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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01. 2023

"경주에 펜션을 빌려 1박할까 하는데 같이 갈래?"

추석연휴에 가족과 보낸 이야기





명절 전 동생이 전화가 왔다. 경주에 펜션을 빌려 1박할까 하는데 같이 갈래? 우리가 다 빌리고 언니네는 추가 요금만 내면 돼. 응 그래 좋아. 고마워. 그렇게 하자.


처음으로 명절 연휴를 6일이나 쉰다. 대체 공휴일을 한 번도 쉰 적이 없다. 그날이 직장은 성수기이기 때문이다. 이번엔 대체근무할 사람이 있어 미리 쉰다고 얘길 해 둔 상태였다. 놀러 갈 일이 생기니 기다림의 시간이 더 빨리 가기도 하고 드디어 그날이 오기 전날 저녁이다.


"엄마 저 꼭 따라가야 돼요?"


아들의 태클부터 시작이 되었다. 엄마가 일방적으로 정한 것인 데다가 하필이면 출발하는 내일 12시부터 오후 2시까지, 돌아오는 날도 마찬가지로 그 시간만 주짓수 학원이 문을 연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회일정은 10월 14일이었다. 연휴 동안 조용히 독서하면서 한껏 긴장을 풀고 있던 나는 또다시 긴장하는 돌발 상황이 시작된 것이다. 최대한 생각을 거듭하면서 아들과 대화를 이어갔다. 결국 내가 내린 결론은 저런 표정으로 동생네 휴가까지 엉망으로 만드느니 아들만 집에 두고 출발하자는 결론에 까지 이르렀다. 늘 느끼지만 나는 성질이 급하고 생각보다 까다롭다. 직장에선 아무에게도 말도 못 하고 직원들을 불러 야단하는 일도 없지만. 아니라고 생각이 들면 아들에겐 정확하게 지적하고 말해준다. 그런데 아들은 한술 더 뜨서 자기만의 생각이 늘 뚜렷이 있다는 것이다. 자기가 언제 안 간다고 말했냐면서 꼭 가야 되냐고 물은 것뿐이라고 했단다. 아 내가 말을 말자. T인 아들과 F인 내가 싸우면 항상 T인 아들이 승자다.


아침에 일어나니 8시가 넘었다. 아이스박스에 과자와 음료들 약간의 주류만 준비했다. 동생이 바비큐 고기며 모든 음식준비까지 다 했다고 한다. 우리는 샤워하고 수영복만 챙겨서 11시 10분경 경주로 출발했다. 생각보다 차가 막혔다. 예상은 했지만 아침 일찍 출발하지 못한 것에 후회가 밀려올 무렵. 우리는 화장실이 급한 나를 위해 언양 휴게소에 주차했다. 화장실 줄이 얼마나 긴지 참지 못한 어머님 몇 분은 남자 화장실에 가시고 반대편 화장실로 달려가셨다.

(경주올라가는 길에 차가 너무 막혀서 기가 꽉 찼었다능...)

차 안에서 오랜 시간 동안 있은 만큼 재미있는 일은 늘 따로 있다. 갑자기 딸의 친구들 얘기가 나왔다.


엄마 우리 4명의 단짝 중 써니만 J거든요. 우리 3명은 모두 P라 아무 계획이 없는데. 부산에 놀러 가서 뭐 할 거냐고 뭐 하면서 어디 음식점에 갈 거며 시간을 어떻게 보낼 건지 써니는 혼자 늘 난리예요. 나머지 2명은 영혼까지 P다보니 아무 생각이 없으니 결국 만만한 저한테 연락이 와서 계획이 다 정해졌는지 늘 물어요. 그러니 저는 P라도 절친들 사이에 있으면 써니로 인해 J에 가까운 사람이 돼요...

(이 얘기를 운전하면서 듣던 나는 혼자서 빵 터졌다. 써니의 J성향이 너무 이해가 되어서였다.)


엄마 저는 절친 L과 같이 다니다 보면 둘 다 P다 보니 아무 계획이 없이 만나서 1시간 동안 갈 곳을 못 정해서 돌아다녀요. 그리고나서도 어디 갈지 잘 정하질 못해요.

(아들의 이야기다.)

