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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Sep 19. 2023

"하... 오늘은 월요일이다."

직원의 갑작스런 병과와 아들 여드름약 타기





너무 피곤하면 잠을 못 잔다. 사실 머리만 대면 자는 사람인데. 월요병이 생겼는지 너무 긴장하면서 지낸 하루의 여파가 뇌의 시냅스를 쉬이 가라앉히지 못한다. 몸은 지쳐있는데 카페인으로 머리가 깨어 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늦은 저녁을 먹고 소파에 앉아서 라디오를 켰다. 브런치를 스크롤하다가 평소 친하다고 혼자 느낀 작가님의 글에서 위로의 재즈 피아노작품 5곡과 시 같은 감상평을 보았다. 조명을 감추고 감상에 젖었다. 5곡을 다 듣기에 아까울 정도라 2곡은 자기 전에 들으려고 남겨두었다. 브런치를 통해 이렇게 소소한 행복을 느끼는 요즘은 참 행복하다는.


하... 오늘은 월요일이다. 늘 바쁘긴 하지만 토요일과 월요일은 특히 더 그렇다. 출근하자마자 같이 일하던 동료가 열이 39.7도. 아픈 기색이 역력하여 도저히 일을 하기가 힘들어 들어가야겠다고 말한다. 그러면 오늘 혼자서 예진을 다 쳐내야 한다. 상담도 해야 한다. 까짓 껏 하지 뭐. 어찌 된 건지 저번 토요일도 비가 그렇게 오는데도 환자들이 끊임이 없더니 오늘도 역시 날 잡은 기세다. 늘 말을 많이 해야 하는데, 오늘따라 목도 따갑고 아프다. 검사할 환자도 많고. 주말에도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나왔는데 혼자서 일복이 터졌네. 점심시간에도 밀려든 환자로 미리 일을 시작했다. 아 오늘 J과장 망했다.


어제 글을 마무리하고 자면서도 마음속에 풀리지 않는 뭔가가 있었다. 월요일 아침마다 외래 직원들 열댓 명을 모아놓고 간단한 전달사항과 인사를 한다. 저번주 부장님께서 대뜸 오늘 조례모임에 참석해서 외래일은 내게 좀 더 부가시키고 각 부서마다 일을 나눠주고 정리를 할 거라고 하셨다.(다른 부서원에게도 말씀하심.) 무슨 일을 내게 전담시킬 건지 나는 그 말을 한 즈음인 저번 목요일부터 긴장을 하기 시작했다. 이 몹쓸 병이다 정말. 미리 긴장하고 사서 고생을 하는 것이다.


글을 다 쓰고도 '내일 부장님께서 내가 지휘하는 모임에 이른 아침부터 나와서 무슨 얘기를 하실까' 싶어서 걱정이 되기 시작했던 것이 마음속 앙금으로 남아 있었던 거다. 다른 날보다 더 일찍 출근했다. 근데 아뿔싸. 뭐지. 모든 부서원들이 다 모였는데 부장님께서 나오지 않으셨다. 나는 이런 상황에 빠르게 대처하지 못한다. 언제부터인가 그렇다. 그리고 할 말도 제대로 못 한다. 망설이고 배려하고 또 생각하다가 흐지부지 넘어가고 만다. 그러면 결국 나중에 일의 경중이 잘못되어 내게 화살이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 중간관리자로서 선을 분명히 하지 못하고 좋은 게 좋다고 덮어쓰거나 부서원을 제대로 혼내지 못한 것이 쌓여서 결국 나의 고민거리로 돌아오는 것이다. 왜 할 말을 제대로 못 해. 너는 정말로...



그럭저럭 퇴근시간이 다가왔다. 5시 57분이다. 아들의 여드름이 심해서 로이탄 처방을 받으러 가는 날이다. 아들에게 바로 전화를 했다. 학원에 있으니 문자로 하란다. 알지? 오늘 피부과 가는 거? 6시까지 엄마 직장 정문으로 와. 아들은 짜증을 내면서 다시 전화로 답장이 왔다.


"엄마 원장님한테 병원에 간다고 하지? 피부과 간다고 했어요?"


"응. 피부과..."


"원장님께서 친구들 다 있는데서 S야 피부과 다녀와라고 했어요."


"그게 뭐가 어때서... 너 너무 예민하다. 그만해. 엄마 오늘 엄청 피곤하고 스트레스 많이 받았어."


마치고 정문에 나가니 아들이 학원에서 걸어오고 있었다. 피부과 외래 당직 진료는 저녁 7시까지다. 바로 차에 태워서 갈려고 하니 집에 가서 얼굴을 다시 깨끗이 씻어야 한다고 한다. 열이 너무 뻗쳐서 미칠 것 같았다.

내가 그렇게 몇 번이나 세수 깨끗이 하고 진료 가야 한다고 말을 해놨는데... 왜 세수를 안 하고 나왔냐고 하니 도저히 여드름 때문에 두렵고 자신이 없어서 세수 안 하고 파운데이션 바른 상태로 나왔다고요. 어쩌라고요. 이런다.


이미 늦었다. 나는 피부과에 6시 30분까지 가도록 하겠다고 미리 전화를 한 뒤 아들을 태워 집에 가서 세수하는 동안 지하 주차장에 대기하고 있었다. 아파트 주차장에 나오니 6시 31분 정도. 나는 난폭한 운전자가 되었다. 피부과 주차장이 복잡해서 직장 근처 아파트 주차장에 잠시 차를 대었다. 얼마나 뛰고 또 뛰었을까. 숨이 찰 정도로 뛰었다. 피부과에 도착하니 6시 42분 정도. 우리는 꼼꼼한 진료를 보고 로이탄을 처방받았다. 아무 곳에서나 처방이 안 되는 약이라 병원약국에 미리 부탁해서 입점을 해놓은 상태였다. 다시 시간을 보니 6시 51분. 우리는 처방전을 들고 내 직장 약국이 저녁 7시까지라 달리고 또 달렸다. 로이탄을 처방받고 나오니 습기 찬 날씨에 온몸이 땀에 젖었었다. 하루가 길다. 너무 지쳤다.

(좌:2주분 밖에 처방 못받은 로이탄연질캅셀/우:엄청 꼼꼼하게 약에 대한 환자 동의서를 받았다.)


이제 나머지 피아노 2곡을 감상하고 꿈나라로 가야겠다. 굿 나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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