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아들과의 좌충우돌이야기-주짓수와 여드름약
아들의 표정이 많이 밝아졌다. 웃으면 한없이 더 잘 생긴 얼굴인데 말이다. 이제 로이탄이라는 여드름 약을 먹은 지 정확히 16일 하고 1번을 더 먹었다. 연휴가 시작될 무렵 아들은 입술이 조금 건조해지기 시작한다고 했다. 눈으로 보기엔 별 이상은 없어 보인다.
"어머니 많이 건조할 겁니다. 이 약은 피지선을 완전히 말리는 약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수분크림을 사서 얼굴에 듬뿍 발라 주시고, 세안을 잘해주고 입술이 건조해지지 않게 관리해 주세요. 만약 힘들면 하루에 1번만 먹도록 하세요."
의사가 마지막으로 당부한 말이다. 비싼 돈을 주고 끊어서 한 달에 일주일 단위로 4번 간 치료도 효과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그나마 심하지도 않은 상태에서 치료를 받았었는데 거의 치료 후 낫고 나서가 문제였다. 그쪽 피부과 의사가 계속 치료를 받아야 한다면서 이대로 치료를 안 할 거냐고 물었다. 당장은 급해서 시작했지만 한 달에 50만 원씩 주고 치료를 계속할 순 없는 노릇이었다. 사춘기의 여드름이 언제 끝날 것이며 지금은 첫 시작하던 때보다 훨씬 더 여드름이 올라왔다.
결국 아들은 울음을 터뜨리며 이대로는 밖에도 못 나가겠으며 우울증이 걸릴 것 같다고 했다. 아들의 이런 반응에 가장 속이 타는 것은 나였다. 아들의 눈 바깥으로 물방울이 흘러내리면 엄마인 내 가슴속은 핏물이 맺히는 것이다.
아들은 살색테이프며 액상파운데이션으로 얼굴에 칠갑을 하고 나갔으며 그런 상태로 다시 마스크로 가렸다. 누가 얼핏 보면 얼마나 두껍게 커버했는지 여드름의 존재가 안 느껴질 정도였다. 거기다 마지막으로 감추기 위한 도구는 모자였다. 아예 자신이 바깥에 나가는 게 두려워 눈꺼풀을 닫는 느낌이 들었다. 남들이 자기를 쳐다보는 시선을 그 굽어진 야구모자로 미연에 차단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이모를 통해 여러 가지로 수소문한 약이 로이탄이라는 약이다. 그 여학생은 정확히 하루 두 번씩 여섯 달을 먹고 완전히 예전의 피부를 되찾았고 지금도 스트레스받고 올라올 기미가 보이면 이미 먹을 준비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던 사이 아들도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집에서도 식탁에 앉아 밥을 먹고 있으면 환하게 불을 켜지 못하게 했고, 돌아앉아서 먹었으며 쳐다보고 있으면 굉장히 싫어했다. 먹으면서 가끔 후드티 모자까지 쓰고 있을 정도였으니깐. 그토록 찐한 흑인소울 가수가 없었다. 동생과 경주 펜션에 가면서 작은 수영장에 들어가며 모자도 마스크도 하지 않았다. 바비큐장에서 고기를 먹을 때도 맨 얼굴을 드러내었다. 비록 파운데이션이 발려 있긴 했지만. 그리고 집에 와서는 언제 그랬는지 모를 정도로 아들의 얼굴 표정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것은 집 안에서 마스크를 벗고 있다는 것이다. 아들은 우선 이마라도 나으면 좋겠다고 했는데 이마는 이미 빨간 기운이 많이 사라지고 있었다.
이렇게 밝아지고 우울이 걷혀 가기 시작한 것은 비단 약 때문만은 아니다. 초등학교 시절부터 3년이 넘게 다녔던 주짓수를 이사와 학원시간 때문에 바로 끊었는데 다시 다니게 된 탓이다. 학원에서 수학만 하고 바로 주짓수체육관까지 해반천을 통해 20여분을 전속력으로 달려 왕복으로 오갔다. 10월 14일 대회가 있다고 하니 촉박하긴 하지만 최대한 체력부터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마침 이번 대회는 통영이나 여수에서 진행되지 않고 우리가 사는 도시에서 진행되며 상금도 20-30만 원 정도로 중학생에게 걸려 있다고 한다. 아들은 그야말로 신이 났다. 아들은 180센티 정도의 키에 65킬로 정도 나간다. 내 아들이라서 그렇겠지. 이렇게 빛나고 훤칠해 보이는 것은. 헬스장에 가려고 현관문을 열었다. 아들이 땀범벅이 되어 현관에 서 있었다. 운동하고 돌아오니 아들이 큰 소리로 말했다.
"엄마 대회비."
"어?"
"대회비요."
아 깜박하고 있었다. 며칠 전부터 6만 원 입금해 달라고 했었는데. 우리의 대화는 이렇게 산뜻하다.
(다음 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