(좌:언양휴게소에 주차된 차들/우:언양휴게소 안에 들어가니 발 디딜틈이 없다. 여자 화장실 칸이 생각보다 적다.)
(딸아이가 든 휴게소 음식)

1시간 반정도면 도착할 거리인데 차가 막히다 보니 2시간 반 이상이 걸렸고 경주를 알리는 간판에서부터 다시 보문단지까지 가는 곳은 거의 차가 움직이질 않았다. 그러나 아이들과의 대화와 웃음소리로 지루함 없이 달린 시간이었다. 결국 딸과 아들도 지쳐서 같이 온라인으로 연결하여 게임을 하더라. 경주입구를 통과하자마자 먼저 도착한 동생이 식당에서 대기 중이니 천천히 오라고 연락이 왔다. 우리는 모두 몹시 배가 고팠다. 결국 2시 40분여 만에 보문단지의 꼬막 식당에서 네 가족과 재회를 하였다. 동생은 식당 번호표를 뽑고 대기한 시간이 한 시간이 넘었다고 했다. 잠깐 보문단지 밑에 내려가서 호수바람을 쐬고 다시 올라왔다.

(경주 도착을 알리는 톨게이트. 그런데 여기 통과하자마자 30일 오후 1시 넘어서 차가 움직이지 않았다.)
(꼬막 음식이 나오지 않아 대기하면서 내려다본 경주 보문호수. 눈을 정화했다.)

한 시간 15분여 만에 나온 꼬막비빔밥은 맛이 있었다. 그러나 배가 그렇게 고팠음에도 아주 맛난 음식점이라는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일곱 명이 꼬막대판 2개와 소고기 육전을 게눈 감추듯이 먹어 치웠다.

(꼬막 대판과 소고기 육전이다. 1시 간 넘게 대기해서 먹은 음식. 짜게 보이지만 간이 심심해서 좋았다.)

바로 펜션으로 올라가니 거의 정확히 체크인 시간인 3시에 다다랐다. 작은 아이가 초등학생일 때 그때도 동생네와 전라도 구례 쪽 펜션에 와본 이래 처음인 듯하다. 음 외딴곳에 떨어진 독채라니. 시원하게 다듬어진 마당의 잔디가 우리를 반겼다. 네 명의 아이들은 모두 바로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풀빌라에 집어넣었다. 나는 몹시도 피곤했다. 제부와 동생이 바삐 짐을 풀고 정리하는 사이 브런치 글들을 중간중간 보다가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자면서도 꿈을 꾸는 듯이 큰 수박풍선과 물놀이 기구들이 아이들 목소리에 섞여 들려왔다.

(좌:전체 정경/우:독채 안에서 본 마당풍경)
(좌:다 놀고 혼자 떠 있는 수박풍선. 아이들에게 너무 두들겨 맞은 수박풍선은 밤에 온 몸에 파스 붙였다능…괴담이.ㅋㅋ/우:안나오는 아이들 4명.)

아이들은 3시간이 넘어도 지치지도 않고 풀빌라 안이 흐릿하게 보일 정도로 습기를 만들면서 놀아댔다. 아마도 저녁식사가 아니라면 밤새 풀에서 안 나올 기세다. 사장님께 숯불을 미리 주문하고, 돈을 지불한 뒤 아이들에게도 7시가 넘으면 식사를 한다고 말했다. 초등생1명, 중학생2명, 대학생1명 고등학교만 빼고 학년이 섞여있어도 게임이면 게임…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까지. 말할 수도 없는 놀이들을 물속에서 만들어 내서 난리를 치면서 놀았다. 아 아들만 집에 놔두고 왔으면 어쩔 뻔했을까 생각이 들었다.


숯불이 피어오른다. 고기가 자글거리면서 익어간다.

(좌;이베리코 구우며 열 올리는 제부손./고기에 불이 붙었다. 숯불도 좋고, 사랑하는 사람이랑 함께라면 너무 행복하다. 맛은 말해 뭐해...)

