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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윤슬 Oct 24. 2023

응급실에 바로 가야 할 정도였지만 직업이 간호사인지라"

연차 내고 링거 맞은 이야기





점심에 라이딩하면서 엄청 조심해서 먹은 된장찌개 국물에서 시동이 걸렸나 보다. 친구들이 고기를 먹었지만 침을 삼키면서 잘 참았는데 이럴 줄 알았으면 실컷 먹을걸. 오후 5시가 안 되어서 집에 들어와서 청소를 다하고 설거지까지 하면서 글감을 찾고 있을 때까지 좋았다. 그리고 다 정리한 다음 글도 2편 연속해서 써서 오타를 수정하고 올린 사진에 부연설명만 하면 되었다. 그런데... 다시 시작된 심한 구토와 설사... 응급실에 바로 가야 할 정도였지만 직업이 간호사인지라 컴다운하면서 참았다. 생각해 보니 지금이 노로바이러스*가 유행하는 시기이다.


*노로바이러스 장염:사람의 위와 장에 염증을 일으키는 비세균성 바이러스의 한 종류. 주로 겨울철에서 이른 초봄(11월-4월)에 많이 발생한다. O형이 가장 감염에 취약하며 B형이 가장 강하다고 한다.


밤 10시 넘어서 한계상황에 부딪혀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너무 쾍쾍 거리면서 구토를 하니 목소리까지 쉬어 버렸다. 핫팩을 연신 해다 갖다 주는 딸의 도움으로 배에다 대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누워있었다. 뜨겁고 묵직한 핫팩이 배를 눌러주니 그나마 더 이상 나올 것도 없는 몸?은 서서히 안정이 되어 갔다. 이 와중에도 글을 완성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핸드폰으로 나머지 오타와 사진에 대한 부연설명을 마무리지었다. 마치 유작이라도 되는 듯. 마지막 수정을 마친 뒤 그대로 폰을 바닥에 떨어뜨리고? 잠을 청했다. 배통증까지 더해져 고통스러워서...


아침에 굶지 못하는 나지만 물도 한 방울 마시지 않고 출근했다. 아무래도 기운이 없고 도저히 상담일도 할 수가 없다. 수액을 맞아야겠다. 상황을 봐가면서 연차를 내야겠다.


"원장님, 수액 처방 좀 해주세요. 도저히 힘들어서 못 앉아 있겠어요. 약은 토요일 처방받은 것이 남아 있어요."


"아이고 어쩌다가... 살이 그렇게 빠졌다고... "


그렇게 하여 생각보다 덜 바빠서 오후 반차를 내고 원장님께서 처방해 주신 맥페란과 비타민류와 수액과 영양제를 한꺼번에 맞았다. 주사를 꽂고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다. 2시간가량 맞고 한숨 자고 나니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오전에 딸에게 쌀을 물에 불려 달라고 말해뒀다. 수액을 맞아서 인지 기운은 나지만 배는 더 고파왔다. 집에 오자마자 흰쌀과 쌀뜨물을 돌냄비에 부어 마구 끓였다. 끓이는 냄새조차도 향기로웠다. 미리 불린 쌀로 인해 생각보다 한 줌의 쌀이 빠르게 미음과 죽으로 분리되어 익혀졌다. 목도 말라서 죽이라기보다 거의 미음에 가까운 죽을 끊여서 먹었다. 평소에 호박죽 말고는 죽을 썩 좋아하지 않은 나는 간장에 참기름을 부어 종지에 담은 다음 게눈 감추듯이 두 그릇을 비웠다.

(세상에서 가장 맛있었던 오늘 점심한끼 흰죽)

속이 편안해졌다. 바로 처방받은 알약을 먹고 참으로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저녁 8시까지 잤다. 몸이 한결 가벼워졌고 배도 편안했으며 구토나 설사는 완전히 멈췄다. 눈을 뜨자마자 남겨둔 죽을 다 먹고 다시 쌀을 한 줌 넣어 끓인 다음 또 한 그릇을 먹었다. 배가 불러왔다. 마지막 한 숟갈을 먹으니 살짝 죽맛이 오후 같지 않았다. 이렇게 간사할 수가 있나. 점심에 그렇게 고소하던 흰 죽이 맛이 변했을 리가 있나. 또 김치가 먹고 싶고 갓김치도 생각나고 매콤한 열무 비빔국수도 생각나고. 또 잔치국수며 팔도 비빔면... 계속해서 매콤한 면 생각만 꼬불거리며 머릿속을 돌아다녔다. 마지막으로 시장 칼국수 생각이 간절히 났다.


정신을 차리니 아들이 주짓수 마치고 돌아올 시간이었다. 오후에 엄마가 거실에 누워 있는 걸보고 많이 놀랐다고 딸이 말해주었다. 그런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월요일 오후에. 냉동실에 대패삼겹살과 미나리를 넣어서 매콤하게 볶았다. 아들이 오면 바로 먹게 해 주려고. 평소 같으면 정확하게 올 아이가 1시간이 지나서야 돌아왔다. 속이 좀 상했지만 다시 볶은 고기를 데워주었다. 그리고 둘의 대화가 시작되려고 하는데 아들의 첫마디에 머리가 지끈거리면서 아파왔다... 하지만 속은 다 나은 듯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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