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슬 Oct 18. 2023

"저는 눈만 껌벅껌벅거리면서 숨만쉬고 있는거 같아요."

예비 고1 간담회와 아들의 자존감 상실에 대해.




"엄마 집에 먹을 거 없어요. 어떻게 해요?"


산외면 꽃담뜰 라이딩을 하면서 다리에 마비가 와서 식당에 들어가지 못하고 주춤거리는데 전화가 왔다. 아... 이 녀석 시켜 먹으라고 했고, 집에 있는 반찬이나 재료로 한 끼 정도 알아서 먹지. 참 고얀 녀석이 맞다. 참 오늘은 아들의 어록들이 많다. 차차 읽어 보시면 아시게 될 거예요.


"엄마 경전철비 토스로 5천 원만 우선 넣어 주세요."


주짓수 가기 전에 엘리베이터 타기 직전에 바로 한 말이다. 항상 다급하게 얘기하고 나도 정신이 없어서 경전철비 미리 떨어지기 전에 계산을 하지만 잊어버리는 경우도 있다. 꼭 이렇게 몇 천원 아니면 만원만 보내 달라고 한다. 그러면 액수가 적은 거 같지만 그것도 몇 번 보내면 3만 원이 훌쩍 넘는다. 늘 아들의 꾐에 넘어가는 기분이다.


"엄마 액상 파운데이션 다 됐어요. 지금 쓰는 것 말고 다른 것도 알아보세요. 퇴근 후 바로 사주시면 좋겠어요."


두통이 심해서 조금 늦게 일어나서 출근 전 열심히 양치질을 하는 순간에 온 전화다. 참 타이밍도 절묘하다. 그러면 다른 말을 할 수도 없다. 그리고 본인도 학교 가는 중이라 급하게 부탁하고 끊기도 좋다. 아 정말 고얀 녀석 아닌가.




저번주 일요일 저녁 8시에 학원 간담회에 참석을 했다. 원장님께서는 PPT를 통해 2시간이 넘게 강의하셨고 중간중간 질문도 다 받아 주셨다. 미리 예비 고1테스트를 했는데 다들 성적이 기가 찬다는 것이며(코로나 해당학년) 10월부터 2월까지 바짝 쪼으겠다는 것이었다. 아 어쩌나 나는 원장님 표현으로 금쪽같은 시간에 주짓수를 3개월 보낸 것이다. 가슴이 답답해 왔다. 그리고 그 예비 테스트 결과물인 성적표를 PPT에도 올리시고 학부모 앞에 예고도 없이 턱 내미셨다. 물론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고. 오신 부모님 중에는 직접 주시라고 안 들고 간다는 부모님도 계셨다. 이런 학부모 간담회에 아들 성적이 좀 우수하면 어깨 쫙 펴고 다닐 텐데 진짜 둘째이자 아들은 만만치가 않다. 모든 면에서. 주짓수를 과감하게 보냈음에도 잘못한 건 아닌지. 자기 자식이 아니니 마음대로 운동시키라고 하는 거지 하면서 학원에 앉아 있는 동안 별 생각이 다 들었다. 결국은 영어 작문과 해석을 적는 부분을 보고 나서 학을 뗐다. 그러면서 미리 영어를 시키지 못했고 가정이 원만하지 못했던 관계로 자식에게 신경을 못 썼으며 경제적인 여유도 없어서 중2가 되어서야 아들이 "엄마 저 학원 좀 보내주세요." 하게 만들었던 모든 것에 대한 죄책감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잘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자녀분들이 국. 공립대학에 가면 지금 한 달에 80만 원 정도(국영수과) 투자하는 것이 미래에 얼마나 절약할 수 있는 것인지를. 사립대 가면 휴학하고 알바해서 다시 등록금 모이면 학교 다닙니다. 지금 힘들어도 조금만 투자를 해주시기 바랍니다. 정말 형편이 어려워서 저를 찾아오시면 상담이 가능합니다. 형제나 자매를 보내셔도 말씀해 주십시오.

어떤 아이가 찾아와서 저는 수학만 하는데 그러면 영어 수업은 못 들어도 영어 단어 시험 치는 것은 같이 할 수 있나요? 하고 물어보더라고요. 죄송합니다. 학부모님 그렇게는 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어시스트가 있어서 밤 12시까지 하든지 나머지 시간에 영어에 대해 도움을 받고자 하면 다 도와 드리겠습니다. 이런 질문을 받으면 마음이 아픕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원장님의 목소리다. 원장님께 상처가 될 수 있는, 우리 아들이 들러리처럼 있는 건 아니냐고도 질문을 했고, 여자 13명 남자가 2명이면 학원생활에 S가 지장이 없는지도 물어봤고 우리 아들이 갈려고 하는 고등학교 정보는 왜 빠졌는지도 물어봤다. 그리고선 밤 11시가 훨씬 넘은 시간에 집에 왔다. 자전거 탄 근육통이 잠시 다 사라졌다. 학원 테스트 결과지를 들고 와서 아들을 거실로 불렀다.


"S야..."


할 말을 이어가지 못했다. 성적을 보니 기가 차서였다. 알고 있다. 첫째와 다르고... 딸과는 천지차이고... 모든 것에 천지개벽 같다. 아들은... 그리고 모든 비교를 내려놓고서도 영어 작문과 해석을 보고 자꾸 그 답안지만 둥둥 떠 다녔다. 영어는 시간과의 싸움이고 엉덩이와도 전쟁이고. 말문이 나오지 않았다. 둘이서 말을 주고받았다. 한참 얘기하다 화는 내지 않고 목소리만 큰... 이게 화가 난 게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그래도 나는 분명 화를 내지 않았다...


"어쩌라고요. 해도 안 되는 걸 어쩌라고요. 저는 아무리 해도 공부는 안 되는 놈인가 봐요."


누나가 방에서 뛰어나와서 식탁에 앉았다.


"S야. 네가 그렇게 무조건 안 된다 하면 어떻게 해. 니 스스로 문제를 깨달아야 한다."


누나도 울다시피 하소연하면서 동생에게 니 태도가 바뀌지 않는 한 아무도 도움을 줄 수 없다고 말했다. 세 명이 식탁에 둘러앉아 집이 꺼질 듯한 한숨들이 집안 공기를 타며 돌고 있었다.


"저는 눈만 껌벅껌벅거리면서 숨만 쉬고 있는 거 같아요."


아 내가 이런 소리를 들으려고... 아들의 저 말에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가슴이 너무 아파서였다. 이건 나도 잘하는 소리가 아니다. 죽기 직전의 노인의 목소리도 아니다. 더 이상 대화를 이어 나갈 수가 없었다. 누나가 먼저 박차고 방에 들어갔다. 아들은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무엇이 이토록 힘든 것일까. 나는 남자도 아들도 아니다. 그때부터 기분 나쁜 두통이 더 심하게 시작되었다. 하얀 베개에 마치 서러운 일이라도 생긴 것처럼 나는 눈물을 적시며 참으로 오랜만에 울다가 잠이 들었다.




-다음 편에 계속-







매거진의 이전글 "집에 밥 먹을 반찬도 없고 그러면 화가 많이 나요."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