘은 감상적인 헛소리를 자꾸 하지만 나도 모르겠다. 왜 이렇게 어디선가 불쑥거리며 향이 느껴지고 바람이 불어오고 살갗이 일어서는 일상적인 것에서도 이렇게 예민해지는 것인지 말이다. 그래서 [맨 밑바닥은 미스테리로 남는다]는 말에 격하게 공감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는 연이어 말하고 있다.


"책을 쓴다는 건 고통스러운 병을 오래 앓은 것처럼 끔찍하고 힘겨운 싸움이다. 중략... 그런가 하면 자기만의 개별성을 지우려는 노력을 부단히 하지 않는다면 읽을 만한 글을 절대 쓸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좋은 산문은 유리창과 같다."


-조지 오웰의 나는 왜 쓰는가 300p-


나는 이대목에서는 할 말을 잃었다. 개별성을 지우려는 부단한 노력... 그리고 좋은 산문은 유치장과 같다...

오타로 유치장이라 써서 오웰에게 얼마나 미안했는지 모른다. 유리창 같은 좋은 산문이란 어떤 것일까...

독서 친구가 그래서 에세이에 대한 고민을 할 때 이 책을 권해준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들었다. 겨우 책 한 권 읽고 생색을 내는 것 같지만 이 책은 깊어가는 가을밤 나의 모습을 돌아보고 더 짙은 사색을 하게 만들었다.

(부끄럽지만 살포시 은밀한 글쓰기 공간을 공개해 본다. 너는 별게 다 은밀하구나. 재미가 없어서 앞과 뒤에서 찍어 봤다. 그래도 재미가 없네 ㅋㅋ)




(P.S)

저녁에 알라딘 계정으로 21권의 구매 버튼을 눌렀다. 대략 35만 원 치 정도이며 딱 없는 한 권은 중고서점에 나와 있는데 구하기 힘들어서 가격이 높게 책정되어 올라왔다. 어차피 중고이니 천 원을 책값보다 더 얹어 중고책 중에서도 중고로 샀다. 조금 달라진 나를 기대한다. 지금보다 조금만 더 자신감에 찬 나를 기대한다. 아니 이제 이 나이에 좀 나를 덜 계발해도 되는 건 아닌가... 어떤 작가님처럼 생각이 들기도 하는데 어째 나는 이 나이에도 거지 같고, 한편으로 참 서글픈 생각이 다 든다. 허영심에 가득 찬 거지라니. 세상에서 제일 슬픈 이야기 아닐런지.

  
사랑을 보내며. 곧 무거운 머리 들고 찾아 올게욧.
굿 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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