아이들과 내가 기겁하면서 익어가는 고기와 냄새에 취해 있을 무렵 제부는 땀을 흘리면서 고기를 구웠다. 약간의 주류와 음료수 그리고 탄산이 기분 좋게 만들어 주었다. 동생은 돼지고기 이베리코부터 종류별로 소고기까지 준비해 왔다. 상추와 김치만 있어도 입에 녹는 맛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피날레인 도시락 컵라면 8인분의 양에 우리는 기겁을 했다.

(아이들의 웃음소리, 신라의 달밤이 울려 퍼져 익힌 라면. 그리고 너희들이 웃으면 엄마는 다 좋다 라면.)

그 와중에 뮤직이 빠질 수는 없지. 제부는 경주에 왔고 달이 저리도 아름다우니. 갑자기 유튜브로 현인선생님의 [신라의 달밤]을 틀었다. 가장 막내인 초등생인 Y는 아빠의 너스레에 또 시작됐다는 표정으로 우리를 쳐다봤다. 나는 술기운이 약간 올라 그 특유의 발음으로 시알리하~~ 에혜해 다알밤~~ 이라며 동생과 부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연이어 강변가요제 출신의 유명 연예인시리즈부터 복면가왕 국카스텐 하현우 시리즈까지 동생과 나는 정신줄을 놓고 봤다. 그렇게 달이 우리 모두를 비추었고 우리는 즐겼다.

(좌;불이 켜지기 시작하는 마당/우:신라의 다알빰 ㅎㅎ)


다음날 아침이 되었다. 여기저기서 이야기 소리가 들린다. 동생은 11시 체크아웃이라면서 아침 일찍 일어나 소고기 멸치 된장찌개를 끓였다.


-언니는 어떻게 그렇게 잘 자? 한 번도 안 깨고 자더라. 갑자기 소파에 있더니 바닥에 내려가서 자고 있더라.

-애들이 위에서 자는데 아들 S가 모기에 물려서 복층에 올라가서 에프킬라 뿌리고 잤어.

-애들은 늦게까지 게임하고 아들들 S, J가 먼저 잠들었고 그리고 막내 Y는 소리소문 없이 잠들었으며 H는 제일 늦게 자더라.

-중간에 애들이 뭐라고 하면 이모가 벌떡 일어나 위에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셨어요.

-엄마는 정말 기절해서 잤어요.

-제부는 아침형 인간이라 일찍 일어났어.


그렇게 시끌벅적이던 펜션의 1박 2일이 끝이 났다. 동생네 가족이 먼저 출발하고 우리는 아들이 약속이 있다고 하여 바로 집으로 내려왔다. 내려올 때는 1시간 2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오는 길에 엄마 산소에 들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잠깐 공원묘지에 외할머니 보고 가자."


답을 기다렸으나 아무 말이 없었다. 아들이 답정너인데 무슨 대답이 필요하냐고 말했다. 공원묘지 올라가는 길에 내려오는 차가 없어서 사람들이 없을 거라고 생각한 것은 큰 오산이었다. 올라가니 경찰 버스부터 길가에 일반 차들로 주차할 곳이 없을 만큼 성묘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생화인 흰 국화 5송이를 사서 딸과 아들에게 2송이씩 주고 나머지 한 송이를 들고 엄마에게 갔다. 여전히 그 자리에 계신 나의 엄마. 늘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무슨 그리 급한 일이 있어 그렇게 20대의 나이에 돌아가셨습니까.....'

(좌:퇴실직전 찍은 내부 풍경/우:독채. 어제 고기 먹던 자리)
(좌:운전 직전 찍어본 펜션 풍경/우:엄마와 5송이 국화.)

국화 5송이를 아들이 산소에 꽂았다. 아이들에게 할 얘기를 마음속으로 말하라 했다. 우리는 잠시 그렇게 나의 엄마 곁에 머물다 내려왔다. 늘  엄마 곁에 가면 마음이 아리다. 다녀오면 마음은 편안하다. 그렇게... 우리의 펜션 1박 2일 경주행은 정확히 24시간 만에 막을 내렸다.




(P.S)

글이 너무 길어졌습니다. 아무것도 아닌 사소한 1박 2일 이야기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 다들 평안하신가요?^^ 사진만 보셔도 지낸 이야기가 유추될 거 같아요. 남은 시간들도 기분 좋게 마무리하시길 바라면서 윤슬이 물러갑니다. 333 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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