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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Sep 26. 2023

"주짓수에 다녀온 아들 얼굴표정이 밝다."

사춘기아들과의 좌충우돌이야기-학원수업 줄이고  본격적 주짓수 시작한 아들





아들이 생기를 되찾아 보인다. 어제부터 바로 영어학원 수업을 그만두었다. 6시 반에 마치면 바로 주짓수운동하러 간다. 첫날이기도 하고 비도 와서 퇴근하고 30분을 대기했다가 모시러 갔습니다. 뒤에 의자를 눕혀서 자전거를 싣고 중학교 바로 옆에 있는 주짓수 학원에 갔다. 차 안에서 조잘거리면서 들뜬 목소리로.


"엄마. 체력이 3분의 1로 준거 같아요. 이전 스파링 하던 거랑 비교하면요. 빨리 운동해서 체력부터 끌어올려야겠어요. 그래서 이제부턴 해반천으로 해서 달리기로 학원까지 갈게요. 마치고도 바로 뛰어 올게요."


"그래 저녁은 어떻게 하니? 아직 시간이 좀 있으니 마침 학교 근처 공터에 5일장이 서는 날이야. 뭐 간단히 먹자. 순대하고 어묵 갓 나온 거 어때?"


"상관없어요."


사실 내가 그게 먹고 싶었다. 진짜 오랜만에. 예전에 이쪽에 살 때는 자주 5일장에 갔었는데 요즘은 갈 일이 별로 없으니. 비가 많이 오는 것도 아니고 빗물이 술래잡기하듯이 뒤따르며 차창을 때리고 있었던 그때.


"엄마 저 빨리 운전하고 싶어요. 아 그리고 오토바이 진짜 안 돼요? 엄마 저 면허 따자마자 차 사주실 수 있어요? 중고차라도요. 근데 오토바이 왜 안되냐고요?"


슬슬 부화가 오르기 시작했지만 다시 가라앉혔다. 마치 인덕션 불조절로 끊던 냄비에 거품을 가라앉히듯이. 단호하게.


"안된다고 말했잖아. 다시 얘기 꺼내지 마."


아들은 내 목소리를 듣고서 입을 닫아 버렸다. 창밖만 바라보며. 5일장 근처에 차를 구겨 넣듯이 주차하고 후딱 내려서 순대 5천원어치와 어묵은 다 팔려서 떨이하는 거 대충 담아놓은 것을  2천원치를 들고 왔다. 조금이라도 천천히 먹여서 학원에 보내야 하니깐. 좁은 차에 자전거까지 실어서 조수석과 운전석은 거의 90도 가까이 세워야 했고 순대나 어묵을 놓을 자리까지 부족했다. 거기다 오토바이 안된다는 얘기를 듣고선 입을 다물어 버린 아들의 침묵이 꽤 무겁게 차 안 공기를 눌렀다. 어떻게 해야 하나. 어릴 때 [비행기 들어간다]며 공중에 붕~ 날리듯이 입안에 먹을 것을 넣어 줄 수도 없는 노릇. 아들 표정을 보니 억지로 입을 벌려 넣어줘야 할 판이다.


"조금만 먹어봐. 운동 마치고 오면 저녁 준비해 둘게. 따뜻한 어묵 하나 먹어봐."


일그러진 표정으로 어묵을 겨우 하나 먹었다. 가끔 먹으면 즐기던 순대는 하나도 안 먹겠다고 한다. 내장류만 먹고 가라고 부추기니, 5천 원어치에 참새눈물만큼 양의 내장을 두어 점 먹고는 그만둔다.


"왜 그래. 운동하려면 더 먹어."


"갑자기 입맛이 없어졌어요. 아무것도 먹기 싫어요."


아들은 갑자기 단호한 내 태도에 입맛이 떨어진 모양이다. 억지로 먹으라고 말하기는 싫다. 차라리 가벼운 몸으로 운동하고 집에 와서 편하게 밥을 먹는 게 낫겠다 싶었다.




주짓수에 다녀온 아들 얼굴이 밝다. 마트에 할인하던 식혜 한 사발을 주니, 벌컥거리면서 마신다. 만쥬빵종류를 1알 먹은 뒤 비빔밥을 먹었다.


"운동하니 어떠니?"


말하지 않아도 표정으로 느껴진다. 아들의 표정이 활기차 보인다. 그리고 엄청나게 먹어대던 것도 스트레스로 그랬나 보다. 모든 것을 적당히 먹겠다 한다. 운동 마치자마자 음료수도 마시고 물만 쓰이는 모양이다. 여드름은 조금 나아지는 듯. 턱밑에 아주 빨갛던 색깔이 조금... 아주 조금 옅어진 것처럼 보인다.


"H야 아마 로이탄 추석연휴 지나면 14일분 끝날 거 같아. 수요일 동생이랑 피부과 가서 약 좀 타줘. 처음 혼자 가니 이번만 따라가 줘."


딸은 말없이 동생에게 학교 마치자마자 피부과 앞으로 나오라며 입구에서 만나자고 한다. 찌푸려있던 아들 얼굴에 생기가 도니 마음이 한결 가볍다. 돈을 버는 것도, 직장에서 자존심 구겨져도 참는 것은 아이들이 버티고 있기 때문이다. 딸은 늘 기분이 좋은 상태로 자기 앞가림을 하니 걱정할 일이 없다. 그나마 나는 엄마로서 반만 챙기는 셈인데도 자식 중 누구 하나 눈에 눈물이 나거나 힘이 빠져 있으면 정말 괴롭다.

(실제 학원의 주짓수운동 하는 모습들. 관장님이 정말 짱이시다. 이런 성품을 만난 적이 드물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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