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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11. 2023

"집에 밥 먹을 반찬도 없고 그러면 화가 많이 나요."

사춘기아들에게 내가 좋아하는 알탕을 계속해주어 미안한 마음을 담다.





밤 11시 45분이 되어서야 대충 집안일이 다 마쳐졌다. 갑자기 타자를 치는 손에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다. 아 락스 냄새다. 고얀 녀석... 이 밤중에 엄마에게 교복 빨기를 시키다니. 도무지 오리 무중, 생각도 행동도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저 녀석은 말이다.


하루를 15분 남긴 시간에서야 모든 일을 다 마치고 다음날 0시 45분 동안이나 브런치 글을 읽고 댓글을 달았다. 그것도 소파 한쪽 모서리 끝에 올라타서 말이다. 1시간 동안 꼼짝 않고 글만 읽었다. 나는 글쓰기만큼 다른 작가님의 글도 소중하다. 특히나 내 글을 찬찬히 읽으시고 의미 있는 댓글까지 달리는 걸 보면 감사를 넘어 신기하기도 하다. 오늘은 아니, 어제는 [특유의 향이 난다]는 댓글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앞으로 쓰는 글들에 대해 책임을 더 져야지 하는 생각이 짧지만 깊이 스치고 지나갔다. 그리고 나에게 그 작가님의 문장이 영감을 던져주고 간 것이다. 암튼 말이다...



목요일 서울 마케팅 병원에 이동하는 일에 아무래도 입을 옷이 없어서 딸을 불러내어 마트 포인트, 사려는 메이크 신규포인트까지 모두 남발해 2만 몇천 원이 할인된 베이지 쟈켓을 사고, 오래간만에 불고기 버거를 먹고 집에 들어왔다. 그리고 운동을 가려고 하는데 벌써 저녁 8시 57분이다. 아들이 땀범벅이 되어서 주짓수를 마치고 들이닥쳤다.


"엄마 여드름 약도 먹어야 해서 밥 먹어야 해요."


아뿔싸. 나는 또 알탕 재료를 사서 냉장고에 넣어 놨다. 내가 좋아하는 건가 보다. 중간고사 기간에 사서 해 먹고... 며칠 전 대구탕에 고니와 알이 든 것 해 먹고... 내가 미쳤지 또 마트에서 밀키트 일종인 알고니탕 재료를 사 왔던 것이다.(지금 생각해도 부끄럽다.)


"엄마 맛도 별로 없는데 벌써... 얼마나 자주... 같은 재료를 사서 들고 오신 거예요? 제발..."


"아 아들 미안하다. 그러면 오늘 저녁만 참치에 비벼줄까?"


"엄마 그만... 그만요... 운동 가세요. 제가 알아서 먹을게요."


식탁 위에 고추참치 그냥 참치 조미김들이 가득 쌓여 있다. 이젠 모든 게 다 먹기 싫어질 때도 되었다. 나는 김치 하나라도 밥을 몇 그릇이나 게눈 감추듯이 먹어 대지만... 아 아들아 미안하다. 이번 토요일 대회도 나가는데. 마음은 무겁지만 헬스장에 내려갔다. 다시 아들 생각이 나서 전화를 했다.


"엄마 운동 10시에 마치면 마트 다녀올게."


"지금 참치에 밥 먹고 있다고요. 알아서 하세요."


전화를 끊고 나니 아들이지만 너무 자존심이 상했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운동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같이 운동하고 있던 딸에게 올라가자마자 냉장고에 든 알고니탕재료는 아웃이라고. 보이지 않게 바로 냉동실에 넣어 달라고 부탁을 하였다. 밤 10시에 지상 1층으로 올라오자마자 마트에 갔다. 아들이 좋아하는 메추리알을 사고, 소고기 볶음을 재료를 샀다. 누가 보면 내일 무슨 소풍이나 잔치라도 하는 줄 알겠다.

햐. 집에 들어오자마자 아들의 동절기 교복과, 오랫동안 안 입어서 변색까지 된 흰 긴팔 와이셔츠가 거실에 내동댕이 쳐져 있었다. 뭐냐고 물으니 내일 마지막으로 동복을 입은 졸업 앨범 촬영이 있다고 한다. 하아. 재료들을 급하게 식탁 위에 올려두고 흰 와이셔츠부터 손세탁했는데, 지워지지 않는 얼룩이 있어 락스에 담갔다. 노란 바탕에 검정 이름표가 락스에 번질까 봐 그 부분만 담그지 않았다. 그리고선 메추리알을 간장과 설탕과 맛술과 고추를 넣어서 마구 조렸다. 메추리알조림이 어느 정도 되어가자 바로 옆에서 소고기를 볶았다.

(좌:메추리알조림/우:소고기볶음. 하라면 모든 음식을 다하나 딱히 잘하는 음식은 없다. 요리에 관심 없는 여자는 외로운 여자인가 ㅎㅎ)

집안에 냄새가 베일까 봐 창문을 여니 시원한 가을바람이 문턱을 넘어 들어왔다. 거의 마무리되자 바로 락스에 담긴 흰 와이셔츠를 손빨래하고 섬유유연제에 담근 뒤 탈수만 해서 널었다. 그리고 딸아이가 셔츠가 너무 구개 졌다고 하여 다려주었다.(1차로 혼자 했는데 잘 안된다며 옆에서 쳐다보고 있었다.) 그러면서 서울에 입고 갈 옷도 함께 다림질을 했다. 마지막으로 우유에 블루베리를 갈아서 아들에게 주었다. 여기까지 하고 소파 끝에 올라앉으니 그 시간이 된 것이다.

(좌:아들의 근래 최애 음료중 하나인 쉐이크 준비과정/우:우유+냉동블루베리+믹스기=그림같은 블루베리쉐이크)

퇴근하고 나서 자기 전까지 순식간에 시간이 가버렸다. 마저 읽고 쓰려던 독후감도 중단이다. 어느 작가님이 알려주신 메루치 양식장을 보면서 아들의 식단에 대해 더 고민해 봐야겠다. 운동 가기 전에 아들 방에 잠시 들어갔었다. 내가 묻는 질문에 아들이 불 꺼진 방에서 조용히 화내지 않고 정돈된 목소리로 말했다.


"엄마 여태 운동하고 들어와 보니 집에 밥 먹을 반찬도 없고 그러면 화가 많이 나요."


핑계를 대자면 아들이 좋아하는 과일과 냉동 블루베리, 우유 그 외 잡다한 것들을 오늘도 사다 날랐지만 밥하고 먹을 반찬이, 딱히 메인이 없었던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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